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속담엔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망우보뢰(亡牛補牢)'가 있고, 중국에는 '양을 잃고 우리를 고친다'는 사자성어 '망양보뢰(亡羊補牢)'가 있다. 두 말이 언뜻 닮은꼴처럼 보이지만 해석은 천지차이다. 전자는 일이 잘못된 뒤에 손을 써봐야 소용이 없다는 뜻이고, 후자는 양을 잃은 후여도 우리를 제대로 고치면 된다는 '사후 대응' 중요성에 방점을 뒀다.
잇따른 대형 산불의 악재 속에서 되새겨야 할 말은 이 중 후자인 '망양보뢰'에 가깝다. 모든 외양간을 튼튼하게 만들어 피해를 미리 대비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기후 변화가 현실화된 작금의 상황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어서다. '대형산불은 양간지풍이 부는 강원 영동지역에서 주로 일어난다'는 공식조차 보기 좋게 빗나가고 있는 게 요즘 세태다.
지난달 28일 늦은 오후 산불 당시 대피소로 지정된 북구 동변중학교에서 만난 주민들도 이를 몸소 체감하며 이례적인 도심 산불에 당혹감을 드러냈다. 이날 오후 2시쯤 도심에 위치한 북구 함지산에서 발생한 산불은 나흘 동안 운동장 434개 규모인 산림 310ha를 태운 뒤 완전 종식됐다.
주민들은 "TV에서 봤던 일, 남의 일이라고 생각 했던 일이 눈앞에서 벌어졌다"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동안 대구경북이 강원 지역에 비해 산불 위험으로부터 안전했고, 도심 한복판에서 산불이 발생할 사례는 더욱이 희박했기 때문이다.
산림은 훼손됐지만, 다행히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전선 등 장애물이 거의 없어 야간에 산림청 수리온 헬기를 투입할 수 있었고, 인접 지역에 금호강이 있어 담수원으로 활용하기에도 용이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만은 없다. 이런 상황적 요건이 없었다면, 이번 불이 도심으로 번져 자칫 대형 재난으로 커질 수 있었다는 뜻이기도 해서다.
앞서 지난 3월말 발생한 경북 북동부권 괴물 산불 등 최근 잇따라 발생한 산불로 이미 많은 것들을 잃었다. 하지만 이럴 때 일수록 '망양보뢰'한다면 향후 더 큰 손실을 막을 수 있다. 산불이 발생했을 때 초기 진화를 돕는 '비상소화장치'부터 늘리면 어떨까. 이는 소화전과 소방호스가 연결돼있어 지역 주민들도 쉽게 초기 진화를 시도할 수 있다.
대구의 산지 비율은 전국 7개 특·광역시 중 54.7%로 가장 높은 수준이다. 화재에 취약한 소나무 중심의 침엽수림 비율도 46%로 높은 실정이다. 그런데도 산립인접마을에 설치된 비상소화장치는 군위군에 설치된 1대가 유일하다. 전국 17개시도 중 최하위 수준에 머무르는 정도다.
도심으로 넓혀 봐도 비상소화장치는 턱없이 부족하다. 소방청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대구에 설치된 비상소화장치는 모두 319대. 전국 1만4천32대 중 대구 비중은 2.3%에 그쳤다. 다만 관계 당국은 여전히 예산상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비상소화장치는 통상 1대당 1천만원 가량의 예산이 소요된다.
지금이야말로 정책 전환의 적기다. 산불이 시기와 지역을 가리지 않고 일어나는 경향은 이제 '뉴노멀'이다. 올해 유독 대구경북 지역을 휩쓴 대형 산불 위험성을 뼈저리게 느끼지 않았나. 관계 당국은 입산을 자제해 달라는 대시민 호소문만 발표할 게 아니다. 외양간을 제대로 고치기 위한 예산부터 적극 투입해야 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은 기후 위기 앞에 속수무책 일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소를 잃고도 외양간 고치는 걸 미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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