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함재봉 칼럼] 독립신문과 근대국가

함재봉 한국학술연구원장
함재봉 한국학술연구원장

4월 7일은 '신문의 날'이다. 1896년 『독립신문』이 창간된 날이다. 128년 전이다. 신문은 근대 민족국가를 만들어 내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독립신문』은 한국 사람을, 한국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조선의 사대부는 중화문명 속에서 「사대부」라는 신분을 보유하고 유지함으로써 존재의 의미를 찾는 존재들이었다. 조선의 사대부들이 「사농공상」의 신분사회를 철저하게 유지한 것도 조선이 「천자」를 정점에 둔 「천하」와 「사해」의 위계질서, 문명과 오랑캐의 위계질서, 즉 화이질서(華夷秩序)에 속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조선의 사대부들이 「사대부」일 수 있었던 것은 중국 사대부들이 사용하는 「중화」의 문자, 즉 「한문」을 구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조선의 사대부들이 속해 있던 「조선」, 「동국(東國)」이라는 공동체의 구성원 대부분은 한문을 읽을 수 없는 「까막눈」이었다. 조선의 사대부들과 「백성」들 간의 관계는 철저한 상하 관계였다. 근대적 의미의 수평적인 「민족」 또는 「국민」으로의 동질감은 없었다.

조선의 사대부들이 자신들과 중국인들의 정치적, 언어적, 문화적 차이점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통일신라-고려-조선을 이어가며 근 1천 년간 중앙집권적 국가체제를 운영해 오는 과정에서 고려-조선의 엘리트들은 자신들과 여진, 몽골, 거란, 일본, 중국인들과 어떻게 다른지 끊임없이 구별하는 담론을 형성해 왔다.

그러나 조선의 사대부들이 조선의 천민이나 노비들과 「동질 의식」, 「동포애」, 「민족감정」을 갖고 있었다는 증거는 찾아볼 수 없다. 수백 년간 「동족」의 절반을 노예로 부릴 수 있었던 사대부들이 그들을 자신들과 같은 「민족」이나 「동포」로 생각했을 리 만무하다.

19세기 말 개화파 지식인들은 「조선 사람」을 대내적으로는 동질적이고 대외적으로는 독립된 「민족 공동체」로 다시 상상하기 시작한다. 처절한 차별 체제로 사분오열되어 있었던 조선을 한문이 아닌 「국문」, 즉 「한글」을 매개로 신분과 지역, 성의 차이를 초월하는 공동체, 즉 「민족」을 만들어 내기 시작한다.

서재필, 윤치호 등 미국을 그 누구보다도 깊이 있게 관찰하고 경험한 개화파 인사들은 「신문」이라는 매체야말로 근대국가의 국민과 민족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기제라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었다.

신문은 만들어진 지 하루 만에 전국적으로 소비된 후 무용지물이 되어 버린다. 조간 신문은 석간이 나오면 폐지가 되어 버리고 석간은 다음 날 조간이 나오면 쓸모없게 되어 버린다. 신문이 하루 만에 용도 폐기된다는 것은 독자들이 같은 시간대에 같은 소식과 정보를 접하게 됨을 뜻한다.

전국적으로 배포되는 신문이면 전국에 퍼져 있는 독자들이 같은 시간대에 똑같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국제사회 뉴스를 접한다. 그리고 신문 독자는 자신이 읽고 있는 똑같은 내용을 수천, 수만, 심지어는 수백만의 독자들이 읽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물론 그 독자들이 누구인지 개인적으로 알지는 못한다. 같은 신문을 읽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사람들 중 개인적 친분이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나 같은 동네와 이웃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 읽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뿐만 아니라 불특정 다수의 독자들이 같은 신문을 기차에서, 지하철에서, 택시를 타면서, 커피숍에서, 이발소에서 읽는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이 불특정 다수가 자신과 인식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는 확신을 갖는다. 이름하여 「민족 공동체」다.

『독립신문』은 조선 사람들로 하여금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공간(영토)과 시간을 경험할 수 있게 해 준다. 조선 사람들은 『독립신문』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자신들이 같은 영토 안에 살면서 세상에 대한 이해와 인식을 공유하는 같은 「민족」이란 의식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독립신문』은 동시에 월남이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고 폴란드가 러시아나 프러시아 사이에서 국권을 빼앗기는 등의 얘기를 지속적으로 소개하면서 전 세계가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든 인종은 자신들만의 통일되고 독립된 국가를 갖기를 원한다는 논리를 주입시키면서 조선 사람들도 조선어에 기반한 민족국가를 건설해야 함을 역설한다. 민족, 국민 만들기 작업의 도구는 신문이다. 신문이 제 역할을 다해야 하는 이유다.

특집부 weekl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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