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울진 산불로 생계 '송이' 생산 뚝…목숨 담보로 바다 뛰어든다 [재난 이후, 끝나지 않은 고통]<4>

전 재산 들여 구입한 장비를 산불에 잃어버린 잠수사…맨 몸으로 들어가다 잠수병에 장해 6급 판정
지난해 울진 송이 생산량 약 7t, 산불 이전인 2021년 12t의 절반 수준…'송이의 고장'은 옛말
트라우마도 가득해, 하늘에 '산림청' 헬기만 보면 주저앉아

2022년 발생한 울진 산불 피해 지역을 찾은 지난 14일 이재민 임시거주시설에서 육한태(62) 씨가 생활하고 있다. 육 씨는 산불로 당시 억대의 산업잠수 관련 장비가 불에 타 산업잠수사 생업에 복귀를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2022년 발생한 울진 산불 피해 지역을 찾은 지난 14일 이재민 임시거주시설에서 육한태(62) 씨가 생활하고 있다. 육 씨는 산불로 당시 억대의 산업잠수 관련 장비가 불에 타 산업잠수사 생업에 복귀를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3년 전 경북 울진을 덮친 초대형 산불은 한순간에 주민들의 소중한 보금자리를 삼켜버렸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화마에 평생 일군 재산은 모두 잿더미로 변했다. 피해 주민들은 무너진 생계와 끝없는 트라우마, 새 보금자리 마련의 고민 속에서 오늘도 힘겹게 버티고 있다.

2일 경북 울진군에 따르면 지난 2022년 3월 4일 북면 두천리에서 시작된 산불은 축구장 1만9천795개에 달하는 산림(1만4천140ha)을 태웠다. 사유시설 피해액만 228억5천여만원에 달했고 주민 468명은 삶의 터전을 잃고 이재민이 됐다.

◆ 전 재산 사라지고 장비 없이 바다로

지난달 7일 오후 1시쯤 찾은 울진군 죽변면. 마을회관에서 왕복 2차선 도로를 따라 5분쯤 차로 달리자, 논공단지 위로 조성된 임시조립주택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약 5m 간격으로 늘어선 11개 동 중 10곳은 거처를 마련하지 못한 이재민들이 살고 있었다.

육한태(62) 씨 역시 그들 중 한 명이다. 20대부터 울진에 터를 잡은 그는 산불 이후 3년째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8평 남짓한 조립식 주택은 겨울에 춥고 여름엔 숨이 막힐 정도의 더위가 찾아온다.

"입시조립주택의 거주 기한이 지나 이젠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세입자였던 저희는 보상도 제대로 못 받고, 집을 새로 지을 형편도 안 되는데 어디로 가란 건지 모르겠습니다."

2022년 발생한 울진 산불 피해 지역을 찾은 지난 14일 이재민 임시거주시설에서 육한태(62) 씨가 잠수 관련 장비를 설명하고 있다. 육 씨는 산불로 당시 억대의 산업잠수 관련 장비가 불에 타 산업잠수사 생업에 복귀를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2022년 발생한 울진 산불 피해 지역을 찾은 지난 14일 이재민 임시거주시설에서 육한태(62) 씨가 잠수 관련 장비를 설명하고 있다. 육 씨는 산불로 당시 억대의 산업잠수 관련 장비가 불에 타 산업잠수사 생업에 복귀를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육 씨는 한평생 산업잠수사로 살아왔다. 수중 용접과 방파제 공사, 해양 구조물 유지보수 등을 도맡아 일했고,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장비들을 틈틈이 사 모았다.

2016년에는 사업체를 꾸렸고 4년 뒤엔 울진 바닷가에 있던 2억8천만원 상당의 주택을 팔아 장비 마련에 투자했다. 고압 콤프레셔와 수중 촬영 장비, 다이빙벨 등 그가 갖고 있던 장비는 자그마치 3억원을 훌쩍 넘었다.

그러나 산불은 모든 걸 앗아갔다. 창고에 보관해 뒀던 고가의 장비들이 한순간에 불에 타버렸기 때문이다. 육 씨에겐 단순한 장비가 아니라 평생의 노력이자 전 재산이었다.

"바닷속에서 하는 일은 목숨을 걸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돈이 좀 들더라도 수입 장비들로 구입했어요. 그게 하루아침에 사라졌습니다."

