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도훈 기자의 아웃도어 라이프] 파도를 가르는 짜릿함…포항 월포해수욕장서 서핑 체험

모래 해변에 수심 완만…입문자 즐기기에 안성맞춤

경북 포항 월포해수욕장에서 한 서퍼가 파도를 즐기고 있다.
경북 포항 월포해수욕장에서 한 서퍼가 파도를 즐기고 있다.

날렵한 보드 위, 맨몸으로 거대한 파도와 맞선다. 때론 미끄러지듯 파도와 하나가 된다. 많은 이들이 떠올리는 해양 스포츠 서핑(surfing) 이미지다. 한여름 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밴드 비치보이즈의 노래 '서핀 USA(Surfin' USA)'의 흥겨운 리듬처럼, 서핑은 미국과 유럽·호주 등지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스포츠였다. 이제 그 파도는 대한민국에서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해마다 여름이면 지인들의 서핑 인증샷만 바라보다, 올해는 직접 도전해보기 위해 지난달 20일 경북 포항 월포해수욕장을 찾았다.

◆월포해수욕장…입문자 즐기기에 안성맞춤

'파도타기'라는 뜻의 서핑은 서프보드를 이용해 파도를 타는 스포츠다. 파도를 타면서 여러 가지 기예를 겨룬다. 특별한 규칙이 별로 필요하지 않은, 상당히 단순한 스포츠다.

언제 어디서 처음 시작됐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상당수 사람들은 하와이나 타히티에 살던 고대 폴리네시아 사람들의 문화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하와이, 뉴질랜드, 통가, 사모아, 이스터섬, 마르키즈 제도 등이 이 지역에 속한다.

하와이 사람들에 의해 근근이 이어져 내려오던 서핑이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초, 하와이 출신의 올림픽 수영 금메달리스트 듀크 카하나모쿠가 세계를 여행하며 서핑을 대중에게 시연하면서부터다. '현대 서핑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는 와이키키 해변에 최초의 현대적인 서핑 클럽을 열고 서핑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 힘을 기울였다.

이후 서핑은 미국 캘리포니아, 호주 등 자연조건이 좋은 곳을 중심으로 빠른 속도로 퍼지기 시작했다. 1960년대 영화 '기젯(Gidget)'과 '비치 보이스' 등의 서핑 뮤직은 서핑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크게 키우며 세계적인 붐을 일으키는데 한몫했다.

우리나라에선 1990년대 제주도에서 가장 먼저 시작됐다. 이후 부산 송정해수욕장 등으로 서핑이 확산됐다. 2010년 이후부터는 강원도 양양이 뜨거워졌다. "질 좋은 파도가 양양에 있다"는 소문이 퍼졌고, 2017년 서울양양고속도로 개통으로 접근성이 좋아졌다.

양양의 죽도 해변은 '한국 서핑의 메카'로 불릴 정도로 서퍼들이 몰리는 곳이다. 양양 하조대해수욕장에 있는 '서피 비치'도 그에 못지않게 뜨는 핫 플레이스다.

경북에서는 포항이 대표적이다. 월포해수욕장, 용한리해수욕장, 영일대해수욕장 등 선택지도 다양하다. 제주나 부산을 오가던 포항지역 서퍼들이 2010년을 전후해 찾아낸 장소들이다.

월포해수욕장에서 서핑숍 '누나서프'를 운영하는 김경희(58) 대표는 원래 수학 강사를 천직으로 여기던 수학학원 원장이었다. 40대 중반이던 10여 년 전 서핑을 처음 접한 뒤 서핑의 매력에 푹 빠져 2019년 이곳에 서핑숍을 열며 직업을 바꿨다. 이곳은 그가 몇몇 서퍼들과 가끔씩 찾던 곳으로, 그가 맨 처음 서핑숍을 연 뒤 서핑숍이 하나 둘 늘고 주변에 예쁜 카페가 들어서면서 조금씩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지금은 대구는 물론 서울과 수도권에서 찾는 이들도 많아졌다고 한다.

월포해수욕장의 매력은 너무 강하지 않은 파도 덕에 초심자들이 서핑하기 적당하다는 점이다. 김 대표는 "용한리 쪽은 해저지형이 암석으로 이뤄져 상대적으로 파도가 거친 탓에 중·상급자가 즐기기 좋은 포인트인 반면, 이곳은 해안이 모래로 이뤄진 데다 수심이 완만해 입문자가 안심하고 즐길 만하다"고 말했다.

경북 포항 월포해수욕장에서 서핑 입문자들이 테이크 오프 자세를 연습하고 있다.
경북 포항 월포해수욕장에서 서핑 입문자들이 테이크 오프 자세를 연습하고 있다.

◆중요한 건 균형과 집중

'누나서프'에서 입문자를 위한 2시간짜리 강습을 받았다. 가장 먼저 김 대표의 이론교육이 진행됐다. 그는 서프보드의 명칭부터 설명해 나갔다. 보통 길이에 따라 7피트 미만의 쇼트보드, 7~8피트의 펀보드, 9~10피트의 롱보드로 구분한다. 초보자에게는 일반적으로 롱보드를 권한다.

