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030 청년들 보증금 어떡하나…또 깡통 전세, 대구 남구 일대 피해 속출

피해자 25명, 돌려받지 못한 보증금 20여억원 달해
대학가로 둘러싸인 원룸촌…피해자 대부분이 청년
임대인 가진 건물만 10채, 앞으로 피해 더 늘어날 가능성 커
"법적 대응에만 수 백만원, 선구제 대책 절실"

26일 찾은 대구 남구 대명동의 원룸촌. 전세사기 피해를 호소하는 피해자들이 거주하는 건물이 나란히 붙어있다. 임대인은 남구, 달서구 일대에 건물 10여채를 보유하고 있어 앞으로 피해가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윤수진 기자
26일 찾은 대구 남구 대명동의 원룸촌. 전세사기 피해를 호소하는 피해자들이 거주하는 건물이 나란히 붙어있다. 임대인은 남구, 달서구 일대에 건물 10여채를 보유하고 있어 앞으로 피해가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윤수진 기자

지난해 대구판 빌라왕(매일신문 2023년 2월 보도 등)이 50억원대 규모 전세 사기를 벌여 징역형을 받은 데 이어, 또다시 같은 수법의 사기 피해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피해자들은 입을 모아 구제책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지난 2021년 9월, A(28)씨는 대구 남구 대명동의 한 5평 원룸에 보증금 8천만원으로 전세 계약했다. 사회초년생에게는 부담되는 금액이었지만, 주택도시기금에서 6천400만원까지 버팀목 전세자금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월 관리비 10만원만 내면 지은 지 1년도 안 된 신축 건물에서 살 수 있는 매력적인 조건이었다.

문제는 계약이 만료된 지난해 9월 발생했다. 집주인 B(67)씨는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돈을 돌려줄 수 없다고 했고, 이 때문에 A씨는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오길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5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돈을 받지 못하면서 지난 18일 남부경찰서에 고소장을 접수했다.

A씨는 "계약만료에 맞춰 다른 지역으로 이직했는데, 전세금 문제로 대구를 떠나지 못하면서 대출 이자, 유류비, 공과금까지 매달 100만원 넘는 돈이 빠져나가고 있다"며 "만약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면 수천만원 빚을 떠안을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임차인들에 따르면 B씨가 임대한 건물에 입주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임차인은 모두 25명으로 가구당 적게는 5천만원에서 많게는 1억2천만원까지 피해 금액은 20여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피해 건물이 계명대학교 대명캠퍼스, 대구교육대학교 등 대학교로 둘러싸여 있어 피해자 대부분이 20대나 30대 청년들이고, 돈을 돌려받지 못할 경우 피해를 감당하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B씨가 임대한 또 다른 건물에서 피해를 입은 우모(29)씨는 "6년 동안 뼈 빠지게 일해서 모은 돈이 한 순간에 다 사라지게 생겼다"며 "경매를 해도 돈을 받을 수 있을지 불확실한 상황이라 앞이 막막하다"고 호소했다.

일부 피해자들은 공인중개사가 처음부터 선순위보증금 등을 속였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B씨로부터 보증금을 받지 못한 강모(39)씨는 "최근 확정일자 등 자료를 확보해 계약 시 안내 받은 선순위보증금이 실제와 다르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임대인과 중개사를 모두 사기 혐의로 고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미 수십억원의 피해 상황이 드러났지만, 앞으로 피해 규모는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B씨는 남구 일대에 본인 명의 건물 7채와 법인 건물 3채 등을 소유하고 있는데, 이곳엔 아직 세입자 수 십 가구가 거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B씨 법인의 사내이사를 지낸 C씨도 남구 인근에서 원룸 임대 사업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중 한 곳은 이미 지난해 8월 임의경매개시가 이뤄졌다.

기존 세입자뿐 아니라 새로운 피해자가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B씨의 건물 일부가 버젓이 부동산 중개 플랫폼에 올라와 있기 때문이다. 한 부동산 중개 플랫폼에는 A씨가 피해를 입은 건물이 '융자금 시세 대비 30% 미만' 매물로 둔갑해 게시된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전세사기 문제가 불거진 지 한참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구제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며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피해자 우모 씨는 "가압류 등 법적 대응에도 수 백 만원이 들어가는 상황"이라며 "임대인의 다른 재산에서 변제 받을 수 있는 방법 등 법적 조치 전에도 구제받을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목소리 높였다.

이와 관련 임대인 B씨는 "임차인들에게 이자도 내주고 관리비도 없애줄 테니 1년 정도만 계약을 연장하면 돈을 돌려주겠다고 했지만, 임차인들이 가압류 등 법적 조치를 취했다"며 "이제 방 계약도 힘든 상황이 됐다. 법적으로 대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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