매일신문

[취재현장] 신라면과 냉동김밥

조규덕 경북부 기자
조규덕 경북부 기자

최근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인 'CES 2024' 참관 등을 위해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를 찾았다. 올해는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한 혁신적인 기술과 제품이 전시돼 세계인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그런데 세계인이 관심을 보인 것이 또 있었다. 바로 구미에 있는 농심이 생산하는 신라면과 올곧의 냉동 김밥이다. 비록 박람회장에서는 이 제품을 볼 수 없었지만, 인근 마트에서 신라면과 냉동 김밥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미국 현지에서 신라면과 올곧 김밥의 인기는 대단했다. 일정을 마친 후 신라면을 박스째 들고 호텔 방으로 올라가던 중 커플로 보이는 미국인 남녀가 "신라면을 정말 좋아한다"고 말을 걸어왔다.

짧은 영어로 "신라면은 한국의 구미라는 도시에서 생산된다"고 하자, 그 커플은 "와우, 정말이냐"며 놀라워했다.

구미 중소기업 '올곧'이 만들어 수출한 냉동 김밥도 미국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올곧은 작년 8월 미국에 냉동 김밥 100만 개(250t)를 수출했는데 미국인 입맛을 사로잡으며 품절 현상이 빚어졌다.

기자가 동행한 구미시 대표단이 현지에서 개최한 '한인 경제인 간담회'에서 올곧 김밥이 구미에서 생산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현지 경제인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일각에선 "신라면 같은 제품이 지역 경제에 어떤 도움이 되느냐"며 부정적인 목소리를 내곤 한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기자가 직접 본 신라면과 냉동 김밥의 효과는 기대 이상이다.

냉동 김밥이 대박을 터뜨리며 올곧은 공장을 증설한다. 올해 9개 생산 라인을 증설한 뒤, 향후 2공장까지 지어 총 23개 생산 라인을 가동할 계획이다. 이 경우 구미 쌀 사용량은 지금(1천680t)보다 무려 12배 늘어난 연간 2만t에 이른다. 게다가 올곧은 1천여 명을 더 고용할 계획으로 일자리 창출 효과도 기대된다.

국내 신라면 생산량의 80%를 차지하는 농심 구미공장은 지난해 200억원 투자에 이어 최근 100억원을 추가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구미공장 생산 라인 증설과 인력 충원 등으로 지역 경제에 보탬이 되고 있다.

구미 제품이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지면 도시의 브랜드가 된다. 이는 갓 튀긴 신라면과 올곧 김밥을 먹기 위해 사람들이 구미로 몰려들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미 구미는 '라면축제'를 통해 그렇게 하고 있다.

이번에 미국의 세계적인 음악분수 시공 기업 WET사를 찾아 조언을 구한 김장호 구미시장이 금오산이나 낙동강에 음악분수를 지으려고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WET사가 시공한 미국 벨라지오 음악분수(1998년), 두바이 분수(2021년)에는 지금도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구미는 오래전부터 제조 분야에 강한 면모를 보이며 국가 발전에 기여해 왔다. 수많은 대기업이 구미에 둥지를 틀고 제조업에 몰두했다. 하지만 대기업이 생산기지를 수도권이나 해외로 옮길 때마다 구미의 경제가 휘청거리는 일이 반복됐다.

다행히 지난해 구미시가 반도체 특화단지와 방산혁신클러스터 등 굵직한 국책사업을 잇따라 유치하면서 재도약의 기틀을 마련했고, 2차전지, 로봇, 메타버스 산업에도 뛰어들면서 미래를 밝게 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것에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첨단전략산업이 제대로 가동되기 위해선 구미에 사람이 몰려들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도시 브랜드가 있어야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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