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물살에 휩쓸린 아버지, 아들 이름만 목놓아 불렀다 [재난 이후, 끝나지 않은 고통(2)]

나무와 돌덩이에 휩쓸린 '부자(父子)의 비극'…산사태에 아버지 잃은 아들
2년째 실종된 아내 찾는 남편 "우리에게 안 돌아와도 좋으니, 살아만 있길"
주머니 사정으로 임시조립주택 벗어나기도 힘들어

2023년 예천 산사태 피해로 마을 주민 2명이 실종돼 현재까지도 찾지 못하고 있는 감천면 벌방리 마을을 찾은 지난 13일 복구된 마을 모습(아래) 과 산사태 당시 처참했던 마을 모습.(위)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2023년 예천 산사태 피해로 마을 주민 2명이 실종돼 현재까지도 찾지 못하고 있는 감천면 벌방리 마을을 찾은 지난 13일 복구된 마을 모습(아래) 과 산사태 당시 처참했던 마을 모습.(위)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지난달 23일 찾은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2길. 100년 가까이 평화롭던 이 마을은 2년 전 여름 집중호우로 산사태가 발생하면서 초토화됐다.

경상북도에 따르면 2023년 6~7월 예천군에는 731㎜의 비가 내렸다. 평년 연간 강수량이 978㎜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1년간 하늘에서 내릴 물의 4분의 3이 한 달 사이에 쏟아진 셈이다.

유광호 감천면 벌방리 이장은 "산사태로 마을 25가구 모두 피해를 입었고, 그중 6가구는 전파되면서 지금은 흔적도 찾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재난이 휩쓸고 지나간 이 마을은 산사태취약지역으로 지정되면서 동시에 수해복구 흔적의 모습이 보였다. 비포장도로는 차량이 다닐 수 있을 만큼 정비됐고, 외벽이 부서진 집들도 일부 수리를 거쳐 제모습을 되찾았다.

그러나 마을에는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남아 있다. 경북 산사태로 숨진 29명 가운데 실종자 2명이 이곳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가족의 시신조차 찾지 못한 이들은 지금도 사무치는 아픔 속에 살아가고 있다.

◆산사태에 하천으로 떠내려간 '부자'

2023년 예천 산사태 피해로 마을 주민 2명이 실종돼 현재까지도 찾지 못하고 있는 감천면 벌방리 마을을 찾은 지난 13일 복구된 마을 모습(아래) 과 산사태 당시 처참했던 마을 모습.(위)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2023년 예천 산사태 피해로 마을 주민 2명이 실종돼 현재까지도 찾지 못하고 있는 감천면 벌방리 마을을 찾은 지난 13일 복구된 마을 모습(아래) 과 산사태 당시 처참했던 마을 모습.(위)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벌방2길에 장대비가 쏟아진 건 2023년 7월 15일 토요일 자정을 넘긴 시각. 아버지와 함께 유류 납품 업체를 운영해 온 김창우(36·가명) 씨는 주말이면 서울 본가로 향했지만, 이날만큼은 달랐다. 해외에서 들여온 수입 설비를 설치해야 했기 때문에 처음으로 예천에 남았던 것.

서울에 있는 아내와 통화하던 김 씨는 예사롭지 않은 빗줄기에 불안한 마음으로 집 밖을 나섰다.

"집 앞 하천이 걱정돼서 나가 보니 이미 범람해 발목까지 물이 차 있었어요. 창고에 있는 전기 설비들이 비를 맞으면 안 되니까 아버지를 깨워야겠다고 생각해서 들어가려 했죠. 그런데 삽시간에 물이 불어 무릎까지 잠겼습니다."

곧장 아버지와 함께 집을 나선 김 씨. "아버지 비가 정말 많이 온다"라고 말하던 순간이었다. 사람 키를 훌쩍 넘는 나무와 돌덩이, 흙더미가 굉음을 내며 덮쳤고 두 사람은 집 앞 하천으로 휩쓸렸다.

지난달 23일 찾은 예천시 감천면 벌방리 마을 앞 하천. 2023년 예천 산사태로 김창우(36·가명) 씨와 그의 아버지는 이곳 하천에 속수무책으로 떠내려갔다. 임재환 기자
지난달 23일 찾은 예천시 감천면 벌방리 마을 앞 하천. 2023년 예천 산사태로 김창우(36·가명) 씨와 그의 아버지는 이곳 하천에 속수무책으로 떠내려갔다. 임재환 기자

평소 잔잔하기만 했던 하천은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성난 파도로 변해 있었다. 김 씨와 아버지는 속수무책으로 휘몰아치는 물살에 휩쓸려 300m 가까이 떠내려갔다. 이후 하천은 두 갈래로 갈라졌고, 김 씨는 수심이 얕은 쪽으로 아버지는 깊은 물가로 빨려 들어갔다. 그렇게 두 사람의 운명은 갈렸다.

"아버지께서 샌드위치 패널을 붙잡은 채 떠내려가셨는데 제 이름을 목 놓아 부르셨어요. 새벽이라 어두워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고, 목소리만 들렸던 그때가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산사태로 쏟아진 잔해에 무릎과 다리가 찢긴 김 씨는 병원으로 옮겨졌다. 상처 부위를 절개할 만큼 큰 수술이 진행됐고, 휠체어에 몸을 의지해야 했다. 그럼에도 머릿속엔 오직 하나의 바람뿐이었다. 패널이 뗏목 역할이라도 해 아버지가 살아 있기를.

김 씨를 비롯한 가족 모두 예천으로 내려왔지만 군·경·소방의 수색 소식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기적은 점점 희미해져 갔다.

