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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가 발생하면 그때 둔덕을 없애면 된다 [가스인라이팅]

챗GPT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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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만 많으면 살기 좋은 나라." 어느 순간부터 유행처럼 퍼진 이 말은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다. 현실은 정반대다. 글로벌 투자이민 자문사 '헨리앤드파트너스'가 발표한 '2025년 부의 이동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탈한국' 백만장자 순유출 규모는 2천400명에 달한다. 영국, 중국, 인도에 이어 세계 4위다.

세계 최상위권 상속세율이 가장 문제다. 재벌을 차치하더라도 부유해진 중산층 릴레이 은퇴가 시작된 지금 최대 60%에 달하는 상속세는 중산층의 탈한국을 가속화한다. 기업 상속세 문제는 더 심각하다. 세계 1위 반찬통 기업 '락앤락'이 창업주 사망 이후 막대한 상속세를 감당하지 못해 외국계 자본에 매각된 것은 대표적 사례다.

부족한 정책과 제도의 예측 가능성도 심각한 수준이다. 세금과 규제는 정권에 따라 급격히 변한다. 안정적인 예측이 불가능한 환경이다. 중산층과 기업가는 장기 계획을 세우기보다 탈한국을 택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였다.

기업가 입장에선 최근 새로운 규제 부담까지 더해졌다. 최근 국회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그 대표적 사례다. 노란봉투법이란 노조가 명분 없는 파업을 해도 기업이 노조에게 손해배상 청구를 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내용과 재하청 회사가 원청 회사를 상대로 파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경제단체들은 이 법이 노사 분쟁 비용을 기업에 전가하고 경영 리스크를 키워 결국 기업의 탈한국을 부추길 것이라고 우려한다.

현대 한국 노조의 시작은 민노총 합법화가 이뤄진 1997년 '노동조합·노동관계조정법'이 제정되면서로 본다. 실질임금은 지금 1997년에 비해 1.5배 올랐다. 쉽게 말해 오른 물가를 적용하더라도 임금 수준이 1.5배 올랐다는 말이다. 최저임금은 1천400원에서 1만320원으로 10배 가까이 상승했다. 주5일제가 도입됐고 주52시간 근무제도 도입됐다. 임시공휴일 제도의 적극 시행으로 근로일수는 줄고 있다.

그간 근로자의 삶은 더 나아졌다. 그 중심에 수많은 기업가와 자산가의 투자가 있었다는 걸 부인할 사람은 없다. 그런데 우리는 이들을 '특권층'이나 '기득권'으로 규정하고 감세를 특혜로 낙인 찍어 더 많은 세금을 요구하는 버릇을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다. 특정 정치세력은 이 정서를 활용해 '부자 때리기' 정책을 추진한다. 거기에 한 술 더 떠 국회가 '무책임하게 마음대로 파업할 수 있는 권리'를 통과 시킨 상황이다.

경제계는 우려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의 우려를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은 굉장히 순진하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기업이 빠져 나갈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며 "만약 그렇게 된다면 법을 고치면 된다"고 했다.

우리 기업의 탈한국을 '참사'라고 표현해도 말릴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바꿔서 생각해 보자. 무안공항 참사 희생자의 사망 원인인 된 콘크리트 둔덕에 대해 여러 차례 경고가 있었고 누군가 이 경고를 듣고 "참사가 발생하면 그때 둔덕을 없애면 된다"고 답했다면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최근 정부가 2007년부터 둔덕을 없애야 한다는 현장 경고를 여러 차례 무시해 왔다는 보도를 봤다. 사실 우리는 답을 알고 있다.

원종현 프리드먼연구원 주임연구원

*가스인라이팅(Gas Enlighting)은 매일신문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칼럼 공간입니다. '가스라이팅'은 1930년대 가스등을 사용하던 시절 파생된 용어입니다. 가스등을 조금씩 어둡게 해 누군가를 통제하는 걸 의미하는데요 '가스인라이팅'은 그 반대로 등불을 더 밝게 비춰주자는 뜻입니다. 젊은이들의 시각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자주 선보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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