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용준이의 사과나무

손수민
손수민 '손수민재활의학과' 원장.

용준이의 첫 인상은 아주 껄렁껄렁했다.

경제적으로 힘든 아이들의 꿈멘토로 강의를 요청받고 바쁜 와중에 일산까지 갔건만, 용준이는 강의 내내 대놓고 휴대폰을 하거나 책상에 엎드린 채 딴 청을 피웠다. 돈이 없어도 의대를 다닐 수 있다고, 전국의대의 장학금 제도까지 준비해 간 나로서는 내심 좀 실망이 되었다.

강의가 끝나고 사회복지사 선생님들과 인사를 하고 있는데, 용준이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관심없는 척 건들건들 걸어와서 내게 말을 걸었다.

"의사하면 돈 많이 벌어요?"
"얼마 벌고 싶은데?"
"백…만원?"

사회복지사 선생님 말로는 용준이는 쌍둥이 형제 중 하나인데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지만 전교 1등을 할 정도로 공부를 잘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공부 열심히 하라고, 의사되면 100만원보다 훨씬 더 많이 벌 수 있다고, 의대가면 등록금은 내가 대겠다고 약속하고 그날부터 용준이를 따로 후원하기 시작했다. 그게 용준이 초등학교 5학년인가 6학년때였다.

그러던 용준이가 고등학생이 되었다. 용준이는 내내 방황하는 것 같았다. 가난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벗어날 순 있는 건지, 노력하면 정말 뭐가 변하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약속했던 공부는 게을리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생활비말고 학원비로 쓰는 조건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따로 지원을 하겠다고 편지를 보냈다. 세상이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너는 바뀔 수 있다고, 그러니 니가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 세상에 보여주라고.

용준이에게 답장이 왔다. 학원비 얘기 듣고 많이 놀랐다고. 걱정도 되지만 한번 해보겠다고. 안하던 공부를 하려니 힘들고 자꾸 포기하고 싶지만, 게임을 하고 싶을 때마다 선생님을 떠올린다고. 후원해 주시는 그 마음을 차마 배신할 수 없어 다시 공부하고 있다고. 그리고 간호대를 가서 '손수민재활의학과의원'에 취직한다는 목표를 세웠다는 말로 편지를 끝맸었다.

참으로 뿌듯하고 대견했다. 방황하던 아이가 목표를 세우고 게임을 끊고 힘들지만 해보겠다는 그 마음이 참으로 예쁘고 고마웠다.

사과나무에 사과가 열리려면 씨 뿌릴 때만 물을 준다고 되는 건 아니다. 싹이 올라왔다고 돌보기를 그만둬도 안된다. 씨 뿌리고 싹이 올라오고, 가지가 돋아나고 열매가 맺히고 마침내 사과가 빨갛게 익을 때까지 계속 물을 주고 돌봐 줘야 한 알의 사과가 맺힌다. 하물며 사과 한 알도 이러한데 사람을 키우는 건 더 많은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것 같다.

하지만 그 사랑과 관심은 때론 어마무시한 게 아니더라도, 힘들어 하는 그 순간에 잠깐 손을 내밀어 주는 것, 내가 나누어 줄 수 있는 무언가를 나누어 주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인생은 바뀔 수도 있는 것 같다.

용준이가 원하는 간호대에 합격해서 웃으며 입학식 꽃다발을 건넬 그 날을 고대한다.

손수민 손수민재활의학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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