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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이후, 끝나지 않은 고통]<6>(끝)이원화된 재난 제도 개선…현장 전문성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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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재난지역 선포 기준 모호한 사회재난 개선해야", "행안부·복지부로 이원화된 심리지원 체계 손 보자"
"부족한 재난안전 인력 늘리기 위해 지자체장의 추진 의지 중요"
재난안전 부서장 지위 격상 필요…"지자체장 직속 실장급으로 두고 다른 부서가 따르도록"
"임시조립주택 장기 거주 이재민의 정서 안정 위한 커뮤니티 시설 조성 요구", "트라우마 치료 체계 촘촘해져야"

2017년 포항 지진의 여파로 흥해읍의 한 아파트 건물 곳곳에 갈라짐 현상과 붕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13일 해당 아파트에서 만난 주민 윤성일(76) 씨가 지진 피해 흔적을 가리키며 취재진에게 관련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2017년 포항 지진의 여파로 흥해읍의 한 아파트 건물 곳곳에 갈라짐 현상과 붕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13일 해당 아파트에서 만난 주민 윤성일(76) 씨가 지진 피해 흔적을 가리키며 취재진에게 관련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는 우리나라가 재난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한 분기점이었다. 이후 30년간 제도적 보완으로 안전망은 두터워졌지만, 재난관리 체계의 개선 필요성은 계속 제기되고 있다. 기후변화로 자연재난의 위력이 거세지고 이태원 참사처럼 예측하기 어려운 사회재난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장에선 대응 기관의 역할이 겹치며 지휘 체계가 흔들리고 주민들은 속수무책으로 이재민으로 전락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상화된 재난에 대응하기 위해선 새로운 로드맵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 재난 관련 제도 개선 필요

먼저 특별재난지역 선포 요건이 모호한 현행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특별재난지역은 피해 복구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 요소지만, 사회재난은 행정적 판단에 좌우돼 선포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반면 자연재난은 피해액 등 정량 기준이 선포 요건으로 명확히 규정돼 있다.

이영주 경일대 소방방재학부 교수.
이영주 경일대 소방방재학부 교수.

이영주 경일대 소방방재학부 교수는 "사회재난은 새롭게 발생하는 것들이 많아 유형화하는 것부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다만 그간 발생한 사례만이라도 추려, 어느 정도의 피해가 발생했을 때 이를 '중대한 재난'으로 볼 수 있을지에 대한 최소한의 기준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와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으로 나눠진 현 지휘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재난 대응 시 역할이 중첩됨에 따라 발생하는 혼선을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영주 교수는 "중대본은 재난 관리를 총괄하고 중수본은 현장 대응을 맡는 구조라 위계상 문제는 없다. 그러나 중대본이 현장까지 가동되는 경우, 중수본 본부장이나 해당 부처 장관의 역할이 모호해질 수 있다. 중대본이 현장까지 지휘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중수본을 최소화하고 중대본 중심으로 운영하는 방식이 더 효율적"이라고 제언했다.

재난 발생 후 이원화된 심리지원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현재 심리지원은 행안부의 중앙재난심리회복지원단과 복지부 산하 통합심리지원단이 각각 운영하며, 유사한 기능을 병행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당시 무안공항 1층에는 통합심리지원단이, 2층에는 중앙재난심리회복지원단이 따로 배치돼 중복 대응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배재현 국회입법조사처 행정안전팀장.
배재현 국회입법조사처 행정안전팀장.

배재현 국회입법조사처 행정안전팀장은 "행안부와 복지부가 각기 법적 근거를 내세워 심리지원단을 운영하지만, 무안공항 사례를 보면 같은 일을 하고 있다"며 "재난 관리 주무 부처인 행안부를 중심에 두고 규모와 유형에 따라 복지부가 협력하는 구조로 바꿀 필요가 있다. 또 이를 위해 각 부처의 역할을 명확히 구분하는 프로토콜(규칙과 절차 등 약속 체계)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재난 피해의 빠른 회복을 위해 사전에 복구 계획을 그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을 겪은 일본은 국토교통성을 중심으로 방재대책은 물론, 재난 이후 복구까지 고려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대응하고 있다.

