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러시아에 특수부대 파병을 전격 결정하면서 대한민국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도 시험대에 올랐다. 정부도 예상하지 못했던 탓에 향후 대응과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특히 한반도 무력 충돌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는 시점에 북한이 러시아에 파병한 것을 두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고도의 기만술을 펼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특히 북한 파병에 대해 유럽 측에서 민감한 반응을 보이면서 자칫 우크라이나전을 계기로 제3차 세계대전 가능성마저 조심스레 언급되고 있다.
정부는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북한의 러시아 파병에 대해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 제공'으로 맞설 경우 대 러시아 관계 파탄뿐만 아니라 한반도가 아닌 유럽 전장에서 대리전 형태로 최악의 상황(제2의 한국전쟁)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北, 최정예 특수부대 1만2천여 명 러시아 파병
국가정보원은 18일 "북한이 지난 8일부터 13일까지 러시아 해군 수송함을 통해 북한 특수부대를 러시아 지역으로 수송하는 것을 포착했다"며 북한군의 참전을 공식 확인했다. 최정예 특수작전 부대인 11군단, 소위 폭풍군단 소속 4개 여단 총 1만2천여명 규모의 병력을 파병할 것이라는 예상도 내놨다.
국정원은 관련 증거로 위성사진 3장도 제시했다. 우크라이나 군 산하 전략소통센터(SPRAVDI)는 북한군으로 추정되는 병사들이 러시아로부터 보급품을 받는 동영상을 소셜미디어 X 계정에 공개했다. 북한이 군사물자 지원을 넘어 지상군을 파병한 것은 1953년 한국전쟁 휴전 이후 첫 사례다.
군사 전문가들은 북한이 올해 6월에 러시아와 체결한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대한 조약'에 따른 큰 틀의 '전략적 거래'로 파병을 감행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조약은 실질적으로 양국 간 전쟁 발발 시 자동 군사개입 조항으로 봐야 한다.
◆젤렌스키, "제3차 세계대전 가능성 언급"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적 동맹과 거래는 자유 민주주의 진영에는 큰 위협이 되고 있다. 특히 북한이 무기제공을 넘어 병력까지 파견한 대가로 핵폭탄과 미사일 고도화에 결정적인 첨단 기술을 이전받는다면, 한반도뿐만 아니라 일본마저 감당하기 힘든 군사적 비대칭에 직면할 수도 있다.
북한의 파병이 우크라이나 전쟁 판도를 바꿔 놓을 수도 있다. 본토마저 침공당하며 병력 부족에 시달려온 러시아로서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 같은 효과를 가져올 것이며, 북한 군의 지원으로 주요 전선에서의 공세를 강화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블라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세계대전을 향한 첫 단계라며 3차 세계대전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자칫 북한의 파병을 고리로 러시아를 축으로 한 사회주의 진영과 우크라이나를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 진영 간 확전 양상이 제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논리다.
◆대한민국 정부 "여러 상황 고려해 엄중히 판단해야"
정희석 경북대 정치외교학과(러시아 관계 전공) 교수는 20일 매일신문과의 통화에서 북한 군의 러시아 파병에 대해 "우리 정부는 섣불리 어떤 판단을 해서는 안 된다"며 "만약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제공하면 대러시아 관계 파탄 및 북한과도 되돌릴 수 없는 준전쟁 상황에 놓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정 교수는 "정부는 북한의 러시아 파병에 대해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전 세계 평화에도 도움이 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지구촌 곳곳을 최악의 분쟁 상황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우리 정부는 외교력과 정보망 등 가용 수단을 총동원하고 국제사회와 공동전선을 펴면서 북한의 러시아 군사지원이 더 확산되지 않도록 압박하고 있다. 더불어 유엔(UN), 유럽연합(EU)과 나토 등 국제질서의 규범에 기반하고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 또는 기구들과 힘을 합쳐 제재 강화 등 다각도의 협력 방안을 모색한다는 입장이다.
또 외교 전문가들은 북·러 군사적 밀착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이는 중국을 외교적으로 끌어안고,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한·러 관계가 파탄 나지 않도록 관리해 나가는 외교적 지혜도 발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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