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청년 소방관 삼킨 '샌드위치패널' 화재

홍준헌 경북부 기자
홍준헌 경북부 기자

꽃다운 소방대원 2명이 화마에 삼켜져 순직했다.

이들은 경북 문경시의 돈가스 등을 만드는 육가공업체 공장 건물에서 불이 나 직원이 대피하는 모습을 보고, 혹시나 대피하지 못한 이가 있을까 살피러 들어갔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건물은 화재에 취약한 것으로 익히 알려진 샌드위치패널 구조물이었다. 사무 공간 쪽은 4층 건물이지만, 제조 공간 쪽은 3층 아래의 1, 2층을 구분 없이 통으로 쓰던 특수한 형태로 돼 있었다.

3층 튀김기에서 난 것으로 추정되는 불이 건물 천장과 측면을 가열했고, 이로 인해 열에 약한 샌드위치패널과 주변의 기둥을 휘게 만들면서 끝내 3층 바닥이 붕괴한 것으로 보인다.

그 즈음 3층을 수색 중이던 20, 30대 대원은 크게 번진 불길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했고, 1층으로 무너져내린 3층 바닥 잔해에서 끝내 주검으로 발견됐다.

샌드위치패널은 값이 싸고 짓는 시간이 짧아서 공장·창고 건축주들에게 선호된다. 그러나 고열에 녹거나 휘기 쉬운 구조 탓에 화재에 매우 취약하다. 얇은 철판 사이에 석유화학제품인 스티로폼이나 우레탄폼을 넣었다 보니 불이 붙으면 순식간에 번지고 시커먼 연기와 유독가스를 내뿜는다. 시야와 호흡을 모두 가로막으니 인명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

10년 전인 2014년 12월 18일 대구 북구 노원동에서 화재 피해를 입은 비닐 공장 건물 모습도 이와 판박이였다. 당시 현장에서 본 건물은 외벽 절반이 구부러지거나 떨어져 나가 건물 뼈대와 하늘이 훤히 보였다. 소방 관계자는 "화재 진압에 어려움이 커 한참을 물을 뿌린 끝에 불길을 잡았다"고 했다. 인명 피해가 없어 다행이었다.

안타깝게도 같은 구조의 건물이 대규모 인명 피해를 낳은 사례는 일일이 셀 수도 없을 만큼 많다. 그 가운데는 이번처럼 소방대원의 목숨을 빼앗은 사고도 있다.

2022년 1월 6일 오전 경기 평택시 청북읍 한 냉동 창고 신축 공사장 화재 현장에서 진화에 나선 소방관 3명이 같은 날 오후 건물 내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진화 도중 불길이 재확산한 탓에 고립돼 빠져나가지 못한 것으로 추정됐다.

그보다 앞선 2020년 4월 29일 경기도 이천 물류 창고 공사 현장 화재 참사는 자그마치 38명의 소중한 목숨을 앗아갔다.

이 밖에 2018년 인천 남동공단 세일전자 화재(9명 사망)와 2008년 이천 냉동 창고 화재(40명 사망), 1999년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23명 사망)에서도 샌드위치패널이 인명 피해를 키웠다.

전국 곳곳에 이 같은 '화약고'가 넘쳐 난다. 그럼에도 당국은 샌드위치패널 건물 현황을 제대로 파악하기는커녕 추가 신축을 억제조차 못 하고 있다.

2014년 샌드위치패널 사용 시 내부 충전재를 '난연재'로 채워야 한다는 규제가 생겼으나, 그 이듬해 '바닥면적 600㎡ 이하인 창고'에 대해서는 가연성 샌드위치패널을 허용하면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주기까지 했다.

소방 당국은 '샌드위치패널은 건축자재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피력했다. 그러나 곳곳에서는 "공장과 패널 제조업체가 망한다"고 앓는 소리를 쏟아 내며 규제 강화를 가로막는다. 수많은 공장주들의 '표심'을 우려해선지 정치권도 강경 대응을 못 하는 모양새다.

정부와 정치권이 주춤대는 사이 애꿎은 청년들이 또 한 번 희생됐다. 다음은 공장주나 직원이 피해자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인명과 돈을 거듭 맞바꾸는 일에 과연 어떤 이득이 있을지 심각하게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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