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새벽 6시 40분, 경기도 김포에 위치한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 위탁배송업체 물류센터. 아직 어둠이 남아 있는 주차장에는 각양각색의 배송 차량이 줄지어 서 있었다. 기사들은 단단히 채비를 갖추고 차에 물품을 싣고 있었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틈에서, 작업복이 아닌 평상복 차림의 몇몇이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은 오늘 하루 배송을 하지 않는 기사들이다. 휴무일을 맞은 것이다.
CLS는 이날 자료를 통해, 자사와 계약한 위탁배송업체 소속 기사 중 매일 30% 이상이 휴무를 선택한다고 밝혔다. 숫자로는 하루 평균 6천 명이 넘는다. 이 수치는 주말과 평일을 가리지 않고 유지된다. "배송기사 3명 중 1명이 매일 쉰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라 현장에서 매일 벌어지는 일이다.
택배업계에서는 이런 휴무율이 매우 이례적이다. 대부분의 경우, 한 명이 빠지면 남은 인원이 그 물량을 나눠 맡아야 한다. 때문에 휴무는 권리라기보다 '부득이할 때만 쓰는 예외'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꾸준히 쉴 수 있는 구조는 좀처럼 보기 어렵다.
CLS의 경우는 다르다. 높은 휴무율의 비결은 '백업기사 시스템'에 있다. CLS는 업계 최초로 이 제도를 도입했다. 위탁배송업체와 계약할 때, 예비 배송기사를 반드시 확보하도록 한다. 백업기사가 없으면 계약이 진행되지 않는다. 갑작스럽게 인원이 빠져도 준비된 백업기사가 즉시 투입돼 배송 공백을 메운다. 여기에 CLS의 직접 고용 인력인 '쿠팡친구'가 추가로 지원한다.
한국물류과학기술학회의 조사 결과, CLS 위탁배송업체 기사 가운데 주 5일 이하 근무를 한다는 응답은 62%에 달했다. 같은 조사에서 다른 택배사는 1~5%에 그쳤다. 이 격차는 CLS가 제도적으로 휴무를 보장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음을 보여준다. CLS 관계자는 "휴무를 위한 백업이 아니라, 안정적인 배송 품질을 유지하기 위한 구조"라며 "계약 단계에서부터 휴무를 전제로 인력을 운용한다"고 말했다.
CLS에서 활동하는 위탁배송기사들의 공통된 말은 "이제 휴무가 진짜 휴무가 됐다"는 것이다. 4년 차 기사 이모 씨(38)는 CLS에 오기 전 다른 대형 택배사에서 7년간 근무했다. 당시 그는 주 6일 근무가 기본이었다. "이전 회사에서는 하루를 쉬면 다음날 물량이 거의 두 배로 늘었어요. 쉬었다가 오히려 더 지치는 구조였습니다." 그는 CLS로 이직한 뒤 주 5일 근무로 바뀌었고, 수입도 안정됐다. "처음에는 수입이 줄까 봐 걱정했는데, 물량 배분이 일정하고 기본 수익이 유지돼 오히려 생활이 편해졌습니다."
김모 씨(42)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는 "휴무일이 고정돼 있어서 주말마다 아이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며 "예전에는 가족 모임 날짜를 잡는 게 힘들었지만 지금은 미리 휴무일을 알고 조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휴무일에는 단순한 휴식뿐 아니라 건강검진, 취미 활동, 자격증 공부 등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게 됐다.
백업기사 제도는 단순히 기사 개인의 삶을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위탁배송업체의 운영 방식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경기도 부천에서 CLS와 계약을 맺고 있는 한 위탁배송업체 운영팀장은 "휴무가 안정적으로 보장되니 신규 기사들의 정착이 빨라졌습니다. 예전에는 3개월 안에 그만두는 사람이 많았는데, 이제는 1년 이상 버티는 비율이 확실히 늘었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또 "백업기사들이 상시 대기하고 있어서 갑작스러운 결원에도 큰 혼란이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고객 불만이 줄고 배송 품질이 유지됩니다"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백업기사들은 일정이 없는 날에도 비상 연락망을 통해 대기한다. 한 백업기사 박모 씨(35)는 "보통 주 3~4일만 실제 배송을 나가고, 나머지 날은 대기합니다. 결원이 발생하면 즉시 호출을 받아 투입됩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일이 없는 날에는 다른 부업을 하거나 가족 일을 돕기도 하고, 호출이 있으면 바로 현장에 나갑니다"라고 말했다.
