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독자와함께] 포항~영덕고속도로, 발주처 실수로 인근 주민 '눈물'

비만 오면 해당도로 타고 내려온 물로 인근 논밭 엉망…늪지된 지 오래

포항~영덕고속도로 초입구간 아래 수로공사가 중간에 끊겨 인근 논밭이 도로를 타고 내려온 물로 늪지대가 됐다. 빨간색 원 부분이 끊긴 수로. 박승혁 기자
포항~영덕고속도로 초입구간 아래 수로공사가 중간에 끊겨 인근 논밭이 도로를 타고 내려온 물로 늪지대가 됐다. 빨간색 원 부분이 끊긴 수로. 박승혁 기자

"숙원사업이라지만 우리한테는 '눈물'입니다."

경북 포항과 영덕을 잇는 고속도로 공사가 한창인 포항 북구 흥해읍 곡강리. 19일 찾은 이곳은 연말 고속도로 개통을 목표로 나들목 등 기반공사에 분주했다. 주민 숙원사업인 이 도로가 개통되면 포항~영덕 구간 정체가 사라지고, 지역관광사업 활성화 등 경제적 파급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된다.

대다수 지역민은 이처럼 장밋빛 미래에 대한 기대에 부풀었지만, 눈길을 도로 아래로 돌리면 정반대 상황이 펼쳐진다.

공사 전만 해도 논밭이던 땅은 비만 오면 도로를 타고 흘러 내려온 물에 질퍽해진다. 이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서 비옥하던 농토는 갈대가 무성한 늪지가 된 지 오래다. 급기야 '공사가 끝나면 다시 농사를 지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사그라졌다.

문제는 공사 과정에서 기존 도로를 이용하던 주민이 불편을 겪지 않도록 새로운 도로인 '부체도로'를 놓으면서 시작했다. 통상 고속도로 아래에 부체도로를 짓고 빗물이 빠질 수 있도록 수로를 이어준다. 하지만 발주처인 한국도로공사와 시공사인 한화건설은 설계 미반영과 예산 등을 이유로 논밭을 가로지르는 300m 구간에 수로를 생략했다. 이 때문에 빗물이 논밭으로 그대로 흘러들게 된 것.

결국 주민은 수로가 지나는 구간의 땅을 무상으로 내어줄 테니 논밭으로 물이 흘러드는 것을 막아달라고 읍소하는 지경이다.

이곳에서 수십 년 농사를 지어온 A(64) 씨는 "멀쩡히 농사짓던 땅이 잘못된 도로공사 탓에 늪지가 돼 버렸다"며 "지금 수로공사를 해야 도로 개통에 맞춰 내년 농사를 지을 수 있지 않겠나. 우리 땅을 내어줄 테니 해결해달라고 해도 설계도면에 없어서 못해준다고 하니 답답할 따름"이라고 했다.

B(68) 씨도 "농사짓고 사는 노인들한테 무슨 돈이 있다고 '정 불편하면 개인 돈을 들여 수로를 내라'고까지 하느냐"면서 "나라에서 하는 일이어서 믿고 기다렸는데 아예 농사조차 못 짓게 만들어버렸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도로공사 측은 "담당자가 바뀌어 사실 확인에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고 문제가 있다면 민원인과 접촉해보겠다"고 했다. 한화건설 측도 "문제가 있는 건 맞지만, 해결 방법이 없어 고민이다. 본사 지시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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