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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241>매화도의 대가 조희룡의 홍매 대련

미술사 연구자

조희룡(1789-1869), '홍매' 대련, 종이에 담채, 각 127×30.2㎝, 개인 소장
조희룡(1789-1869), '홍매' 대련, 종이에 담채, 각 127×30.2㎝, 개인 소장

매화도의 대가 우봉(又峯) 조희룡은 조선 말기 화가이자 미술이론가이며 비 양반 예술인들의 전기집인 '호산외기'를 남긴 역사가다. 김정희 문하를 드나든 제자로 김정희를 잘 배워 또 하나의 우뚝한 봉우리가 됐다. 오세창(1864-1953)은 조희룡을 문장과 서화에 뛰어난 '일대(一代) 묵장(墨場)의 영수(領袖)'로 자리매김했다.

조희룡은 서화를 사랑한 문예군주 헌종의 지우를 받았다. 헌종은 창덕궁 중희당 동쪽에 작은 누각을 지었을 때 편액 '문향실(聞香室)'을 조희룡에게 쓰게 했고, 조희룡이 회갑을 맞자 벼루를 하사하기도 했다. 조희룡이 벼루수집가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왕이 회갑을 챙겨주었을 만큼 당시 문화계에서 조희룡의 위상이 높았다.

조희룡은 산수, 괴석을 잘 그렸고 묵란, 묵죽 명작도 남겼지만 그의 이름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림은 매화도다. 60여 점 이상의 매화도가 전한다. 그 중에서도 홍매가 유명하다.

매화도는 중국 송나라 때부터 묵매를 주류로 이어져 왔고 꽃은 마땅히 흰 꽃인 백매였다. 그러던 것이 19세기 들어 새로운 유형의 매화도인 홍매도가 나타났다. 그러자 매화그림은 묵매, 곧 흰 꽃이라는 틀이 깨지면서 묵매가 백매로 상대화됐다.

채색을 사용한 붉은 매화도의 등장은 매화에 부여된 고전적 상징이 순식간에 소용없게 되어버린 사군자화의 획기적 사건이다. 홍매도는 매화를 한사(寒士)의 고절(苦節)로 표상하던 매화도의 전통에서 홀연히 벗어났다. 홍백매도는 묵매인 군자와 미인인 홍매를 나란히 함께 그린다.

그 선두에 조희룡이 있었다. 조희룡은 오래된 관습이 아니라 자각적 심미의 대상으로 꽃 핀 매화나무를 바라봤고, 그림의 본령인 시각적 조형성에 주목함으로써 묵매의 관념성을 벗어났다. 조희룡은 매화그림을 묵매 일변도에서 해방시키며 홍매, 홍백매, 매화서옥, 매화나무 전체를 그린 전수식(全樹式) 연폭 병풍화인 대매(大梅) 등으로 그리며 매화도의 신기원을 열었다. 조희룡 매화도의 영향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홍매' 대련은 조희룡의 홍매도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소품으로 주로 그려지던 홍매를 마주보는 두 폭인 대작의 대련으로 소화했다. 고매의 둥치가 마치 용과 같고 붉은 매화꽃들은 그런 기세에서 튕겨 나오는 불꽃같다.

실제로 조희룡은 용을 떠올렸다. 조희룡은 "매화를 그릴 때 얽힌 가지, 오밀조밀한 줄기에 만개의 꽃잎을 피게 할 곳에 이르면 나는 용의 움직임을 떠올리며 크고 기이하게 굽이치는 변화를 준다"고 하며 이런 매화를 '용매(龍梅)'라고 했다.

쌍룡이 승천하는 듯 역동적이고 화려한 '홍매' 대련은 조희룡의 용매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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