휴무가 안정되면 기사들의 건강 관리도 수월해진다. CLS 위탁배송기사 정모 씨(46)는 "매년 건강검진을 빠짐없이 받고, 평소에도 운동을 할 시간을 확보하고 있다"며 "이전 직장에서는 늘 피로가 누적돼 작은 감기에도 며칠씩 고생했는데, 이제는 체력이 좋아져서 감기도 잘 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CLS가 백업기사 제도를 처음 구상한 시점은 2010년대 후반, 쿠팡이 물류 인프라 확장에 속도를 내던 시기였다. 당시 택배업계 전반은 인력난과 장시간 노동 문제가 심각했다. 주 6일 근무가 관행으로 자리 잡았고, 성수기에는 주 7일 근무도 드물지 않았다. 기사들의 과로와 안전사고가 사회 문제로 번지면서, 정부와 업계는 해결책을 찾으려 했지만 뾰족한 대안은 없었다.
CLS 내부에서는 "배송은 멈추지 않으면서도, 사람이 쉴 수 있는 구조"를 만들자는 논의가 시작됐다. 결원 시에만 임시 인력을 투입하는 기존 방식으로는 한계가 뚜렷했다. 이에 계약 단계부터 예비 인력을 확보하는 '백업기사 의무화'가 제안됐다. 초기에는 비용 부담과 인력 확보 문제로 우려가 컸지만, 시범 운영에서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자 전사적으로 확대됐다.
CLS 관계자는 "시작은 단순히 결원 대응이었지만, 곧 근무 환경 전반을 바꾸는 제도가 됐다"며 "휴무 보장은 기사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고, 장기적으로는 배송 품질 향상과 인력 유지율 제고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도 CLS 모델에 주목하고 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택배업계에서 배송기사의 휴식권을 구조적으로 보장한 사례는 드물다"며 "쿠팡은 위탁 단계에서 백업기사를 확보하도록 함으로써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는 단기 처방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물류 생태계를 고려한 설계"라고 덧붙였다.
물류업계의 다른 관계자들도 비슷한 견해를 보였다. 한 대형 택배사의 전직 운영담당자는 "백업인력 상시 운영은 인건비 부담이 크기 때문에 대부분의 업체는 결원 시 단기 아르바이트에 의존한다"며 "CLS처럼 제도화하려면 물류망 규모와 자금력, 인력 관리 노하우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CLS의 제도는 기사 개인의 생활뿐 아니라 업계 관행에도 파장을 일으켰다. 장시간 노동과 인력 부족이 고착된 구조에서, 휴무를 '당연한 권리'로 인식하게 만들었다는 점이 특히 크다. 실제로 일부 중소 택배업체에서도 CLS 방식과 유사한 백업인력 제도를 검토하고 있다.
현장 기사들에게도 이 변화는 실질적인 의미를 가진다. CLS 위탁배송기사 박모 씨(35)는 "예전에는 휴무를 쓰면 동료들이 그 물량을 맡아야 해서 미안했는데, 이제는 제도적으로 비워도 된다는 게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사 최모 씨(41)는 "휴무일에 공부를 병행해 자격증을 땄다"며 "이런 환경이 아니었으면 엄두도 못 냈을 것"이라고 했다.
CLS는 앞으로도 백업기사 제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위탁배송업체와의 협력을 강화할 방침이다. CLS 관계자는 "백업기사 시스템은 단순히 인력 공백을 메우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물류 생태계를 만드는 핵심"이라며 "위탁업체들이 자발적으로 이 제도를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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