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을 처음 봤을 때 마치 타임슬립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모관대 차림의 조선 관료들이 테이블보가 깔린 대형 식탁에 차려진 정찬을 의자에 앉아 즐기는 광경이라니…. 게다가 남녀가 섞여 있다.
생경한 이 장면은 그러나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한일통상조약체결기념연회도'는 1883년 조선이 일본과 '조일통상장정(朝日通商章程)'을 체결한 후 조선 정부에서 주최한 연회를 그림으로 남긴 기록화다. 화가는 중국 톈진에서 갓 돌아온 23세의 심전 안중식으로 추정된다. 안중식은 소림 조석진과 함께 중국에 도입된 신식 무기 제조법과 사용법을 배우기 위해 조정에서 파견한 영선사에 소속돼 기계 도면을 그리는 제도사로 중국에 갔었다. 1876년 개항한 조선은 곧 일본에 수신사를 보냈고, 중국에 영선사(1881년)를 미국에 보빙사(1883년)를 파견해 외국의 선진문물을 배웠다.
안중식은 참석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생김새와 옷차림, 테이블과 의자, 상 위의 음식과 집기, 장식물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각자 앞에 여러 개의 스푼과 잔, 주전자, 양념통 등이 놓여있다. 음식 접시를 자세히 보면 메인 요리는 생선이다. 사각 테이블과 의자 식기류는 서양식이고, 상화(床花)는 붉은 비단 보자기로 감싼 보병(寶甁)에 꽃을 듬뿍 꽂은 중국식이며, 중앙의 고임 음식 5종은 조선식이다.
묘한 혼종의 상차림인 것은 둘러앉은 12명의 인적 구성도 마찬가지다. 제일 왼쪽 상석은 독판교섭통상사무 민영목이고, 맞은편은 일본 측의 조약체결 당사자인 전권대신판리공사 다케조 신이치로다. 그 다음 서열의 인물들이 화면의 상단인 윗줄에 앉았고, 그 다음이 제일 아래쪽이다. 양쪽 고위층 앞의 촛대에 촛불이 타고 있어 만찬임을 알 수 있다.
민영목의 왼쪽은 이 조약을 교섭한 독일인 묄렌도르프이고 세 사람 건너 여성은 그의 부인이다. 이 부부는 중국옷을 입었다. 묄렌도르프는 청나라에서 통역관으로 활동하다 이홍장의 추천으로 1882년 조선에 통리아문내외문무협판으로 3년간 채용됐다. 종2품 벼슬인 참판으로 육조의 장관인 판서 다음인 차관급이다. 고종의 고문으로 외교 업무를 담당한 묄렌도르프는 조선의 고위 공직을 맡은 최초의 서양인이다.
개화 초기에 고문관, 행정관, 기술관, 교육관, 군사교관에서부터 요리사에 이르기까지 200명 이상의 외국인이 조정에 고용됐다. 출신국은 독일,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벨기에, 이탈리아, 덴마크 등 다양했다. 조선에선 양이(洋夷), 중국에선 양귀(洋鬼)라고 했던 서양인들이다.
양식(洋食)이 그려진 최초의 그림일 것 같다. 양복, 양말, 양단, 양옥, 양주 등 '양'자 돌림이 우리의 의식주에 스며들며 양요(洋擾)에서 시작된 '양'이 멸칭에서 경칭으로 신분상승 하던 142년 전 어제인 6월 22일 있었던 행사다.
대구의 미술사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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