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미영의 예술기행] 이란 페르세폴리스

알렉산더에 파괴된 고대 페르시아 영광의 수도
문명 번영 이룬 고대 페르시아…종교·외교 행사지로서의 왕도
총면적 약 12만8천㎡ 거대도시
최초 인권선언 ‘키루스 실린더’ 높은 기둥·정교한 장식·조공품
황성 옛터지만 화려했음을 짐작

페허로 남은 페르폴리스.이란 남부의 파르스 (페르시스) 지방에 위치한 고대 도시 유적.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수도였다.
페허로 남은 페르폴리스.이란 남부의 파르스 (페르시스) 지방에 위치한 고대 도시 유적.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수도였다.
키루스 2세 무덤
키루스 2세 무덤

◆파라다이스(Paradise), 파사르가데(Pasargadae)

'나는 페르시아의 왕 키루스다. 그대 젊은이여,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지만 인생은 빈손으로 돌아가는 법, 나의 영원한 잠을 방해하지 말지니.' 파라다이스(Paradise)의 어원이 된 이란 파사르가데(Pasargadae)에 있는 키루스2세(구약성서의 '고레스') 무덤의 묘비명이다.

기원전 330년, 페르세폴리스를 철저히 파괴한 뒤 적국 왕이었지만 그를 흠모한 마케도니아 청년왕 알렉산더(알렉산드로스 3세)는 200년 전 '세계 최초의 제국' 아케메네스왕조를 창건한 키루스2세의 위대함에 비해 범박하기 짝이 없는 그 무덤에 찬탄하며 참배했다.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 유역 7천년 전 고대 수메르(이라크 일대)에서 2천 5백여년 전 메디아, 리디아, 신바빌로니아 등 중동, 소아시아 등지를 정복해 메소포타미아문명을 아우른 키루스2세(기원전 600~530)는 실로 위대한 왕이었다. 그는 단순히 영토를 넓혔을 뿐만 아니라 피지배 민족과 그들의 종교에 대해 관용 통치를 펼쳐 만인의 추앙을 받았다.

바빌론을 정복했을 때 그곳에 노예로 잡혀있던 4만 명 유대민족을 해방시키고 예루살렘 성전 건설을 도운 일은 구약 에스라서에 '고레스왕 칙령'으로 기록되어 누대에 걸친 유대민족의 추앙과 함께 전해지고 있다.

'… 아후라 마즈다(조로아스터교의 날개 달린 태양신)의 뜻으로 공표하니, 내가 살아있는 한 너희의 전통과 종교를 존중할 것이다. 나는 결코 전쟁으로 통치하지 않을 것이다.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을 억압해서도 차별해서도, 이유 없이 남의 재산을 강탈해서도, 다른 사람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해서도 안 되며, 또한 부채 때문에 남자도 여자도 노예로 삼는 일을 금한다. …'

키루스 실린더.대영박물관
키루스 실린더.대영박물관

고대라고는 전혀 믿어지지 않는 이 인본주의적 선언이 담긴 '키루스 실린더' 원형은 현재 영국박물관에 소장 전시되고 있다. 왕의 유언으로 일개 범부(凡夫)의 것인 양 단촐하게 조성된 고구려 고분을 닮은 키루스2세의 무덤 앞에서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 알렉산더는 그때 어떤 심정이었을까.

고대로부터 한 발자국도 진보되지 못한 채 전쟁과 차별, 반목과 질시 속에 사는 21세기 인류는 모두 부끄러움에 낯을 붉히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며칠 전 죽음과 파괴가 난무한 우크라이나에서 백만년 전 호모에렉투스가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뗀석기가 발견되었단 보도가 떠오른다. 어쩌면 우리는 당시 인류보다 퇴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잠시 오싹해진다.

페허로 남은 페르폴리스.이란 남부의 파르스 (페르시스) 지방에 위치한 고대 도시 유적.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수도였다.
페허로 남은 페르폴리스.이란 남부의 파르스 (페르시스) 지방에 위치한 고대 도시 유적.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수도였다.

◆ 샤한샤의 왕도 페르세폴리스

페르세폴리스는 '페르시아의 도시'로 그리스어로 아케메네스왕조(기원전 569~331) 통치자 '샤한사(왕중왕)'의 왕도였다. 그들은 행정 중심지인 수도와 종교, 외교 행사지로서의 왕도를 따로 두었다. 수도는 수사로 정하고 왕도를 페르세폴리스로 잡은 키루스2세의 외손자 다리우스1세가 기원전 518년부터 짓기 시작해 5대손 아르타크세르크세스1세 때인 기원전 469년 거의 완성했다.

페르세폴리스는 라흐마트산을 등지고 정면에 마르브 다슈평야를 둔 높이 12m의 인공 테라스 위에 터를 잡은 총면적 약 12만 8천㎡에 달하는 거대도시다. 작열하는 뙤약볕 아래 폐허도시에 들어서며 나는 한 쌍의 거대한 라마수(사람 얼굴에 구슬띠 장식을 두른 날개 달린 황소)를 보며 깜짝 놀라고 말았다.

페르세폴리스 입구의 라마수 한 쌍
페르세폴리스 입구의 라마수 한 쌍

루브르와 런던,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훨씬 보존상태가 좋은 저 목우상들과 수메르의 길가메시, 아카드 쇄기문자 비석들을 수없이 봤던 기억이 나서다.

아, 페르세폴리스를 다르게 '타크테 잠시드(이란 전설 속 왕 잠시드의 옥좌)'라고 부르는 이유가 이제 생각이 났다. 이 화려한 왕도는 기원전 330년 알렉산더의 침략으로 하룻밤 만에 철저히 파괴된 뒤 2,260년 동안 잊혀진 채 버려졌던 것이다.

