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너무 오랫동안 닫혀 있어서 벽인 줄 알고 있지만, 사실은 문이야."
영화 설국열차 속, 열차에 17년간 갇혀 있던 주인공의 이 대사가 떠오른 건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역문화 실태조사 결과 기사를 쓰면서였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도시와 농촌 지역 간의 문화 격차가 여전히 뚜렷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첫 문장을 쓰며 '그래, 당연하지'라고 예사롭게 생각했다는 걸 문득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역 간 문화 격차 문제가 오랜 기간 수없이 지적돼 왔는데도 나아진 게 없다 보니 이제는 당연하게 존재하는 벽인 줄 알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정부가 국가균형발전 정책을 시행한 지 20년. 지역문화 진흥 정책은 그보다 훨씬 앞선 1980년대부터 추진돼 왔다. 1983년 지방문화예술 활성화 종합계획에 이어 이듬해 지방문화 중흥 5개년 계획을 수립했는데, 여기에는 지역·계층 간 문화 격차 해소 방안도 담겼다. 당시에도 수도권과 이외 지역의 문화 격차 문제에 대해 인지하고, 그에 대한 정책이 필요함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방증이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났지만 문화 양극화는 여전히 심각한 수준이다. 최근 발표된 지역문화 실태조사 결과에서 2023년 기준 지역문화지수는 수도권이 0.292, 비수도권이 -0.118로 큰 차이를 보였다. 도시(0.277)와 도농복합(0.100), 농촌(-0.284) 간 격차도 확인됐다.
구(0.166), 군(-0.288)에 따라서도 차이가 나타났다. 세부 지표를 살펴보면 구의 문화예술 시설은 19.7개인 반면 군은 7.4개에 불과했다. 평균 시설 접근 거리도 구는 2.6㎞였으나 군은 12.5㎞에 달했다. 군 단위가 많은 경북의 경우 22개 기초지자체 중 절반가량인 10곳이 지역문화지수 하위 30%에 포함되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보면 2020년과 비교해 18개 지표 중 지역문화 사업 건수나 인력 수 등 13개 지표의 평균값이 증가했지만, 바꿔 말하면 지역문화 여건이 개선됐음에도 격차가 여전히 남아 있음을 의미하기에 아직 가야 할 길은 멀게만 느껴진다.
더욱이 전체 예산 대비 문화 관련 예산 비율이 광역(-0.32%포인트), 기초(-0.15%포인트) 모두 줄어 2%도 채 되지 않는 것으로 집계돼 희망을 갖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번 기사를 쓰며 대구 외곽의 축제를 방문했다가 주변에 가볼 만한 문화 관련 시설이 없어 그냥 돌아왔던 경험, 서울에서만 열리는 유명 공연을 보려고 하루이틀을 잡고 다녀왔던 경험 등이 떠올랐다. 일종의 사회적 불평등인 문화 격차를 몸소 느끼면서도 그저 당연히 있는 벽이라고 생각해 온 것.
새 정부는 부디 당연하게 여겨 온 것들에 의문을 갖고, 지역의 문화 균형발전을 위한 제대로 된 문을 찾았으면 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일지라도 다시 출발선 앞에 선 우리는 이제 지역 소멸이라는 벼랑 끝에 놓여 있다. 3년 주기로 이뤄지는 지역문화 실태조사의 다음 보고서에서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도시와 농촌 간 문화 격차가 상당 부분 해소됐다'는 내용을 볼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2년 전, 한국문화예술법학회 하계학술대회에서 전훈 경북대 교수가 '지역 간 문화예술 격차 해소를 위한 방안'을 주제로 발표했던 내용 중 한 구절이 떠오른다. "서울에서 먼 대구나 부산, 광주 등 지방에서도 똑같지는 않더라도 차별 받지 않는 (문화·예술의) 혜택을 누릴 가능성을 제공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문제는 문화정책의 관점이 아니라 지역 소멸과 균형발전 차원의 접근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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