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공휴일 제외된 국경일 제헌절…시민들 의견 들어보니

"다시 쉬는 날로 지정해야" "헌법 만들어진 날도 역사에선 절대 빠질 수 없는 상징"

광복 80주년을 맞아 지난달 28일 시민 80명이 독도 동도 선착장에서 가로 30m, 세로 20m 크기의 초대형 태극기를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광복 80주년을 맞아 지난달 28일 시민 80명이 독도 동도 선착장에서 가로 30m, 세로 20m 크기의 초대형 태극기를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아이들과 제헌절 의미 나누고 싶어요…다시 쉬는 날 되면 좋겠죠"

제헌절(7월 17일)을 공휴일로 다시 지정해달라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헌법 제정일을 기념하는 국경일이지만, 정작 쉬지 않는 날이라는 점에서 국민적 공감대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최근 국민의힘 강대식 의원은 '공휴일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의 핵심은 제헌절을 다시 공휴일로 지정하고, 토·일요일 또는 다른 공휴일과 겹칠 경우에는 대체공휴일을 적용하자는 것이다.

제헌절은 1948년 7월 17일, 대한민국 헌법이 공포된 날로, 광복절·개천절·3·1절·한글날과 함께 5대 국경일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2008년, 이명박 정부 시절 '기업 생산성 향상'을 이유로 공휴일에서 제외됐다. 이후에도 법정 국경일 지위는 유지됐지만, 실제로는 대부분의 국민이 '그날이 무슨 날인지' 생각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게 됐다.

강대식 의원은 "제헌절은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첫 발을 내딛은 역사적 이정표"라며 "공휴일 지정은 헌법의 의미를 되새기고 민주주의 가치를 체감하는 소중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시민들 사이에서도 "제헌절을 다시 쉬는 날로 지정해 달라"는 의견이 적지 않다. 서울 송파구에 사는 직장인 김세은(35) 씨는 "아이들과 국경일의 의미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은데, 제헌절은 매년 바쁘게 흘려보내게 된다"며 "다른 국경일처럼 하루 정도는 쉬면서 나라의 시작을 돌아보는 시간이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경기도 고양시에서 자영업을 하는 이영석(49) 씨도 "광복절이나 3·1절은 다 쉬는데 제헌절만 일하는 게 이상하다"며 "헌법이 만들어진 날도 나라의 역사에선 절대 빠질 수 없는 상징인데, 그 의미를 공적으로 기념하지 않는 게 오히려 헌법의 권위나 정통성을 스스로 깎아내리는 셈"이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교사인 정다은(42) 씨는 "요즘 아이들은 제헌절을 단순히 '시험에 나오는 국경일'로만 알고 있다"며 "학교에서도 별도로 수업을 하거나 행사를 준비할 시간이 부족하다. 공휴일로 지정되면 가정에서도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제헌절을 공휴일에서 제외한 2008년 이후, 헌법 교육과 국가정체성 교육이 약화됐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특히 한글날이 한때 공휴일에서 빠졌다가 2013년 다시 지정된 전례처럼, 제헌절 역시 복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는 국민 10명 중 8명 이상이 제헌절의 공휴일 재지정에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맞물려, 대한민국 제헌국회의원 유족회는 오는 11일 국회 사랑재에서 우원식 국회의장과 오찬 간담회를 열고, 제헌절 공휴일 재지정 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요청할 예정이다. 유족회 윤인구 회장은 간담회 자리에서 "제헌국회의 헌신을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리고 싶다"며, 현재 금요일에만 관람 가능한 제헌회관을 상시 개방해달라는 요청도 함께 전달할 계획이다.

경북 경산에 거주하는 정재훈 씨는 "나는 48년생이다. 제헌절은 내 삶과 겹친 중요한 날인데, 지금은 너무 잊혀졌다"며 "젊은 세대에게 헌법의 출발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의미에서라도 쉬는 날로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공휴일 증가가 경제에 부담'이라는 기존 논리를 재차 들고 있지만, 시민들 사이에서는 "공휴일이 많아서가 아니라, 의미 있는 날을 잊고 사는 게 더 문제"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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