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아니 땐 굴뚝의 연기

김태진 논설위원
김태진 논설위원

"빵을 달라"는 굶주린 시민들의 요구에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않냐"고 반응했다는 마리 앙투아네트는 악성 루머의 희생자다. 현실 감각 없는 왕가의 무능을 강조하려는 혁명군이 만든 루머라는 게 정설이다. 혁명이라는 말에는 진실이 따라붙어 어울릴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적(敵)이라 판단되면 적폐(積弊) 프레임에 가두고 조작한 이야기를 퍼뜨렸다.

1793년 루이 16세 부부의 단두대 처형 이후 200년도 더 지난 지금도 루머의 파급력은 여전하다. 믿고 싶은 대로 믿는 인간의 고약한 습성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멸종된 호랑이도 세 명이 봤다고 주장하면 존재 여부를 확인하자는 요구가 나온다. 호환 마마(虎患媽媽)보다 무섭다는 '아니 땐 굴뚝의 연기'다.

서울 시청역 역주행 참사와 관련해 동승했던 부인이 언론에서 입장을 밝혔지만 '부부 싸움 중 남편이 홧김에 가속페달을 밟았다'는 루머도 상상의 영역에 머물지 않고 정설처럼 빠르게 퍼졌다. 그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저희 부부는 성당에 꾸준히 나가고 착하게 살았다. 언론에서 어떻게 보도하든 저희는 진실만 말했고 그것으로 된 것"이라고 했다. 실제 블랙박스에 기록된 부부의 음성에서 갈등 상황은 담기지 않았다는 게 경찰의 전언(傳言)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자당 관련 수사를 했던 검사 네 명에 대한 탄핵 소추안을 당론으로 발의했다. 그중 한 명으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사건 수사를 담당한 박상용 수원지검 부부장검사의 탄핵 사유다. "2019년 1월 8일 저녁 울산지검 청사 내 간부 식당에서 술을 마신 후 울산지검 청사 민원인 대기실 바닥에 설사 형태의 대변을 싸고, 남성 화장실 세면대 및 벽면에도 대변을 바르는 등의 행위를 통해 공용물을 손상했다"는 게 민주당의 주장이다.

박 검사는 "터무니없는 루머라 대응할 필요도 못 느꼈다"고 했다는데 이런 게 검사 탄핵 사유가 되는지 그 똥 같은 발상이 '유치찬란'하다. '이재명 재판'에 차질을 주려는 속셈임을 알겠는데 그 방법이 너무 치졸해 보는 사람 낯을 화끈거리게 한다. 문제는 '아니 땐 굴뚝의 연기'의 위력이 무섭다는 점이다. 게다가 본인이 똥을 싸고 바르지 않았다고 정색을 하고 해명하기도 쉽지 않다. 박 검사로서는 참으로 고약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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