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단독]신혼부부 '내집마련'까지 망친 깡통전세…동업자 건물서도 “보증금 돌려달라”

대구 남구 대학가 전세사기 동업자 건물에서도 7억원 증발 위기
지난 8일 강제경매개시…근저당권만 7억2천만원, "대부분 희망 없어"
지난달부터는 인터넷도 끊겨…임차인 4가구 사기 혐의로 집주인 고소

28일 대구 남구 대명동의 한 빌라. 이 건물에 거주하는 임차인 10가구 중 4가구가 계약 만료 이후에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건물은 지난 8일 강제경매로 넘겨졌다. 윤수진 기자
28일 대구 남구 대명동의 한 빌라. 이 건물에 거주하는 임차인 10가구 중 4가구가 계약 만료 이후에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건물은 지난 8일 강제경매로 넘겨졌다. 윤수진 기자

대구 남구 대학가 일대에서 2030 청년들이 '깡통 전세'(매일신문 2월 26일)로 고통받는 가운데, 동업자가 운영하는 또 다른 빌라에서도 같은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빌라는 강제경매 수순을 밟고 있는 데다 임대인이 건물 관리에도 손을 놓으면서 임차인들은 평범한 생활조차 곤란할 지경이라고 호소했다.

지난 2019년 6월, 결혼을 앞둔 권모(37)씨는 부부가 함께 살 빌라를 전세 계약했다. 보증금이 2억원에 육박했지만, 전용면적 84㎡에 방이 3개나 있어 훗날 아이가 생겨도 굳이 이사 다닐 필요가 없는 넓은 집이었다. 권씨는 2년 계약이 만료된 후에도 2년 재계약했고, 그 사이 아이도 생겼다.

하지만 이 집에서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지난 2020년 신축 아파트 분양권에 당첨된 권 씨는 지난해 계약 만료 이 새 집으로 이사 가려 했으나, 계약이 끝난 후에도 집주인은 보증금 반환을 차일피일 미뤘다.

당시 출산을 앞두고 있던 권 씨는 계약을 5개월 연장했으나, 연장 계약이 끝난 11월에도 보증금은 돌려 받을 수 없었다. 결국 권씨 부부는 새 아파트 분양의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권씨는 "태어난 아이와 함께 가장 행복해야 할 시기에 가족 모두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겪고 있다"며 "저 같은 피해자가 앞으로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고, 집주인이 합당한 처벌을 받을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임차인들에 따르면 해당 빌라에는 모두 10가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이 중 4가구가 계약 만료 이후에도 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피해 금액은 가구당 약 5천만원부터 1억9천950만원까지, 모두 4억여원에 달한다. 계약 만료를 앞둔 가구까지 포함하면 보증금 총액은 약 7억원이다.

강제 경매 절차를 앞두고 임차인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돈을 돌려받지 못한 임차인 중 한 명이 지난 8일 강제경매를 개시했기 때문이다. 인근 부동산 등에 따르면 비슷한 규모 건물 시세는 10~15억원정도인데, 현재 이 건물에는 근저당권만 7억2천만원이 설정돼 있다. 임차인들은 일부 선순위 가구 외에는 사실상 대부분 희망이 없다고 보고 있다.

특히 이 건물 소유주 A(44)씨는 최근 남구 대학가 일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깡통전세 사건 임대인 B(67)씨와도 관련돼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B씨가 운영한 법인에서 2022년 7월까지 사내이사를 지냈다.

B씨는 자신과 법인 명의 건물 약 10채에서 임대 사업을 벌인 뒤, 이 중 25명에게 20여억원을 돌려주지 못하고 있다. 전체 피해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게 임차인들의 설명이다.

A씨가 공과금을 제때 내지 않는 것도 임차인들의 우려를 키우고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보증금 8천500만원을 돌려받지 못한 임차인 C(30)씨는 "이달부터 계약 시 옵션으로 포함됐던 인터넷이 끊겼다"며 "수도나 전기까지 끊기면 임차인들이 돈을 모아 해결해야 할 지경"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임차인들은 지난해 12월부터 경찰에 A씨와 B씨 등을 사기 혐의로 고소하고 있다. 이들은 부동산 계약 당시 두 사람이 동행한 점 등을 보면 공범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신고가 모두 10건 접수됐으며, 추가 피해자 여부와 정확한 피해 규모 등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매일신문은 A씨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연락을 했으나 닿지 않았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