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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250>제갈량의 와룡관을 쓴 정치가 이하응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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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 연구자

이한철(1812-1893?)·유숙(1827-1873), 이하응 초상(와룡관학창의본), 비단에 채색, 133.7×67.7㎝,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이한철(1812-1893?)·유숙(1827-1873), 이하응 초상(와룡관학창의본), 비단에 채색, 133.7×67.7㎝,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우리나라 역사 인물 중에서 '풍운아'라는 수식어가 붙곤 하는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초상화다. 가능하다면 가능할 수 있고, 불가능하다면 불가능한 엄청난 일을 스스로 만들어낸 대단한 야심과 교묘한 실행력을 지녔기 때문일 것 같다. 바로 자신의 아들을 왕위에 올린 일이다. 이하응은 영조의 5대손인 왕실의 일원이었지만 왕위와는 거리가 있었던 둘째 아들을 고종으로 즉위시켰다.

1864년 고종이 왕위에 오른 이후 10여 년간 이하응은 조선 천하를 호령했다. 최고의 권좌에 있었던 이하응의 초상화는 비단에 채색을 한 정본(正本)만 해도 6점이 전한다. 6점이 모두 보물로 지정된 것은 어진에 준하는 수준의 걸작이기 때문이다. 기린흉배의 관복을 입은 '흑단령포본', 국가의 공식행사 때 입는 예복인 '금관조복본'(2점), 유자(儒者)의 차림인 '복건심의본', 좀 특이한 짙은 파랑 도포를 입은 '흑건청포본', '와룡관학창의본' 등이다.

그중에서 서재에 있는 학자의 모습인 이 '와룡관학창의본'은 금관조복이 어울리는 왕족인 정치가이자 석파란의 예술가이기도 한 이하응에게는 일종의 선비 분장이다. 살아생전의 모습을 고스란히 후세에 남기는 초상화는 본인은 물론 후손에게도 대단한 위세품이었기 때문에 왕을 비롯해 최상류 층이 초상화를 다양하게 남기려 한 것은 동서양이 마찬가지였다.

둥글게 골이진 특이한 모양의 와룡관은 와룡(臥龍) 선생 제갈량이 썼다는 모자다. 우리나라의 선비 초상화에 간혹 보인다. 와룡관 안의 탕건과 망건, 또 그 안의 금빛 풍잠과 상투까지 겹겹이 비치는 섬세한 묘사가 고급스럽다. 보통은 흰색인 학창의가 연한 쑥색인 것도 은근한 호사스러움을 더한다.

탁자 위의 물건들이 예사롭지 않다. 안경알에 색이 들어간 붉은 테의 안경, 백자로 보이는 타구, 산호 장식의 염주, 뚜껑에 쌍룡이 조각된 벼루, 흰 붓두껍의 청색 붓, 사각형인 탁상용 시계, 붉은색이 비치는 인재(印材)인 낙관인장, 글씨 첩과 그 위에 놓인 청화백자 인주합 등이다. 반지처럼 보이는 녹색 옥으로 만든 물건은 활쏘기 때 사용하는 각지(角指)인 깍지를 고급스럽게 만든 것으로 추측된다.

오른쪽의 향탁(香卓)에는 청동 향로가 있고 향 숟가락인 향시(香匙)와 향 젓가락인 향저(香箸)가 들어 있는 향병(香甁)에 놓여있다. 향 도구 세트 중 향합이 빠져 있어 좀 의아하다. 상류층의 사치 풍조를 알려주는 이 화려한 물건들은 연시(燕市)라고 했던 북경에서 구입해 온 수입품이다. 탁자 왼쪽에는 장검이 서슬 푸른 칼날을 드러낸 채 세워져 있다. 이 칼은 문무겸전의 뜻일까? 또는 힘의 과시일까? 흥선대원군의 위세가 하늘을 찌르던 1869년(고종 7) 그의 나이 50세 때 초상화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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