이영주 교수는 "재난은 한 번 발생하고 빠르게 회복하지 않으면 또 다른 재난으로 이어지면서 피해가 커진다. 우리나라에서 빈도가 높았던 재난의 피해를 파악하고, 복구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놓으면 빠른 수습을 기대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 현장 재난 전문성 강화해야

재난 피해를 줄이려면 초기 대응이 중요한 만큼, 현장 중심의 지자체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하지만 실제로는 중대본이 가동되면서 시·도지사가 이끄는 지역재난대책본부의 권한이 축소되고 있다. 이와 관련, 한국재난정보학회는 중앙정부와 분리된 지방재난관리센터를 설치해 지역 맞춤형 대응과 자율적 권한을 보장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지난 26일 영덕군 영덕읍 노물리 마을 주택 대부분이 불에 타 폐허가 된 모습.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지난 26일 영덕군 영덕읍 노물리 마을 주택 대부분이 불에 타 폐허가 된 모습.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지자체의 재난안전 분야 인력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지난해 대구에서 재난안전 분야 교육을 이수한 공무원은 786명으로 전체의 4.7%에 불과하다. 여기에 순환보직 관행으로 담당자가 평균 2년마다 교체되면서 대응의 연속성과 전문성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영주 교수는 "공무원 증원은 행안부와 기재부 승인이 필요해 쉽지 않으므로 정원 내에서 조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지자체장이 다른 부서의 인력 축소에 따른 반발을 감수하더라도 추진할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신속한 재난 대응을 위해 관련 부서장의 지위를 격상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영주 교수는 "많은 지자체에서 재난안전 부서장은 다른 부서장과 동급이거나 한 단계 낮아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고, 타 부서에 협조를 요청하기도 쉽지 않다"며 "재난 책임자를 지자체장 직속 실장급으로 두면서 다른 부서가 따르도록 하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촘촘한 이재민 지원

복구 지연으로 임시조립주택에 장기 거주하는 이재민이 늘면서, 이들의 정서 안정과 사회적 단절을 막을 커뮤니티 시설 필요성도 제기됐다. 일본의 경우 10세대 이상 단지에는 40㎡ 규모 담소실, 50세대 이상 단지에는 100㎡ 이상 커뮤니티 센터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김성삼 대구한의대 상담심리학과 교수.
김성삼 대구한의대 상담심리학과 교수.

김성삼 대구한의대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임시조립주택에 거주하게 된 분들은 급격한 환경 변화를 겪는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하며 그 중심에 커뮤니티 시설이 있다"며 "커뮤니티 시설을 소통 창구로만 볼 것이 아니라, 적절한 프로그램이 지원되는 등 복합 기능을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난 이후 복합적인 문제를 겪는 이재민들에게 일원화된 창구를 통해 관련 서비스를 안내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난 수습 과정에는 공공과 민간의 다양한 기관이 협업하고 있지만, 분절된 서비스로 여러 기관을 전전하면서 불편이 크다는 것이다.

이영주 교수는 "이재민들은 재난지원금 신청이나 피해 입증 절차를 스스로 챙기기 어렵기 때문에 여러 기관을 오가지 않도록 통합 창구가 필요하다"며 "중앙정부가 만들더라도 결국 업무가 내려가는 만큼, 지자체가 단일 창구를 운영하는 것이 직접적인 대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재난 트라우마를 해소하기 위해 보다 촘촘한 지원 서비스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김성삼 교수는 "현재 재난 트라우마 상담은 체크리스트 기록에 그쳐 깊이 있는 상담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또 대면 상담보다 전화 문답이 많아 실질적 치료가 안 되는 상황"이라며 "최소 1~2시간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재난 발생 시 국가에 의존하는 국민들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 일환으로 '풍수해보험'을 눈여겨볼 만하다. 행정안전부와 지자체가 보험료의 55% 이상을 지원하는 이 정책보험은 태풍과 지진 등으로 인한 재산 피해를 저렴한 비용으로 보장한다.

함승희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
함승희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

함승희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풍수해보험은 재난 피해 시 6천만~8천만 원을 보상받을 정도로 수령률이 높지만 제도 자체를 모르는 국민들이 많다"며 "풍수 등 재난 집중 시기 전에 가입 독려 메시지를 보낸다거나 정책 홍보 방법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불가항력적인 재난이 발생하면 국가 차원에서 현금 지원과 융자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며 "상담을 통해 증상이 심각한 경우 보건복지부 산하 정신건강복지센터와 연계해 치료를 지원하고 있다. 또한 사회재난의 특별재난지역 선포 기준을 정량화하기 위한 연구를 계획 중이며, 풍수해보험 홍보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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