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은식의 페리스코프]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의 장애물

주은식 한국전략문제연구소장 

한미연합훈련인 2023년 쌍룡훈련
한미연합훈련인 2023년 쌍룡훈련

전시 작전통제권 전환을 두고 갑론을박 의견이 분분하다. 현역으로 복무하고 있는 장교들은 의견 표명을 직접하지 않았지만 예비역까지도 자기 나름대로의 의견은 갖고 있었다. 그런데 전시작전통제권을 종국에는 가져와야 하지만 준비가 된 이후 가져와야 한다. 하지만 전환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과업은 시작도 안 했다.

조건에 의한 전환을 강조하면서도 조건 중에서 가장 중요한 전문가 준비는 제대로 하지않고 있다. 합참/연합사 직위에 근무를 한번 한다고해서 전문가는 아니다. 전구작전을 기획할 줄 아는 전문가가 있는가 자문해 보자.

전환 과업의 핵심은 장교단의 정예화이다. 우리 장교단의 가장 큰 문제는 자기가 해본 것은 아주 잘한다. 해보지 않았거나 처음가는 길에 대한 일은 장담할 수 없다. 이것은 전방 지휘관들이 자기가 해 본 전술적 차원의 일은 대단히 잘 하는데 작전과 전략에 대한 견해에 대해서는 자신있게 자기 의견을 개진하지 못한다.

박근혜 대통령 당시 전환하려고 전문가를 찾아 난리법석도 이만저만 아니었다.조건에 의한 전환으로 바뀌니 다시 모르쇠로 일관했다.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자유로운 작전적 사고에 대한 일탈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군은 독일군의 사고를 수용하여 보완했다.독일군의 장군참모제도 교육을 미군은 고급군사연구(SAMS)과정으로 자기화했다. 이 제도 이전까지는 미군의 작전도 전술적 수준에 머물렀다. 이걸 깬 사람이 미국의 두퓌 장군과 돈 스태리 장군이었다.
 
◆미군이 설계한 한국군의 한계

▷"자주국방"이라는 허상:미군 중심 전력구조의 유산
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 문제는 단순히 군 지휘권의 이양 문제가 아니다.그것은 한국군이 언제부터, 어떤 전략적 배경 속에서 독립적인 전쟁 수행 능력을 상실했는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미국은 6.25 전쟁 당시부터 한국군을 독립된 군대가 아닌 미군 중심 통합 전력의 하위 구성 요소로 편입시키는 전략을 취해왔다.

그 결과 한국군은 실질적인 전쟁수행 능력보다는 미군과의 통합을 전제로 작동하는 보병 중심의 군대로 성장했다.지금 우리군은 보병장군이 기갑여단 1개 여단을 제외한 6개 전부와 공병여단장까지 잠식했다.병과의 특성을 몰라도 다 할 줄 안다고 생각한다.전쟁 안 일어난다 생각하니까!

이러한 문제를 미국방성 정보본부에서 "한국군 군사문화실태 분석"이라는 문건으로 정리한 바 있었다.이 문서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한국군 장군 전문성이 없다는 평가인데 1980년대 평가이다. 브리짓 게일(Bridget Gail)이 1979년 「Armed Forces Journal」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한국군은 처음부터 미국과 연결될 때에만 작동할 수 있는 군대로 기획되었다. 단순히 훈련이나 무기체계의 제공이 아니라 전략적 사고와 독립 작전개념까지 미군에 종속된 구조가 제도화되었던 것이다.

이는 단지 과거의 일이 아니라, 오늘날 전작권 논의가 여전히 미묘하고 정치적 논란이 큰 이유이기도 하다. 한미연합작전이라는 이름하에, 한국군은 전시상황에서 독자적 판단없이 미군 주도의 작전망에 편입되는 운명을 강요당하고 있는 것이다.

한미연합훈련인 2024년 전투기 폭격훈련
한미연합훈련인 2024년 전투기 폭격훈련

▷한국 공군 통제의 내막 – '도와주되, 막는 전략'

미국의 한국군 통제전략은 육군뿐만 아니라 공군 전력에서도 드러난다.특히 6.25전쟁 중후반부터 미국은 한국공군의 전력 증강을 엄격히 관리하고 억제했다.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한판승부'를 의미하는 '바우트 원(Bout-One)' 프로젝트이다. 미 공군은 1951년 딘 헤스 소령 주도하에 한국 공군에 F-51 무스탕 전투기를 제공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6146군사고문단을 창설해 지원했다.

이후 무스탕기 133대를 공여받아 공군조종사들은 도합 8495회 출격하여 절박함 속에서 책무를 다했다. 이는 외형상 지원을 하였지만, 실제로는 한국 공군의 자립을 막고, 전후에도 지속적으로 통제하려는 전략적 고려가 깔려 있었다.

1952년 1월 5공군사령관 프랭크 에버레스트 중장은 극동공군사령관에게 보낸 서신에서 "우리는 한국 공군의 전력 증강을 면밀히 관찰하고 있으며, 장기 지원 약속을 피하는 동시에 전후에도 통제하길 바란다"고 명시했다.

이 문서는 당시 미 공군 수뇌부가 단기적 전력 제공을 통해 표면적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장기적 자립은 억제하고자 했음을 보여준다. 미국은 한국 공군이 미 공군 없이 독자적으로 작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을 경계하였다.

이러한 조치는 단순히 한 국가의 공군 발전을 늦춘 게 아니라, 한 국가의 전략적 자율성과 안보 독립성을 제약한 결정적 사례로 볼 수도 있다.오늘날 한국 공군이 여전히 정찰,조기경보,사이버 전자전 등의 핵심 분야에서 미군에 크게 의존하는 현실은 우연이 아니다. 그 뿌리는 이미 1950년 대에 심어졌기 때문이다.

▷동맹인가, 전략적 설계인가 – '총을 주되 방아쇠는 통제한다"

한국군이 미국과의 동맹을 통해 성장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그러나 그 성장은 철저히 '설계된 성장', 즉 미국 중심의 안보 질서 속에서만 가능하도록 제한된 성장이었다. '총은 쥐어주되 방아쇠는 당기지 못하게 하는 식의 전략'이었다.이것은 단순한 군사기술적 종속이 아니라 전략적 사고의 종속으로 이어졌다.

한국군은 그동안 한미연합사라는 체제 안에서만 전쟁을 준비했고,스스로 전장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전쟁 리더십을 체득할 기회가 없었다.지금 한국 사회에서 전작권 전환 논의가 거듭 논란이 되는 것도,정치적 결단이 부족한 탓만은 아니다.수십 년간 누적된 '사고의 의존성(dependence of mindset)'이 근본적 원인이기 때문이다. 한국군 수뇌부와 전략가들이 미군과의 협의 없이는 작전 자체를 상정하지 못하게 된 구조, 바로 그것이 미국이 의도한 결과일 수도 있다.

따라서 한국이 진정한 '자주국방'을 지향한다면, 단순히 전작권을 전환하는 문제에서 그쳐선 안 된다. 보다 본질적인 과제는 한국군의 전략적 독립성과 작전기획 능력의 회복이며, 이를 위해서는 교육과 훈련, 전쟁사 기반의 리더십 재정비, 정보자산의 자립화 등 구조적 전환이 병행되어야 한다. '한미동맹'은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그 동맹이 전략적 종속을 강요하는 구조라면, 그것은 더 이상 동맹이 아니다. 그것은 전략적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한국전략문제연구소장 주은식
한국전략문제연구소장 주은식

주은식 한국전략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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