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태형의 찰나의 순간 역사적 기록] <15> 아! 선생님…1969년 지산국민학교 범물분교

전교생 32명 화전마을 교실 "선생님 만난 게 인생의 행운"
25가구 사는 진밭골 부임한 선생님…양 키우고 밤나무 심어 학용품 지원
‘까막눈’ 아이들 중학교도 진학 시켜

1969년 6월 대구 동구(현 수성구) 범물동 1118번지(진밭길 409) 지산국민학교 범물분교. 예능시간에 전교생이 선생님과 함께 운동장을 맴돌며 율동을 배우고 있다. 범물분교는 당시 강원채 대구시장이 주민들의 잇따른 진정을 받아들여 1963년 12월 개교했다. 사진=매일아카이빙센터
1969년 6월 대구 동구(현 수성구) 범물동 1118번지(진밭길 409) 지산국민학교 범물분교. 예능시간에 전교생이 선생님과 함께 운동장을 맴돌며 율동을 배우고 있다. 범물분교는 당시 강원채 대구시장이 주민들의 잇따른 진정을 받아들여 1963년 12월 개교했다. 사진=매일아카이빙센터
1969년 6월 예능시간에 선생님과 함께 노래를 부르며 율동을 배우는 지산국민학교 범물분교 어린이들. 사진= 매일아카이빙센터
1969년 6월 예능시간에 선생님과 함께 노래를 부르며 율동을 배우는 지산국민학교 범물분교 어린이들. 사진= 매일아카이빙센터
1969년 6월 지산국민학교 범물분교 조경환(33) 선생님이 1,2,3학년을 한 교실에서 가르치는 복식수업을 하고 있다. 사진=매일아카이빙센터
1969년 6월 지산국민학교 범물분교 조경환(33) 선생님이 1,2,3학년을 한 교실에서 가르치는 복식수업을 하고 있다. 사진=매일아카이빙센터
1969년 6월 지산국민학교 범물분교 조경환(33) 선생님이 4,5,6학년이 함께 배우는 교실에서 칠판을 나눠 산수와 국어 복식수업을 하고 있다. 왼쪽 벽에 1968년 12월 5일 발표된 국민교육헌장이 붙어 있다. 사진=매일아카이빙센터
1969년 6월 지산국민학교 범물분교 조경환(33) 선생님이 4,5,6학년이 함께 배우는 교실에서 칠판을 나눠 산수와 국어 복식수업을 하고 있다. 왼쪽 벽에 1968년 12월 5일 발표된 국민교육헌장이 붙어 있다. 사진=매일아카이빙센터
1969년 6월 지산국민학교 범물분교 4,5,6학년이 함께 배우는 교실에서 조경환(33) 선생님이 4학년을 지도하는 동안 5,6학년 어린이들이 자습하고 있다. 사진=매일아카이빙센터
1969년 6월 지산국민학교 범물분교 4,5,6학년이 함께 배우는 교실에서 조경환(33) 선생님이 4학년을 지도하는 동안 5,6학년 어린이들이 자습하고 있다. 사진=매일아카이빙센터

1969년 어느 봄날 대구 범물동 1118번지(진밭길 409) 지산국민(초등)학교 범물분교. "동무들아 오너라 봄맞이 가자~~" 산골 운동장에 언니 누나 동생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전교생이 함께 하는 예능시간. 노래에 맞춰 손뼉을 치며 예쁜 율동까지, 아이도 선생님도 빙글빙글 함께 돕니다.

오솔길로 오르는 해발 450m, 25세대 140여 명이 사는 옛 화전마을 진밭골. 분교가 없던 6년 전까지만 해도 찬 이슬에 나서던 20리(8km) 등굣길이 하도 험해 못 가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이제는 실컷 늦잠을 자고도 혼날 일이 없습니다.

전교생은 32명. 조경환(33)·서정희(21) 선생님 두 분이 도맡았습니다. 교실은 두 칸. 음악·미술·체육은 다 같이, 나머지는 3개 학년씩 한 교실에서 복식으로 배웁니다. 4학년이 수업하면 5·6학년은 자습하는 돌림식 수업에 가르치고 배우는 게 예삿일이 아닙니다.

