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부 "고령화로 부족" 의협 "저출산에 과잉" 여론 "이러다 다죽어"

'부족한 의사 수' 정반대 진단…2천명 확대 타당한가, 아닌가
정부 "고령화로 수요 늘어"…10년 후 입원일 45% 증가
의협 "저출생으로 인구 당 의사 수 급증"
여론 "강 대 강 대립 멈추고 대화 시작하라" 촉구

서울시의사회 소속 의사들이 22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정부의 의과대학 입학 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궐기대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시의사회 소속 의사들이 22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정부의 의과대학 입학 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궐기대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 이후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 배경에는 '부족한 의사 수'를 두고 양측이 내린 정반대의 진단이 자리잡고 있다.

급속한 고령화로 폭증하는 의료 수요를 현재 의사 수로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게 의대 증원을 추진하는 정부의 주된 근거다.

반면 의료계는 저출생에 따라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면서 인구 당 의사 수가 오히려 늘어나므로 증원 근거가 없다고 맞서고 있다.

◆ 정부 "고령화로 인한 의료수요 늘어날 것"

정부가 주장하는 의대 증원의 가장 큰 근거는 고령화에 따른 의료수요 증가다.

보건복지부는 국민건강보험공단과 통계청 자료를 토대로 2035년 전체 인구의 입원일와 외래진료 방문일을 계산했다.

분석 결과, 오는 2035년 입원일의 총합은 2억50만일로 2022년 1억3천800만일보다 45.3% 늘어난다는 결과를 얻었다. 병원 외래 방문일도 9억3천만일에서 10억6천만일로 12.8% 늘어날 것으로 예측됐다.

정부는 의사들의 근로시간 감소와 고령의사 증가도 의대 증원의 근거로 제시한다.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은 "의사단체가 전년 대비 의사 수 증가율을 2010~2020년의 평균 증가율인 2.84%로 잡고 있지만, 의사의 고령화로 은퇴의사 수가 크게 증가하는 최근 경향을 보면 증가율은 1.67%까지 낮아진다"며 "베이비부머 세대 의사와 졸업정원제를 적용받은 의사들이 대거 은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형병원들이 진료, 수술 등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전공의의 근무시간이 줄어든 점도 증원 이유로 꼽힌다.

전공의 근무시간이 주당 최대 80시간으로 제한되면서 전공의의 주당 근로시간은 2016년 92시간에서 2022년 78시간으로 14시간 줄었다. 의사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도 2007년 54.5시간에서 2020년 48.1시간으로 감소했다.

정부는 현재 5천명의 의사가 부족한데, 고령화 등의 영향으로 10년 뒤인 2035년에는 1만명의 의사가 더 부족해져 모두 1만5천명의 의사 충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권정현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2021년 기준 인구 1천명당 활동 의사 수는 2.6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3.7명에 비해 70% 수준"이라며 "지금 상태라면 OECD 국가의 평균 수준을 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20년 발표한 '보건의료인력 종합계획 및 중장기 수급 추계 연구'에서도 "최근 OECD 국가들은 의사의 은퇴에 대비한 젊은 의사의 확충에 나서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의대 증원 근거를 뒷받침했다.

◆ 의료계 "저출산으로 의료 수요 감소할 것"

반면 의료계는 급격한 출산율 감소를 근거로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주수호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홍보위원장은 "우리나라의 15세 미만 인구는 23년간 400만명 가량 줄었지만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2천900명 늘어났다"면서 "그런데도 소아청소년과 의사 부족 사태가 벌어진 건 필수의료 위기 문제가 의사 수 부족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봉식 의협 의료정책연구원장은 "2010∼2020년의 평균 의사 증가율과 OECD 장래 인구수를 바탕으로 인구 1천명당 의사 수를 산출하면 의대 정원을 늘리지 않아도 2063년이면 OECD 평균을 앞지른다"고 강조했다.

의료계는 현재 의료 인력을 적절하게 배치하면 충분히 대처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의료정책연구원은 지난해 11월 '다양한 통계로 살펴본 우리나라 적정 의사인력에 대한 고찰'을 통해 "한국의 인구 1천명 당 활동의사 수는 2.51명으로 31개 국가들 중 30위로 낮은 편이나 의사밀도는 OECD 국가 중 3번째로 높다"면서 "동일 면적 내에 의사밀도가 상당히 높아 환자가 의사를 접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다"고 밝혔다.

연간 2천명을 단숨에 늘릴 경우 교육 현장에 부작용 우려가 크다는 목소리도 있다.

대구 지역 한 의과대 학장은 "해부학 실습을 한다면 실습용 시신이 모자라 학생들이 의자 위에 올라가서 실습 장면을 지켜보거나 메스 한 번 못 잡아보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며 "증원을 하더라도 의대 교육의 상황을 살피고 증원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 여론 "이러다 다 죽는다…강대강 대립 멈춰야"

의료계와 정부의 '강 대 강' 대립에 따른 의료공백이 길어짐에 따라 환자들의 피해를 막으려면 서둘러 갈등을 봉합해야한다는 공감대도 형성되고 있다.

서울대를 비롯한 전국 10개 거점 국립대교수회장으로 구성된 거점국립대교수회연합회(거국련)는 25일 입장문을 내고 "정부와 의료단체는 현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의료 정책 수립에 협력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정부와 의료계는 자신들의 정당성만을 강조하며 의료대란을 심화시키고 있다"며 "정부는 책임 있는 의료단체와 공식적인 대화를 즉시 시작하고, 2천명 증원의 원칙을 완화해 현실을 고려한 증원정책을 세워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의대 교수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25일 의료계에 따르면 정진행 서울의대 교수협의회 비대위원장(분당서울대병원 병리과 교수)은 이날 SNS에 올린 '호소문'에서 "지난 금요일 저녁 차관과 허심탄회한 대화 속에서 정부가 이 사태의 합리적 해결을 원하고 있으며, 향후 이성적인 대화를 통해 최적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됐다"고 밝혔다.

대구 한 의대 교수는 "수도권 의대 교수들의 움직임을 보고 지역 의대 교수들도 어떻게 제자들의 행동과 입장에 답할지 고민 중"이라며 "조만간 지역 의대 교수들도 행동을 보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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