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뉴스In] 잠 못 드는 대한민국…손흥민도 못 이긴 잠

◆한국인 수면 시간과 수면 질 OECD 최하위권
◆수면 장애 치료하는 슬립테크 기술 등장
◆수면 장애는 개인 문제 넘어 사회경제적 손실로 확대

수면 시간 부족과 나쁜 수면 질로 인해 수면 장애를 겪는 현대인이 크게 늘고 있다. 사진은 니마 사리카니의
수면 시간 부족과 나쁜 수면 질로 인해 수면 장애를 겪는 현대인이 크게 늘고 있다. 사진은 니마 사리카니의 '얼음 침대' [런던자연사박물관 홈페이지 캡처]

'캡틴' 손흥민(토트넘 홋스퍼)이 불면증을 앓고 있다고 고백했다. 손흥민은 최근 아마존 다큐멘터리를 통해 "경기가 늦게 끝나는 날에는 불면증에 시달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수영장과 체육관이 갖춰진 집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불면증 극복에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인 손흥민조차 불면증으로 힘겨움을 토로할 정도로 수면 장애는 현대인에게 익숙하면서도 힘겨운 질환이다. 영국인 3명 중 1명이 불면증 관련 증상을 겪고 있고, 전 세계 인구의 약 10%는 장애로 간주될 만큼 심각한 증상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우리 국민도 예외가 아니다. 수면 시간 부족과 낮은 수면의 질로 힘들어 한다. 최근 KB경영연구소는 '돈 되는 잠, 슬리포노믹스' 보고서를 통해 한국인이 심각한 수면 장애를 겪고 있고, 관련 산업이 성장하면서 미래 먹거리 사업으로 급부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는 최근 수면산업진흥센터를 열고 관련 산업 지원에 나섰다.

◆숙면하지 못하는 한국인

수면 부족과 낮은 수면 질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경제적 손실로 확대되고 있다.

우리 국민의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다. OECD 2021년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은 7시간 51분이다. 일본(7시간 36분)과 더불어 최하위 수준이다. OECD 회원국 평균 8시간 27분에 비해 30분 이상 부족하다.

우리보다 수면 시간이 더 적은 일본의 경우 구마모토현 우토중학교는 오후 1시 20분부터 10분 동안 교사와 학생 모두 의무적으로 잠을 재운다.

OECD 회원국의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을 보면 남아프리카공화국 9시간 21분, 중국 9시간 1분, 호주 8시간 53분 등이다.

우리 국민들은 수면의 질도 낮다. 필립스가 2021년 3월 19일 세계 수면의 날을 맞아 전 세계 13개국 1만3천명을 상대로 진행한 수면 조사에서 세계인의 55%가 수면에 대해 만족했다. 한국인은 41%만 만족한다고 응답했다.

만족하지 못한 이유는 불면증·기면증(항상 꾸벅꾸벅 졸거나 잠이 들어 있는 상태)·수면무호흡증 등 수면 장애, 걱정, 스트레스, 취침 전 스마트폰 사용 등 생활 습관이 수면의 질을 떨어뜨렸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국내 수면 장애 환자는 2018년 85만5천명에서 2022년 109만8천명으로 4년간 28.5% 증가했다. 같은 기간 진료비는 1천526억원에서 2천851억원으로 무려 86% 늘어났다.

수면 장애 환자 비율은 장년층과 노년층이 높았다. 연령대별 수면 장애 환자 비율은 2022년 기준 60대가 23%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50대 18.9%, 70대 16.8% 순이었다. 수면 장애 환자 10명 중 6명이 50대 이상으로, 장년층과 노년층을 대상으로 수면의 질개선이 시급한 실정이다.

수면의 양과 질 모두 불만족스러운 상황이 수면 장애를 유발했고,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경제적 손실로 확대될 수 있다. 수면 장애는 고혈압·심혈관 질환·당뇨병 등 만성 질환, 비만, 우울증 등을 유발해 삶의 만족도를 떨어뜨린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보험연구원이 2023년 10월 발표한 '수면 부족의 사회경제적 손실' 보고서에 따르면 수면 부족으로 발생하는 연간 경제적 손실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0.85~2.92%로 추정했다.

◆슬리포노믹스(Sleeponomics) 등장

코로나19 이후 면역력을 키우고 건강 관리에 신경 쓰는 사람이 늘면서 수면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다. 수면(Sleep)과 경제학(Economics)의 합성어 '슬리포노믹스'도 등장했다.

