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학교야, 공원이야…토끼가 뛰놀고 야생화 피는 숲속 학교, 구미 산동초

콘크리트 대신 흙길, 상처받은 아이들의 치유 공간
개발 논리 vs 자연교육, 위기에 선 숲속 학교
"최신 건물보다 살아있는 공간이 필요"

맑은 하늘 아래, 구미 산동초등학교 교정의 아름다운 풍경이 눈부시게 펼쳐져 있다. 교사의 붉은 벽돌 건물과 짙푸른 녹음이 조화를 이루며, 마치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산동초등학교 제공
맑은 하늘 아래, 구미 산동초등학교 교정의 아름다운 풍경이 눈부시게 펼쳐져 있다. 교사의 붉은 벽돌 건물과 짙푸른 녹음이 조화를 이루며, 마치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산동초등학교 제공

교문을 들어서자 거대한 히말라야시다 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고, 발밑에서는 이름 모를 야생화가 바람에 흔들린다. 잠시 후 풀숲에서 뛰어나온 토끼 한 마리가 낯선 방문객을 멀뚱히 쳐다보더니 이내 제 갈 길을 간다. 이곳은 자연공원이 아닌 경북 구미 산동초등학교의 평범한 아침 풍경이다.

산동초는 '학교'라는 이름보다 '공원'이라는 수식어가 더 어울리는 곳이다. 아이들은 딱딱한 우레탄 트랙 대신 부드러운 흙길을 밟고, 인공 연못을 찾아온 곤충을 관찰하며 자연의 일부가 된다.

이 특별한 공간을 가꿔온 이태운 교장은 "바람에 날아온 씨앗이 스스로 꽃을 피우고 토끼가 찾아와 풀을 뜯는, 말 그대로 살아있는 교실"이라며 학교를 소개했다.

산동초의 아름다움은 단순히 주어진 자연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 교장은 부임 후 창고에 먼지 쌓여 있던 낡은 시설물에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

한때 애물단지였던 다람쥐통 놀이기구는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쉼터가 됐고, 과거 과학 교재로 쓰이다 버려졌던 암석 표본들은 야외 무대 주변을 장식하는 멋진 조형물로 재탄생했다.

지난달 27일 구미 산동초등학교 교정에서 토끼가 토끼풀을 뜯어먹고 있다. 조규덕 기자
지난달 27일 구미 산동초등학교 교정에서 토끼가 토끼풀을 뜯어먹고 있다. 조규덕 기자

"사고 날까 봐, 낡았다고 해서 치워버리는 건 너무 안타까운 일입니다. 조금만 신경 쓰면 아이들에게 훌륭한 놀이터이자 학습 자료가 되거든요."

그의 손길이 닿은 곳마다 공간은 살아났다. 강당 지하의 버려진 공간은 7대의 피아노가 놓인 멋진 음악실로 변신했다. 이제 아이들은 방과 후면 이곳에서 피아노를 배우고, '행복 음악 콘서트'를 열며 꿈을 키운다.

이 학교가 더욱 특별한 이유는 이곳을 찾는 아이들에게 있다. 산동초에는 인근 대규모 학교에서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던 학생들이 많이 전학 온다. 경쟁에 지치고 관계에 상처받았던 아이들은 이곳의 너른 품에서 위로를 받는다.

이 교장은 "처음엔 위축됐던 아이들이 흙을 밟고 친구들과 숲을 뛰어다니며 점차 표정이 밝아진다"며 "자연이야말로 최고의 상담사이자 치유사"라고 말했다.

실제로 산동초는 장애 학생들의 방과후 활동 참여율이 높아 교육청의 표창을 받기도 했다. 경쟁 대신 상생을, 지식 주입 대신 정서적 안정을 우선하는 교육 철학이 자연과 어우러져 시너지를 내고 있다.

지난달 27일 이태운 구미 산동초 교장이 교내 운동장 외곽을 따라 조성된 산책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조규덕 기자
지난달 27일 이태운 구미 산동초 교장이 교내 운동장 외곽을 따라 조성된 산책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조규덕 기자

하지만 이 아름다운 공간은 지금 변화의 갈림길에 서 있다. 신도시 개발로 학생 수가 급증하면서, 현재 10학급인 학교는 2031년까지 54학급으로 대폭 늘어날 예정이다.

늘어나는 학생 수를 감당하기 위해 55년 된 낡은 교사를 허물고 새 건물을 지어야 하고, 경북도교육청의 '늘품뜰(돌봄 거점 센터)' 건립 부지로 학교의 일부가 지정됐기 때문이다.

개발 계획에 따라 아이들의 쉼터였던 숲과 흙길의 일부는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이 교장은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깊은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학생 수가 늘어나니 증축은 당연히 해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짓느냐가 중요하다. 이 학교가 가진 고유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새로 지을 건물이 기존의 나무와 숲을 최대한 살리고, 교실에 햇빛이 잘 들어오는 자연 친화적 설계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태운 구미 산동초 교장이 이 학교의 상징인 히말리야시다(개잎갈나무) 아래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조규덕 기자
이태운 구미 산동초 교장이 이 학교의 상징인 히말리야시다(개잎갈나무) 아래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조규덕 기자
구미 산동초등학교 운동장, 토끼풀 밭 위로 자리한 붉은 하트 포토존이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조규덕 기자
구미 산동초등학교 운동장, 토끼풀 밭 위로 자리한 붉은 하트 포토존이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조규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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