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언더독에 영광을

전창훈 체육부장

전창훈 체육부장
전창훈 체육부장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 유럽파 축구 스타들이 원팀으로 플레이하는 모습은 축구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하다. 내로라하는 선수들로 구성된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이 64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을 향해 질주하면서 대회 열기도 더해 가고 있다.

그 속에 수비수 박진섭도 있다. 그에게 특별히 눈길이 가는 것은 그의 화려한 플레이 때문이 아니다. 남다른 이력 때문이다.

그는 대학 시절 U리그 득점왕에 오를 만큼 축구 재능이 뛰어났다. 하지만 대학 졸업 후 갈 곳이 없어 방황했다. 2017년 가까스로 실업 무대인 내셔널리그(현 K3·K4리그의 전신)의 대전 코레일에 연습생으로 입단했다. 이후 K2리그 안산 그리너스의 부름을 받았고 대전 하나시티즌을 거쳐 K1리그 전통 강호인 전북 현대모터스에 들어갔다. 그러는 사이 한 계단씩 실력과 명성도 쌓아 갔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해 11월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에 의해 국가대표에 뽑히는 영예를 얻었다.

아마추어 축구선수 중 프로가 될 확률은 0.1% 남짓, 국가대표로 발탁될 확률은 0.01%도 안 된다고 한다. 굳이 확률을 따지지 않더라도 실업팀에서 출발해 국가대표에 이름을 올리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렇기에 박진섭의 축구 스토리는 '인생 역전'이자, '언더도그의 반란'이다.

대구FC의 2023시즌을 복기하면 A팀의 파이널라운드 진출이 가장 큰 성과로 꼽힌다. 그러나 B팀의 'K3리그 진출'도 그에 못지않은 업적이다. B팀이 K4리그 2년 차 만에 리그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K3리그에 승격한 것이다. 이로써 대구FC는 2024시즌에 프로 구단 중에선 처음으로 K1리그(A팀)와 K3리그(B팀)를 동시에 뛰는 구단이 됐다.

K3는 일반인에겐 생소하다. 축구팬들조차 K1과 K2는 잘 알지만, K3나 K4에 대해서는 잘 모르거나 관심이 별로 없는 게 현실이다. 필자 또한 다르지 않다.

K3/K4는 대한민국 성인 축구의 3부와 4부에 해당하는 '세미 프로 무대'다. 앞서 언급한 실업축구가 모태로, 2020년 출범했다. K1과 K2 사이에 승강 시스템이 있듯이 K3와 K4 사이에도 승강제가 있다. 2023시즌 기준으로 K3에 15개 팀이, K4에 17개 팀이 참가할 정도로 팀도 많다.

대구FC의 슬로건은 '키워서 쓴다'다. 시민구단 재정상 외부 스타 선수 영입에는 한계가 있다. 결국 B팀에 소속된 젊은 피들 중에서 K3(K4)에서 눈에 띄는 활약을 펼치는 선수를 콜업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싹수가 보이는 신인 선수들을 성장시켜 팀의 주축이 되게끔 만든다. 이 같은 인큐베이터 시스템은 지금의 대구FC를 지탱해 온 버팀목이 되어 왔다.

최근 대구FC는 2024시즌을 대비해 신인들을 대거 뽑았다. 지난 시즌 때보다 선수단 인원이 2명이나 늘었다. K1과 K3를 동시에 참여하는 만큼 대체 자원을 충분히 두기 위한 포석이다. 이번에 영입한 몇몇 선수는 올 시즌 당장 A팀에서 활약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구단은 기대하고 있다.

성호상 대구FC 선수강화부장은 "K3 경기에서는 K1에서 볼 수 없는 신인들이 열정적으로 뛴다. 그들 중에 앞으로 누가 성장을 거듭하는지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K3리그에서 활약하는 B팀의 경기는 대구스타디움에서 볼 수 있다. 2024년엔 대구FC B팀에서 '제2의 박진섭'이 나오길 기대하면서 응원하는 팬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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