보드의 앞 부분은 노즈(nose), 뒤는 테일(tail)이라고 한다. 테일 쪽에 길이 2m 정도의 끈이 있고 끈 끝에 동그랗게 말린 부분을 발목에 고정하는데 이를 리쉬(leash)라고 한다. 보드에서 떨어져 바다에 빠졌을 때 서퍼를 지켜주는 '생명줄'이다.

서핑 슈트를 입은 수강생 4명이 모래사장으로 향한다. 몸에 완전히 밀착되는 슈트는 체온 유지는 물론, 부력이 있어 몸이 물에 뜨도록 돕고 일광 화상과 보드로 인한 부상을 방지한다.

서핑 숍에서 배운 이론을 몸으로 익힐 차례다. 각자 모래사장에 놓인 서프보드 정중앙에 올라가 엎드린다. 파도가 왔을 때를 가정하고 실습을 진행한다.

"패들(paddle), 푸시(Push), 업(Up)만 기억하면 돼요." 강사가 시범을 보인다. '패들'은 팔을 크게 교차하며 힘껏 물을 젓는 동작이다. '푸시'와 '업'은 서핑의 기본자세인 '테이크 오프(Take off, 서프보드에서 일어나는 동작)'를 설명하기 위한 구분 동작이다. 강사가 '푸시'라고 외치면 손으로 서프보드를 짚고 팔을 곧게 펴 상체를 들어 올리고, '업' 하면 시선은 정면에 고정한 채 양발을 끌어 와 일어서야 한다.

뙤약볕 아래서 테이크 오프 자세를 10여 차례 반복하고서야 바다에 들어갈 기회가 주어졌다. 가슴이 물에 잠길 정도의 깊이까지 걸어 들어가 노즈를 모래사장 쪽으로 돌린 뒤 보드에 올라탔다. 보드에 오르는 것부터 만만치 않다. 몸이 좌우로 기우뚱하며 몇 번이나 물에 빠질 뻔했다. 겨우 중심을 잡고 있는데 강사가 "패들링, 패들링"을 외쳤다. 힘차게 패들링을 하는 중에 강사의 "푸시, 업" 소리가 이어졌다. 배운 대로 상체를 들어올리고 두 발을 몸 쪽으로 당겨 일어서는 순간 그만 중심을 잃고 물속으로 고꾸라졌다. 다들 제대로 서지 못해도 즐거운 듯 수강생들은 서로를 향해 아낌없이 응원을 보낸다.

대여섯 번 도전 끝에 드디어 '테이크 오프'에 성공했다. 아슬아슬하게 중심을 잡고 서니 파도가 부드럽게 서프보드를 밀어줬다. 발끝에서 느껴지는 물살의 일렁임은 가슴을 벅차게 했다.

다만 한 번 성공했다고 매번 일어서서 파도를 탈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잘 가다가도 균형을 잃고 넘어지거나 아예 일어서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모래사장 근처엔 서프보드에서 떨어져 나뒹구는 초보자들이 모두 같은 자세로 귀로 들어간 물을 털어내느라 정신이 없다.

서핑 고수들은 서핑을 '기다림의 미학'이라고 표현한다. 본인이 탈 수 있는 파도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중심을 잡아야 한다. 수없이 많이 엎어지고 물을 먹지만 단 한번 성공했을 때 부드럽게 물 위를 가르며 느끼는 통쾌한 기분 때문에 멈추기 어렵단다.

김 대표는 "혼자만의 자유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게 서핑의 매력"이라고 했다. 보통 스포츠는 경쟁을 해서 상대를 이겨야 하는데, 서핑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의미였다.

포항 월포해수욕장 전경
포항 월포해수욕장 전경

◆서핑 이렇게 즐겨요

서핑이 대세가 된 건 젊은층과 여성을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서핑은 젊은층의 도전의식과 다이내믹한 활동, 몰입의 정서에 부합된다. 게다가 스킨스쿠버, 프리다이빙 등 다른 해양 스포츠에 비해 비교적 싼값에 즐길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기본적으로 서핑은 보드 하나만 있으면 된다.

그렇다고 초보자가 당장 보드를 구입할 필요는 없다. 입문하기도 전에 보드를 사려는 건 운전면허도 없으면서 차를 먼저 사려는 것과 같다. 전문가들은 처음엔 서핑숍에서 빌려 타다가 중고를 구입해 실력을 키우는 것이 좋다고 입을 모은다. 보드 가격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자기에게 잘 맞는 형태를 찾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래야 엉뚱한 보드를 비싼 가격에 사는 사태를 피할 수 있다.

전국의 수많은 서핑숍이 입문자를 위한 일일 강습 서비스를 운영한다. 6만 원 가량을 내면 2시간 내외의 강습을 받은 뒤 무제한으로 자유시간을 즐길 수 있다. 강습을 받지 않고 슈트와 보드만 대여한다면 3만~4만 원 정도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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