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길(62) 법무법인(유) '지평' 고문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공정거래' 분야 전문가다. 대구 출신으로 경북대를 졸업한 그는 행시 합격 후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약관심사과장까지 14년간 재직했다. '작은 정부' 기조에서 시장 경쟁을 우선으로 하면서 독과점 규제와 공정거래 이슈가 주목받던 시기였고, 공정위 역할도 커졌다.
새로운 도전을 위해 공직을 나온 후 두산으로 직장을 옮겨 9년을 일했다. 공정위 출신 인재가 귀하던 때라, 박용만 두산 회장이 직접 그를 면접보고 바로 합격시켰다고 한다. 그는 두산에서 공정거래 이슈를 총괄했는데, 그가 이직한 즈음 두산이 연이은 M&A로 체급을 키우고 여러 공정거래 사건도 잘 풀린 덕분에 '복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며 웃었다.
2015년부터 법무법인 지평에서 공정거래 업무를 맡고 있다. 2000년 설립된 지평은 300여명의 전문가들이 소송·중재, M&A, 기업 등 종합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저명 로펌이다.
이 고문은 이재명 정부에서 공정위 위상이 더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이 대통령이 경기지사 시절 '공정경제국'을 신설했다. 이 분야에 관심이 매우 많다"고 강조했다.
- 행시 합격 후 공정위에서 14년을 근무하셨다
▶시보가 끝난 후 곧바로 자원해서 공정위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처음 맡았던 일이 불공정 약관 여부를 심사하는 일이었는데 법학전공자에게 잘 맞는 일이었습니다. 첫 사건이 한국전력공사의 전기공급약관 관련된 것이었는데 엄청 부담이 되는 일이었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정전이 잦았던 시기라 갑작스런 정전으로 피해를 입는 화훼농가나 양어장 같은 시설들이 많았지요. 이 경우에 한전이 면책되는 조건을 정한 약관이 있는데 그 조건이 부당한지 여부를 심사하는 것이었습니다. 공정위에선 심판관리관실 근무를 가장 오래했는데, 각종 행정입법 제·개정, 법령질의 회신, 이의신청 및 행정소송 담당 등이 주요 업무였습니다.

- 공정위에서 두산그룹 법무실로 옮기신 계기는?
▶공직은 보람은 있지만 경제적으로 보상이 큰 업무는 아닙니다. 제가 2000년 전후로 퇴근 후에 경제법 특강을 한 적이 있었는데 강사 수입이 꽤 괜찮았어요. 마침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캐나다 밴쿠버에서 해외훈련을 하게 되었는데 이 때 지출이 좀 커서 귀국후에 월급으로는 회복하기 어려웠지요. 그래서 노량진에서 행정법 강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일단 사표를 제출했습니다. 그리고 노량진의 어떤 학원에서 행정법 단과 강좌를 시작하기로 했었는데 제가 사표낸 것을 알게 된 여러 선배님들의 소개로 두산그룹과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아무래도 대기업 집단의 경우 공정거래 이슈 관리가 중요해서 두산그룹 법무실에서도 전문가를 찾던 중이었더군요.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제출하고 법무실장과 그룹 부회장 면접까지 입사하게 됐습니다.
- 두산에서 주로 하신 일은?
▶공정거래 이슈를 총괄했습니다. 하도급거래부터 담합, M&A까지 많은 이슈에 관여했습니다. 특히 2006년 당시에는 두산이 대형 M&A를 계속하던 시기라 PMI(Post Merger Integration·인수합병 이후 통합과정) 이 크게 요구됐습니다. 다양한 기업문화와 규정, 지침을 갖고 있는 회사들이 두산의 경영철학과 윤리경영이라는 필수적인 경영전략하에 통합돼야 했습니다. 무엇보다 두산의 이해관계자들로부터의 기대·요구 등에 반응하고, 관련 법규를 준수하는 일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 기업 활동에 공정거래 리스크 관리가 중요한 이유는?
▶기업활동은 생산과 판매라는 핵심 활동과 이런 핵심활동을 지원하는 관리활동으로 구성됩니다. 이러한 활동 전반에는 공정거래 법규가 적용됩니다. 공정거래 법규를 위반할 경우에는 행정처분, 특히 거액의 과징금 부과, 입찰참가제한 요청 등 조직의 재무구조 및 사업활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처분 외에 형사고발 등을 통해 임직원의 인신구속까지 가능한 조치가 가능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공정거래 법규의 적용은 우리 경제 규모가 커질 수록 더 강화되는 경향에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경험에 의존해 법규 준수에 소홀하게 된다면 기업경영 뿐만 아니라 임직원에게도 매우 큰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습니다.
- 기업으로 옮기신 후 기업관에 변화가 생겼나?
▶공공분야에서 규제를 담당하고 있을 때에는 아무리 기업의 입장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주어진 법규의 해석 및 적용의 범위를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기업에 몸담고 보니 그 전에는 이해하기 어려웠거나 무관심했던 기업측의 주장들이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규제당국의 관점과 논리, 절차와 기업의 관점과 논리, 운영방식은 많이 다릅니다. 마치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기업으로 옮긴 후 제 역할을 '번역가'라고 소개했습니다. 이런 역할을 통해 규제당국은 기업에 대해 합리적인 범위에서 규제를 하게 되고, 기업은 규제 위반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업무 시스템을 고도화시키는데 힘을 쏟았습니다.

- 최근 공정거래 분야에서 새롭게 주목받는 주제는?
▶최근 공정거래 분야에서 가장 뜨거운 주제는 '플랫폼 산업에 대한 규제' 입니다. 온라인 플랫폼 규제는 독과점 폐해를 막고 공정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입장과 혁신 저해 및 역차별을 우려하는 입장이 팽팽히 맞선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과도한 수수료, 자사 우대 등 불공정 행위가 주요 쟁점이며, 해결책으로 강력한 사전 법제화부터 기업 자율규제까지 다양한 방식이 논의됩니다. 획일적 규제보다는 각 플랫폼의 특성을 고려해 혁신과 공정의 균형점을 찾는 사회적 합의가 중요합니다.
- '온라인플랫폼 공정화법'(온플법) 논의가 국회에서 한창이다.
▶최근 정부와 여당은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을 '투 트랙' 전략으로 나누어 추진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통상 마찰 가능성이 큰 '독점규제법'은 속도를 조절합니다. 이 법은 구글, 애플 등 거대 빅테크 기업을 직접 겨냥해 미국의 반발을 샀기 때문입니다. 대신, 소상공인과 입점업체 보호에 초점을 맞춘 '공정화법'을 먼저 처리해 민생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한다는 입장입니다. 이는 통상 압박이라는 현실을 고려하면서도, 플랫폼 시장의 공정성을 확보하려는 전략적인 선택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방향이 현실성 있고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 지역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은?
▶더 넓은 세상이 궁금해진다면, 주저 말고 문을 두드려 보세요. 서울이든, 세계 어디든 새로운 기회는 용기 있는 자의 것이니까요. 하지만 서울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것을 꼭 기억했으면 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어디에 있느냐'가 아니라, '어떤 나'로 빛나고 싶은지를 아는 것입니다. 또 5년 뒤 내 모습을 생각하며 살자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사회가 변화하는 방향을 지켜보면, 지금 내가 뭘해야 할지 답이 나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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