KPR디지털커뮤니케이션연구소가 수면에 관한 245만건의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2023년 상반기 수면에 대한 관심이 전년 대비 1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면에 대한 언급량이 2022년 상반기 137만4천503건, 2022년 하반기 153만8천1건, 2023년 상반기 158만2천188건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숙면에 도움이 되는 제품에 많은 돈을 투자하는 슬리포노믹스 현상도 나타났다. 수면과 직접 관계된 침대·베개·이불 등 기본 침구 외에도 침실 온도·공기·조명 등 환경 요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숙면 관련 제품이 출시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loT)을 활용해 수면 상태를 분석하고, 최적의 수면 환경을 조성해 숙면을 돕는 슬랩테크(SleepTech)가 주목받고 있다. 슬립테크는 수면(Sleep) 문제를 기술(Technology)을 활용해 해결하는 첨단 기술을 지칭한다.

한국수면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슬리포노믹스 시장 규모는 2011년 4천800억원에서 2021년 3조원으로 10년간 6배 이상 증가했다. 글로벌 슬리포노믹스 시장은 2026년 40조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실제 서울대병원은 올해 1월부터 불면증 환자에게 약 대신 디지털 치료제를 처방한다. 5년 전부터 직장 스트레스와 가족 문제로 불면증을 앓은 40대 A씨는 불면증 치료용 모바일 모바일 앱(App) '솜즈' 사용 2개월이 처방됐다. 2년간 수면제에 의존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A씨는 이 앱을 통해 매일 수면 일기를 작성했고, 주간 단위로 자신에게 맞는 수면 시간(누워 있는 시간)도 처방받았다. 올바른 수면 습관을 들이고, 수면 관련 잘못된 생각을 교정하는 방식으로 불면증을 치료했다.

15일 충남 아산시 배방읍 일원에서 수면산업진흥센터 개소식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15일 충남 아산시 배방읍 일원에서 수면산업진흥센터 개소식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수면 장애를 치료할 슬립테크

슬립테크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2024년 소비자가전전시회(CES)에서는 반지, 헤어밴드, 마스크, 안대 등 수면 건강에 도움을 주는 다양한 형태의 웨어러블 기기가 30여종이 출품됐다.

헬스케어 디바이스 전문 기업 텐마인즈(10Minds)는 AI를 탑재한 베개가 코 고는 소리를
인식해 자동으로 부풀어 고개를 움직이게 하는 모션필로우&시스템으로 최고 혁신상을 수상했다.

비알랩(BRlab)은 수면 전후 생체 데이터와 수면 데이터를 모니터링해 수면 상태를 제어하는 AI 수면 솔루션 브랜드 '벤자민(Benzamin)'을 공개했다. 벤자민의 대표 기능은 ▷깊은 수면 강화 ▷기상 시점 컨디션 최적화 ▷코골이 기록 등이 있다.

아미라헬스(Amira Health)는 스마트 팔찌와 급속 냉각 매트리스를 활용해 폐경기 여성이 자주 겪는 열감으로 인한 수면 장애 개선을 돕는 안면 홍조 모니터링 프로그램 '테라 슬립(Terra sleep)'을 공개해 관심을 받았다.

드림에그(Dreamegg)는 신생아부터 성인까지 편안한 수면을 돕는 백색소음(새소리, 파도소리, 천둥소리와 같은 자연음) 기계를 공개했다.

주요 빅테크 기업들도 슬리포노믹스 시장 선점에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애플은 '손목', 삼성은 '손가락' 등 다양한 웨어러블 기기를 활용해 슬립테크 제품을 고도화하고 있다.

국가 차원에서도 슬리포노믹스 시장 선점을 위한 지원에 나섰다. 지난 3월 15일 충남 아산에 국내 최초의 수면산업 전문 지원기관인 수면산업진흥센터가 문을 열었다.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이 운영을 맡고 있다.

슬리포노믹스 제품 인허가·설계·검증 단계의 전기적·기계적 안전성뿐 아니라 포장·보관·운송·부품에 대한 신뢰성 등을 검증한다.

◆다른 분야 기업과 협력도 활발

슬리포노믹스 시장은 지속적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숏폼(짧은 영상 콘텐츠)으로 인한 도파민 중독 등 수면 장애를 일으키는 요인도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다.

슬리포노믹스 시장은 그동안 의료기기 기업,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제품 개발이 이루어졌으나 향후 다른 분야 기업 진출과 기업 간 협력이 활발해질 전망이다.

닌텐도 자회사인 포켓몬컴퍼니5는 숙면을 돕는 모바일 게임 '포켓몬 슬립'을 출시하기도 했다.

심지어 금융권에서도 관련 시장 진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나은행은 2023년 11월 슬립테크 기업 에이슬립의 수면 측정 앱 '슬립루틴'의 유료 서비스를 자사 앱 '하나원큐'에 탑재하고 고객에게 무료로 제공했다.

KB손해보험은 업계 최초로 헬스케어 자회사 'KB헬스케어'를 설립하고 마이데이터 서비스와 접목해 수면 데이터와 같은 개인화된 데이터를 수집하고 활용하는 서비스 론칭을 준비하고 있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