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1년 대구에서 간병 살인사건이 발생한 이후 가족돌봄청년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지 4년이 흘렀다. 우리 사회에서 이들을 위한 여러 지원제도가 도입된 것은 가시적인 성과다.
하지만 충분한 수요를 반영하지 못해 사각지대가 발생한다는 점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전문가들은 돌봄청년의 정확한 수를 파악하고, 이들이 생애주기별 과업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복지 울타리를 촘촘히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문 닫고 나오면 모르는 돌봄청년인지 몰라…'발굴 작업 중요'
국내에서 가족돌봄청년 문제가 불거졌지만 관련 사업은 여전히 걸음마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박영주 대구행복사회서비스원 연구위원은 "가족돌봄청년 사업은 대구뿐만 아니라 타 시도에서도 하고 있지만 초기 단계"라며 "돌봄청년이 얼마나 되는지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특히 발굴 위주의 정책 수립이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선 일선 행정라인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소희 대구대 청소년상담복지학과 교수는 "돌봄청년들을 찾아내기 위해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등 통계를 갖고 있는 행정복지센터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복지공무원들이 돌봄청년 발굴 사업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다 보니 뒷전으로 밀리고 있지만, 행정복지센터의 적극적인 움직임이 없다면 사실상 발굴이 어렵다"고 말했다.
돌봄청년들이 스스로 인지 정도가 낮기 때문에 관련 홍보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초록우산의 가족돌봄 아동·청소년 지원방안 모색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가족을 부양하는 청년 가운데 자신이 가족돌봄자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비율이 56.5%에 달했다.
김민지 대구시행복진흥사회서비스원 부연구위원은 "가족돌봄청년들의 발굴이 더딘 이유는 가족 내에서 해결하려는 의지가 반영됐기 때문"이라며 "본인들이 돌봄청년으로서 지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 수 있을 만큼 지자체에서의 홍보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돌봄청년들이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제출해야 하는 서류들을 간소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예컨대 생계비와 교육비, 의료비, 주거비 등을 명목으로 지급하는 자기돌봄비의 경우 ▷가족관계증명서 ▷가족 장애인증명서 ▷진단서 ▷건강보험납입증명서 ▷장기요양인정서 등을 제출해야 한다.
정 교수는 "엄마가 아픈 가정이라면 자식이 돌봐야 하는데, 다른 가족은 왜 엄마를 돌볼 수 없는지에 대한 증명서부터 온갖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며 "이 절차를 설명하는 순간 청년들은 '하지 않겠다'고 답한다. 가뜩이나 민감한 가정사를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 상황에서 조건이 너무 까다롭다. 절차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동행을 위한 지원책 개선 필요
돌봄청년을 위한 각종 복지 제도들이 더욱 촘촘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기존 제도와 중복되지 않으면서 청년들이 원하는 부분을 긁어줄 수 있는 지원책들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연구위원은 "돌봄청년들은 기초생활수급자 혜택으로 경제적 도움을 받고 있다. 비슷한 혜택을 주는 것보다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서울시의 경우에는 청년들에게 문화 체험 등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는데, 대구에서도 어떤 추가 지원이 필요로 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적 지원 과정에서 소득수준으로 제한을 걸은 것도 문제로 여겨지고 있다. 조기현 돌봄청년커뮤니티 '엔(N)인분' 대표는 "보건복지부는 자기돌봄비를 지급하는 데 있어서 중위소득으로 제한을 걸었다. 돌봄 부담은 소득 수준과 상관없이 절대적으로 시간을 써야 하는데, 지금의 제도는 가난한 사람만 받아 가라는 것"이라며 "정부가 돌봄청년의 문제 실태를 제대로 알지 못했거나 기존처럼 열등 처우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부연구위원도 "소득 수준을 볼 것이 아니라 '얼마나 지출되는가'를 봐야 한다. 300만원을 벌더라도 병원비가 200만원이 나가면 어려움이 큰 것"이라며 "돌봄청년들이 처한 상황들까지 총체적으로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돌봄청년에 대한 통합사례관리가 끊김 없이 지속될 필요가 있다는 제언도 나왔다. 정영태 대구시행복진흥사회서비스원 선임연구위원은 "통합사례관리로 선정되는 청년들은 교육급여부터 돌봄, 주거 개선 등이 지원되는데 일정 기간 이후 끝나게 된다"며 "한 번 서비스를 받고 다음 차례가 올 때까지 공백이 생기는데, 이 기간에 돌봄청년가정은 또 다시 문제가 생겨난다. 새로운 가구를 찾고 지원해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 번 지원으로 끝나기보다 계속 돌봐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족돌봄에 대한 부담으로 지친 청년들을 돌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2022년 돌봄청년 8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번아웃을 경험했다는 비율은 47.9%였다. 전체 청년(33.9%)과 비교하면 14%포인트 차이를 보인다.
정 교수는 "청소년기에는 친구들과 어울리고 진로도 선택해야 하는 생애주기별 과업이 있다. 하지만 아픈 가족을 돌봐야 하다 보니 자기 욕구를 스스로 억압하게 되고, 누적되다 보면 다른 사회적 문제로 발현될 가능성이 있다"며 "대인 관계에서 눈치를 본다는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인데, 성장 과정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줄일 수 있도록 멘토나 심리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 차원에서 지역 곳곳에 숨은 돌봄청년들의 관리가 어려운 만큼, 지자체의 행정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문도 있다.
양난주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서울에서는 '돌봄 SOS', 경기도는 '누구나돌봄', 광주에서는 '광주다움' 등으로 돌봄이 이뤄지는데 대구에서는 이와 같은 게 없다"며 "중앙정부에서 떨어지는 일만 수동적으로 하는 지자체가 아닌, 지역의 문제를 우리만의 방법으로 책임을 지겠다는 태도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담기구·인력 신설 및 충원 시급
돌봄청년들을 제대로 지원하기 위한 전담기구가 지역 곳곳에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대구의 경우 2023년 8월 조례가 시행됐지만 아직 전담기구가 부재한 상태다. 그 대안으로 지난해 정부의 돌봄청년 전담기관인 '청년미래센터'가 확대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해당 센터는 인천·울산·충북·전북 등 4곳에만 설치돼 있다.
조 대표는 "청년미래센터가 시범사업으로 4곳에 두고 있지만 광역지자체에 하나씩 있는 센터가 전체 돌봄청년의 사례를 관리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전화로 서비스 연결시키는 것만 할 것이 아니라 어려움이 무엇인지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문제의 근원을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센터 수가 적어 접근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국내 최초로 전담기구를 만든 서울시의 사례를 눈여겨볼 만하다. 서울시는 지난 2023년 서울시복지재단에 업무를 위탁해 돌봄청년들을 발굴하고, 금융 등 각종 서비스를 연계시키고 있다.

지원 인력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경은 경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돌봄청년들이 겪는 어려움을 도와주고, 미래 비전을 제시해 줄 수 있을 정도의 역량을 갖춘 전문가 인력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또 이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을 평가하면서 인력을 차츰 늘려가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시 관계자는 "사회복지관협회, 초록우산 등 기관들과 지난해 협약을 맺고 가족돌봄청년들을 지원하고 있다"며 "신학기를 집중 조사 기간으로 고려하고, 면담하면서 돌봄청년 사례들을 발굴하고 있다. 이외에도 각 구군과 대학에도 발굴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지원 사업 홍보 영상을 제작하는 등 앞으로 역량을 더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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