2022년 발생한 울진 산불 피해 지역을 찾은 지난 14일 이재민 임시거주시설에서 육한태(62) 씨가 불에 탄 산업잠수사 관련 장비를 취재진에게 내보이고 있다. 육 씨는 산불로 당시 억대의 산업잠수 관련 장비가 불에 타 생업에 복귀를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2022년 발생한 울진 산불 피해 지역을 찾은 지난 14일 이재민 임시거주시설에서 육한태(62) 씨가 불에 탄 산업잠수사 관련 장비를 취재진에게 내보이고 있다. 육 씨는 산불로 당시 억대의 산업잠수 관련 장비가 불에 타 생업에 복귀를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산업잠수사로서의 일을 할 수 없게 된 육 씨. 결국 산소 호스 하나에 의존해 바닷속에서 작업하는 인부 이른바 '머구리'로 생계를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특수 장비 없이 수심 60m에서 일을 하다 보니 잠수병으로 결국 사고가 났다.

좌우 고관절과 견관절 수술을 받으면서 장해 6급 판정을 받았다. 의사는 최소 1년 휴식을 권했지만 육 씨에게는 그러한 여유가 없었다. 산불로 전 재산을 잃은 탓에 생계를 위해 목숨을 담보로 하는 바다에 뛰어들어야 했다.

그런 남편을 보는 아내 김옥수(60) 씨는 산불이 야속하기만 하다. 그는 "산불만 안 났으면 남편이 안전한 장비를 갖추고 산업잠수사로 일할 수 있었다"며 "울진 앞바다는 홍합이나 조개 채취가 잘 안돼서 독도까지 가서 작업하는데, 연락이 끊기면 불안해서 미칠 지경입니다"고 말했다.

2022년 발생한 울진 산불 피해 지역을 찾은 지난 14일 이재민 임시거주시설에서 육한태(62) 씨가 생활하고 있다. 육 씨는 산불로 당시 억대의 산업잠수 관련 장비가 불에 타 산업잠수사 생업에 복귀를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2022년 발생한 울진 산불 피해 지역을 찾은 지난 14일 이재민 임시거주시설에서 육한태(62) 씨가 생활하고 있다. 육 씨는 산불로 당시 억대의 산업잠수 관련 장비가 불에 타 산업잠수사 생업에 복귀를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 송이 주산지는 옛말…"이번 생에서는 틀렸어요"

울진군은 경북 영덕군에 이어 국내 두 번째 송이 주산지였다. 주민 약 20%인 1만여명이 송이 채취로 생계를 이어왔다. 하지만 산불이 휩쓸고 지나가면서 울진 산자락엔 송이 향 대신 매캐한 냄새만이 자욱하다.

'송이의 고장'이라는 위상도 옛말이 되고 말았다. 지난해 울진 송이 생산량은 약 7t(울진산림조합 수매 물량 기준)으로, 산불 이전인 2021년 12t의 절반 수준이다.

북면 십이령로에 사는 홍진철(64) 씨는 올해 가을도 빈 산을 바라보며 지낼 예정이다.

"그 많던 송이가 다 사라졌지요. 매년 10월쯤 되면 송이를 판매했던 저도 이제는 사 먹는 처지가 됐습니다."

2022년 발생한 울진 산불 피해 지역을 찾은 지난 14일, 산불 발생 전 송이 농가를 운영하던 홍진철(64) 씨가 불에 탄 나무 옆에서 송이 채취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2022년 발생한 울진 산불 피해 지역을 찾은 지난 14일, 산불 발생 전 송이 농가를 운영하던 홍진철(64) 씨가 불에 탄 나무 옆에서 송이 채취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30년간의 직장 생활을 마친 홍 씨는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9만평 산에서 품질 좋은 송이를 키우며 제2의 인생을 계획했다. 잡목을 베어내고 송이 생육에 적합한 소나무만 남기는 산림 설계도 마친 상태였다.

퇴직 석 달 만에 덮친 산불은 홍 씨의 꿈을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불길을 피한 곳은 산 초입 일부에 불과했다. 송이가 자라는 7~8부 능선은 산불에 초토화돼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속이 상한 홍 씨는 그날 이후 산에 오르지 않고 있다.

세 차례에 걸친 국민성금으로 3년 치 생산량만큼의 보상을 받았지만 생계 수단을 잃은 상실감을 메울 수는 없었다. 대체 작물로 심은 도라지는 잡목으로 인해 뿌리를 내리지도 못했다.

