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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원의 기록여행] 춘궁기에 내다 버린 아이

매일신문 전신 남선경제신문 1949년 3월 5일 자
매일신문 전신 남선경제신문 1949년 3월 5일 자

'누구의 죄악인지? 춘궁기를 앞둔 요즘 부내에서는 갑자기 부모의 핏줄을 이은 생후 3개월 내지 5개월 되는 영아를 함부로 거리에다 혹은 노변에다 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대략 4, 5세 되는 유아를 버리고 있어 당국에서는 이를 전자는 기아로 인정하여 후자는 미아로 취급하고 있으나 그 후 찾으러 오는 부모는 거개 없는 현상이라고 하는바 이 즉시 기아로 보이고 있다 한다.' (매일신문 전신 남선경제신문 1949년 3월 5일 자)

"아이를 가져가시는 분은 부디 잘 키워 적선하십시오." 기와집 대문 앞에는 보자기에 싸인 아이와 함께 글귀가 씌어있었다. 종이 끄트머리에는 태어난 날짜도 적혀있었다. 적선이라는 단어에서 읍소의 의미가 담겨 있다. 보자기에 싸인 아이는 여관방이나 심지어 열차 안에서도 발견되었다.

겨울이 끝나고 지금처럼 봄이 시작되는 시점에는 유독 버려지는 아이가 많았다. 지난 가을에 수확한 식량은 다 떨어지고 햇곡식은 나오지 않아 쌀독이 바닥을 보이는 보릿고개와 맞물려 있었다.

반복되는 춘궁기의 고통은 남녀노소 누구나 비켜갈 수 없었다. 특히 아이들에게는 더 가혹했다. 혈육의 정을 끊은 비참한 상황으로 번지기도 했다. 봄이 되자 대구에는 길거리에 버려지는 아이가 날마다 7~8명에 달했다. 갓 태어난 아이부터 5~6세에 이르는 유아들이었다.

굶주림과 생활고에 시달리다 보니 식구를 줄이는 일이 벌어졌다. 힘쓰지 못하고 말 못하는 아이를 버렸다. 한편으로는 형편이 나은 부잣집에서 아이를 데리고 가서 잘 키워주기를 바라는 간절함도 담겨 있었다.

대구부는 마땅한 대응책을 찾기 어려웠다. 고작 내놓은 대책이 버려지는 아이를 구분해서 지원하는 일이었다. 갓난아이는 기아로 인정키로 했다. 먹지 못해 배를 곯는 아이인 만큼 당국은 시설에 수용했다. 반면에 유아는 길이나 집을 잃고 헤매는 미아로 인정했다. 하지만 아무리 미아라고 우겨봐야 길거리를 헤매는 아이를 찾으러 오는 부모는 거의 없었다. 당국이 굳이 기아와 미아로 구분한 것은 버려지는 아이를 다 책임질 수 없어 선택한 고육지책이었다.

육아 시설에 들어가는 영아와 달리 유아들은 노숙과 구걸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대구역 대합실과 대구공회당 등에는 어른들 틈에 끼여 찬 바닥에서 잠을 청하는 아이들이 낯설지 않았다. 서문시장 등 먹거리를 구하기 쉬운 시장에도 아이들이 기웃거렸다. 아이들은 밤이 되면 거적을 이불 삼아 한뎃잠을 청했다. 이런 비참한 상황이 지속되자 부민들은 위정자와 당국에 불만을 드러냈다. 전시행정 대신에 민생을 구원하라는 요구였다.

'전국적 제1위라는 기아 도시 대구의 별명은 좀처럼 딱지를 떼버리기 어려울 것 같다. 기아의 나이는 피가 마르지 않은 생후 1개월부터 3세 미만이 대다수인데 때로는 탯줄 그대로 달린 것이 나타날 때에 참으로 놀라는 것이며 모질고 독한 그 부모를 아니 원망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삼덕 육아원에)수용된 원아는 24명(그중 남아가 3할)으로 작년 3월 창설 이후 총수용자 수는 52명이나 된 것이라는데~' (남선경제신문 1949년 3월 5일 자)

대구는 왜 기아 도시라는 오명이 붙었을까. 해방 후 이재민 등이 몰려들다 보니 극빈자가 다수 생긴 상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는 이재민과 극빈자는 아이를 키우는데 더 애를 먹었다. 삼덕동 부립 육아원에는 설립 1년 동안 버려진 갓난아이 52명이 들어왔다.

생후 1개월부터 3세 미만이 대다수였다. 때로는 탯줄 그대로 달린 채 들어오기도 했다. 버려진 채 육아원에 들어오는 아이는 여자 열에 남자 셋 비율로 남아가 훨씬 적었다. 아이를 버릴 때도 남아선호에 기인한 남아와 여아의 차별이 있었음을 시사해 준다.

육아원은 자식이 없는 집에 아이로 희망을 선사하는 중개소의 역할을 일정 부분 담당했다. 한 해 동안 삼덕 육아원에서 지내던 14명의 아이가 입양됐다. 끼니 걱정으로 태어난 아이를 기르는 일이 가정의 생존에 밀렸던 고난의 시기였다. 오죽하면 춘궁기에 아이를 내다 버리며 동냥질의 의미인 적선한다는 글귀를 썼겠나.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은 여전히 현재와 미래의 생존과제다. 1명도 안 되는 지금의 합계출산율은 당시의 5~6명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지만 말이다.

박창원 경북대 역사문화아카이브연구센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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