역사를 잊은 후손은 폐허가 된 채 1931년 미국 시카고대 동방연구소팀에 의해 온전히 발굴될 때까지 고대도시의 연원을 알 길이 없어 오래 타크테 잠시드라 불렀던 것이다. 우리도 자격지심이 있으니 못난 후손이라 그들만을 탓할 수 없는 이 씁쓸함이라니.

어쨌든 영화 '300'에서처럼 스파르타왕 레오니다스와의 테르모필레전투, 이어 살라미스해전에서 참패하고 실기한 크세르크세스1세가 왕도 건설에 몰두해 세운 '만국의 문(다르바제 멜라)'을 지나면 지금은 높이 10m 가량의 원주 몇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그럼에도 앗시리아 미술에서 발현한 듯한 라마수의 한 날개에는 크세르크세스1세에 관한 명문이 3가지 언어로 새겨졌는데, 패전했지만 제국의 위상에는 그다지 타격이 없었던 터라 찬양 일색임엔 틀림없을 것이다. 그는 나중에 건축에 너무 집착하여 자신만의 궁전과 보물창고를 짓고 하렘에 탐닉하다가 암살된다.(그래도 영화에서의 형상화는 너무 무식한 고증이었다.)

크세르크세스1세의 아파다나 궁전 계단에는 각양각색 옷차림을 한 23개국 사신들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크세르크세스1세의 아파다나 궁전 계단에는 각양각색 옷차림을 한 23개국 사신들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의장대 사열로에는 쌍두 독수리상이 부서진 채 관광객들을 노려보고, 111개 돌계단은 말을 타고도 불편함 없도록 10㎝ 높이로 만들어져 있다. 알현실로 쓴 크세르크세스1세의 아파다나 궁전 계단에는 각양각색 옷차림을 한 23개국 사신들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여행 안내를 맡은 이란학과 교수님이 아르메니아의 말, 레바논의 금가락지, 바빌로니아의 소, 인도 향수병, 에티오피아의 상아 등 조공품 하나하나 세세하게 설명해 주신다. 이제는 높이 20m의 72개 기둥 중 13개만 남은 황성 옛 터이지만 그 화려했음을 누구라도 상상할 수 있겠다.

기둥 초석의 수련(睡蓮) 돋을새김에 저녁 햇살이 깃든다. 빨리 길을 떠나야 할 때다. 동서남북에 출입문이 있는데 북쪽과 동쪽에 독특한 미술사적 가치를 지닌 또다른 조공자 행렬도와 사자가 소를 습격하는 동물 투쟁도가 생생하게 새겨져 있다는데, 허물어진 기둥 사이나 뒷언덕에 올라가 내려다보는 일행들이 당최 모이지를 않는다. 모두 아이들처럼 두 손을 입에 모아 '빨리 오세요' 지르는 소리가 허무하게 허공을 가른다.

왕들의 계곡, 낙쉐 로스탐.낭떠러지에 굴을 뚫어 만든 다리우스1세와 크세르크세스 1세,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다리우스 2세, 아케메네스왕조 샤한샤 4인의 암굴묘군(岩窟墓群)이다.
왕들의 계곡, 낙쉐 로스탐.낭떠러지에 굴을 뚫어 만든 다리우스1세와 크세르크세스 1세,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다리우스 2세, 아케메네스왕조 샤한샤 4인의 암굴묘군(岩窟墓群)이다.

◆왕들의 계곡, 낙쉐 로스탐(Naqsh-e Rostam)

페르세폴리스에서 서북쪽으로 6km쯤 가니 왕들의 계곡 낙쉐 로스탐이 있다. 낭떠러지에 굴을 뚫어 만든 다리우스1세와 크세르크세스 1세,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다리우스 2세, 아케메네스왕조 샤한샤 4인의 암굴묘군(岩窟墓群)이다.

묘실 표면을 거대하게 십자형으로 파고 왕의 상이나 묘비, 옥좌, 아후라 마즈다, 기마전투도가 부조되어 있다. 높이 7m에 이르는 대형 기마전승도는 260년 사산조 페르시아 시대, 에데사에서 사로잡힌 동로마 황제 발레리아누스가 말 위의 샤푸르1세 앞에 무릎 꿇는 장면이라고 한다. 부근에도 사산조시대 왕들의 위풍을 보여주는 낙쉐 라잡 암각유적이 있는데, 대관식 장면과 성직자들이 그려져 있다.

왕들의 계곡, 낙쉐 로스탐.낭떠러지에 굴을 뚫어 만든 다리우스1세와 크세르크세스 1세,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다리우스 2세, 아케메네스왕조 샤한샤 4인의 암굴묘군(岩窟墓群)이다.
왕들의 계곡, 낙쉐 로스탐.낭떠러지에 굴을 뚫어 만든 다리우스1세와 크세르크세스 1세,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다리우스 2세, 아케메네스왕조 샤한샤 4인의 암굴묘군(岩窟墓群)이다.

아라비안 나이트, 바빌론은 느부갓네살왕, 바벨탑, 기름부음을 받은 고레스왕, 나부코의 네부카드네자르왕, 공중정원, 수사, 바그다드, 메소포타미아문명, 마케도니아, 알렉산더, 이란과 이라크 그리고 전쟁과 파괴… 이렇게 수많은 상념이 현실과 상상, 고대와 현대가 한곳에서 어우러지는 곳이 또 어디 있으랴. 다녀온 지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 비감함과 들뜸에 홀린 듯 내가 정녕 그곳에 갔던가 의문마저 또 드는 것이 그곳이다.

박미영 시인, 대구문학관 기획실장
박미영 시인, 대구문학관 기획실장

시인 박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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