"도라지가 자라기 위해선 잡목들을 제거해야 하는데 수익성이 없다고 생각해서 포기했습니다. 송이가 다시 자라려면 30년은 더 걸리는데, 제 시대에서는 이제 틀렸죠…."

2022년 발생한 울진 산불 피해 지역을 찾은 지난 14일, 산불이 발생한 . 지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민둥산으로 남아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2022년 발생한 울진 산불 피해 지역을 찾은 지난 14일, 산불이 발생한 . 지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민둥산으로 남아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북면 검성리에 사는 엄정섭(65) 씨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그는 6만평에 달하는 개인 소유 산에서 해마다 250㎏가량의 송이를 채취했지만 산불 이후 수확은 뚝 끊겼다.

불이 났던 산을 오르는 것도 쉽지 않다. 엄 씨는 개인 목상을 불러 불에 탄 나무들을 벌채했는데, 업자가 나무를 수거해가지 않아 산길이 막혔다.

"송이를 팔아 자식들 대학을 보내고 결혼도 시켰는데, 이제는 작은 밭에서 마늘이랑 참깨 농사로 버티고 있습니다. 수익도 해마다 들쭉날쭉하지만 이게 최선입니다."

◆ 30년간 들인 노력이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산불은 집과 산림만 태운 게 아니었다. 눈에 보이는 잿더미 너머엔, 한평생 쌓아온 삶의 노력이 사라져 버리기도 했다. '보이지 않는 피해'를 3년 넘게 겪고 있는 전병명(69) 씨의 이야기다.

지난달 7일 찾은 울진군 북면 주인2길 한 주택. 2022년 울진 산불은 전병명(69) 씨가 수십년간 손으로 직접 만든 강의자료들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사진은 강의자료 10권 중 불에 타지 않은 두 권의 모습. 임재환 기자
지난달 7일 찾은 울진군 북면 주인2길 한 주택. 2022년 울진 산불은 전병명(69) 씨가 수십년간 손으로 직접 만든 강의자료들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사진은 강의자료 10권 중 불에 타지 않은 두 권의 모습. 임재환 기자

울진군 북면 주인2길. 이 마을 산 아래에 살고 있는 전 씨는 집 한 채만 잃은 게 아니었다. 30년 넘게 수집한 한문 서적과 고서들은 모두 3천권이 넘었다. 구한말과 한국전쟁 이전에 인쇄된 희귀본들로 전 씨의 보물 1호였지만 산불에 모두 타버렸다.

더 참담했던 건 고향 울진에서 어르신들에게 공부를 가르치기 위해 수십년간 손으로 직접 만든 강의자료들이었다. A4용지 한 장을 만드는 데만 네 시간이 걸린 원고는 모두 10권. 이 가운데 8권이 불길에 휩싸였다. 집보다 소중했던 것들이었지만 어떤 보상도 받을 수가 없었다.

"저에겐 단순한 책과 강의자료가 아니었어요. 90년대부터 한 자씩 눌러쓴 제 인생의 시간이었죠. 다시 써보려 하고는 있지만, 언제 끝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지난달 7일 전병명(69) 씨는 집에서 나오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산 능선을 보고 눈물을 쏟아냈다. 검게 그을린 채 뼈대만 남은 소나무들은 화마가 마을을 집어삼켰던 그날의 악몽을 되살린다. 임재환 기자
지난달 7일 전병명(69) 씨는 집에서 나오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산 능선을 보고 눈물을 쏟아냈다. 검게 그을린 채 뼈대만 남은 소나무들은 화마가 마을을 집어삼켰던 그날의 악몽을 되살린다. 임재환 기자

보이지 않는 트라우마도 깊다. 이날 전 씨는 집에서 나오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산 능선을 보고 눈물을 쏟아냈다. 검게 그을린 채 뼈대만 남은 소나무들은 화마가 마을을 집어삼켰던 그날의 악몽을 되살린다.

하루는 '산림청'이라고 적힌 헬기가 머리 위를 지나가자, 곧장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가 주저앉았다.

지난 3월에는 영덕에서 산불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현장을 찾았다는 전 씨. 하지만 오래 머물지 못하고 돌아섰다.

"사람이 없는 차에 미등만 켜져 있어도 불이 날까 봐 걱정돼요. 직접 차주를 찾아가 시동을 꺼달라고 한 적도 있습니다. 산불이 나기 전에 헬기를 무서워하거나 불을 두려워하지 않았는데... 사람이 이렇게까지 달라질 줄은 몰랐어요."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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