더 큰 걱정은 시청각 교육. 칠판에 자동차를 그려 놓고 "부르릉~ 부르릉~" 발동 소릴 흉내 내 보지만 고개만 갸우뚱. 대부분 산중에서 나고 자라 하늘을 나는 비행기는 봤어도 자동차는 본 적이 없습니다. (매일신문 1969년 6월 6일 자)

2년 전 부임한 조 선생님은 깜짝 놀랐습니다. 6학년인데 글을 모르다니…. "가갸 거겨~~하햐 허혀…." 붙들어 두고 될 때까지 외우고 쓰게 했습니다. 꼬박 한 달 만에 책을 읽더니 재미를 붙였습니다. 2학기부터는 오토바이 출퇴근을 접고 분교 사택에 눌러 앉았습니다. 하숙하며 밤낮으로 아이들을 불렀습니다. 박봉을 떼 사준 수련장으로 배우게 하고는 뒤돌아 시험을 쳤습니다.

선생님 말씀은 곧 법. 조 선생님은 더 특별했습니다. 카리스마가 철철 넘쳤습니다. 숙제를 안 해 간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 마주칠 땐 그림자도 피해 다녔습니다. 산중 밤길은 거뜬해도 선생님 눈길은 그렇게도 무서웠습니다.

진학은 생각도 못했는데 가망이 보이자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해 중학 시험에 6명 중 5명이 떡 하니 붙었습니다. "이런 선생님이면 되겠다." 학부형들이 선생님을 붙들기 시작했습니다. 1년만 근무하면 시내로 돌아간다 했는데 다 틀렸습니다.

내친김에 선생님도 목표가 생겼습니다. 가축을 치고 나무를 길러 교재며 학용품까지 분교에서 해결한다는 자활학교. 끼니를 거르는 아이들이 안쓰러워 젖 짜는 양을 키우고 벌통도 들였습니다. 교육청에 때를 써 분교 맞은편 개간하다 만 산 3,300㎡(1천평)을 사들이고는 학부형 손을 빌려 약초를 심고 밤나무를 키웠습니다.

55년이 흐른 지금 그때 그 밤나무는 아름드리로, 분교 자리엔 청소년 수련원이 섰습니다. 수소문 끝에 진밭골 대학생 1호 장윤섭(69·한국안전관리 대표) 씨를 만났습니다. "6학년 때 조 선생님을 만난 게 제 인생의 행운이었지요. 무지의 틀을 깨준 분이셨어요". 그는 그때 인연을 지금껏 잇고 있었습니다.

"그래 맞아! 여기서 4년을 근무했지…." 88세 고령에도 조 선생님은 옛 사진을 보자마자 어제처럼 떠올렸습니다. "신명으로 일해야지. 그런 마음으로 지도해야 좋은 학생이 나와…." 선생님은 "다시 태어나도 교단에 설 것"이라 했습니다.

1969년 대한민국 교육의 끝자락 산골 벽지(僻地) 분교. 모든 게 부족해서 더 절실했던 선생님. 시련이었지만 누군가엔 인생의 행운으로 다가왔던 그 이름. 아! 선생님….

1969년 6월 고무신을 신고 해맑은 얼굴로 카메라 앞에선 지산국민학교 범물분교 어린이들. 뒤줄 왼쪽은 서정희(21), 오른쪽은 조경환(33) 선생님. 사진=매일아카이빙센터
1969년 6월 고무신을 신고 해맑은 얼굴로 카메라 앞에선 지산국민학교 범물분교 어린이들. 뒤줄 왼쪽은 서정희(21), 오른쪽은 조경환(33) 선생님. 사진=매일아카이빙센터
1969년 6월 당시 지산국민학교 범물분교생 32명을 책임졌던 조경환(33·왼쪽)·서정희(21) 선생님. 사진= 매일아카이빙센터
1969년 6월 당시 지산국민학교 범물분교생 32명을 책임졌던 조경환(33·왼쪽)·서정희(21) 선생님. 사진= 매일아카이빙센터
교장으로 정년 퇴임 후 대구 가창 고향집을 지키고 있는 조경환(88) 선생님이 1967년 3월 지산국민학교 범물분교(현 진밭골)에 부임해 4년 동안 근무했던 당시를 설명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thk@imaeil.com
교장으로 정년 퇴임 후 대구 가창 고향집을 지키고 있는 조경환(88) 선생님이 1967년 3월 지산국민학교 범물분교(현 진밭골)에 부임해 4년 동안 근무했던 당시를 설명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thk@imaeil.com
지산국민학교 범물분교 폐교(1988년) 후 그 자리에 2013년 들어선 수성구 청소년 수련원. 김태형 기자 thk@imaeil.com
지산국민학교 범물분교 폐교(1988년) 후 그 자리에 2013년 들어선 수성구 청소년 수련원. 김태형 기자 th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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