2023년 예천 산사태 피해로 마을 주민 2명이 실종돼 현재까지도 찾지 못하고 있는 감천면 벌방리 마을을 찾은 지난 13일 유광호 마을 이장이 산사태 당시 산에서 밀려 내려온 바위를 가리키며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2023년 예천 산사태 피해로 마을 주민 2명이 실종돼 현재까지도 찾지 못하고 있는 감천면 벌방리 마을을 찾은 지난 13일 유광호 마을 이장이 산사태 당시 산에서 밀려 내려온 바위를 가리키며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인력 1만9천10명과 보트·헬기 등 장비 5천52대가 투입된 수색은 68일간 이어지다가 중단됐다. 실종자가 유실됐을 가능성과 집중 수색에도 흔적을 찾지 못한 점, 가족이 수색 종료를 받아들인 점 등이 고려됐다. 누적 수색 거리는 총 1천972㎞. 강원도 태백에서 발원하는 낙동강 전체 길이인 510㎞를 4번 오간 셈이다.

"소방대원이 그러더라고요. 집 앞 하천에서 낙동강까지 떠내려갔다면 강 폭이 너무 넓어 찾기 어렵다고요. 차라리 매몰됐으면 수색 반경이라도 정해진다고 하던데…저는 결국 아버지 시신조차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가족을 잃어버린 슬픔은 일상 곳곳에서 찾아온다. 둘이서 하던 유류 납품 업무를 혼자서 떠안을 때마다 늘 아버지가 생각난다. 사망이 아닌 '실종'이었기에 이후 행정 절차도 복잡했다.

"토사가 덮쳐 폐차해야 할 차량부터 통장까지 모두 아버지 명의였습니다. 아버지가 실종됐으니까 서류 업무가 진행이 안 되는 거예요. 실종자에 한해 인정 사망 처리 절차가 끝나기까지 6개월이나 걸렸습니다."

◆"돌아오지 못한 아내, 지금도 찾아요…"

2023년 예천 산사태 피해로 마을 주민 2명이 실종돼 현재까지도 찾지 못하고 있는 감천면 벌방리 마을을 찾은 지난 13일 유광호 마을 이장이 산사태 이후 복구된 마을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아래) 산사태 당시 처참했던 마을 모습.(위)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2023년 예천 산사태 피해로 마을 주민 2명이 실종돼 현재까지도 찾지 못하고 있는 감천면 벌방리 마을을 찾은 지난 13일 유광호 마을 이장이 산사태 이후 복구된 마을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아래) 산사태 당시 처참했던 마을 모습.(위)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김 씨와 같은 벌방2길에 거주 중이던 이승호(65·가명) 씨는 2년 전 산사태로 실종된 아내를 아직도 찾고 있다. 운전 도중 나뭇가지에 무언가 걸려 있는 듯한 모습이 보이면, 차에서 내려 직접 눈으로 확인한다.

이 씨의 집은 산 끝자락에 있었던 탓에 산사태의 피해를 정면으로 맞았다.

"집 옆 과수원에 비 피해가 있을 것 같아서 나왔는데, 갑자기 '쾅'하는 소리가 났어요. 그래서 손전등으로 비춰봤더니 회오리바람이 불면서 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평생 일군 터전이 사라진 것도 참담했지만 더 큰 문제는 아내가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점이다. 휴대전화도 두고 나온 탓에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다. 산사태로 뒤덮인 토사를 손이 닳도록 치워봤지만 역부족이었다.

날이 밝으면서 투입된 굴착기 수십 대가 흙더미를 치워도 아내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이 씨는 아내의 실종 소식을 듣고 수원에서 내려온 두 아들과 꼬챙이를 손에 쥔 채 마을 곳곳을 헤집었다.

당국의 수색이 끝난 뒤에도 이 씨의 머릿속에는 '아내가 하천을 따라 떠내려갔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맴돌았다. 마을 초입부터 낙동강 하류까지 움직인 것도 수십 번이다.

2023년 예천 산사태 피해로 마을 주민 2명이 실종돼 현재까지도 찾지 못하고 있는 감천면 벌방리 마을을 찾은 지난 13일 복구된 마을 모습(아래) 과 산사태 당시 처참했던 마을 모습.(위)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2023년 예천 산사태 피해로 마을 주민 2명이 실종돼 현재까지도 찾지 못하고 있는 감천면 벌방리 마을을 찾은 지난 13일 복구된 마을 모습(아래) 과 산사태 당시 처참했던 마을 모습.(위)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2년이 지난 지금도 이 씨는 아내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며 살아간다. 사과 농사를 생업으로 삼았던 그는 아내와 함께 약을 치고 사과를 따며 노후를 보낼 줄 알았다. 이제는 홀로 남겨진 이 마을에서 비가 오는 날이면 눈물을 훔치고 있다.

"저에게 안 돌아와도 되니까, 어딘가에서 살아만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저 같은 하늘 아래 숨이라도 쉬고 있다면 그것으로 됩니다."

이 씨는 현재 거주 중인 임시조립주택도 내년 7월이면 나가야 한다. 가지고 있는 돈이 넉넉하지 않아 인근에 조성 중인 이주단지로 들어갈 형편도 못 된다.

"아내 실종과 관련해 받은 보상금이 총 8천만원인데 재난으로 잃어버린 사과 농사 장비를 다시 마련하느라 이미 다 써버렸어요. 매년 1천만원 남짓 벌어 겨우 먹고사는 처지라 이곳을 나가면 갈 곳이라곤 과수원 농막뿐입니다."

2023년 예천 산사태 피해로 마을 주민 2명이 실종돼 현재까지도 찾지 못하고 있는 감천면 벌방리 마을을 찾은 지난 13일 마을 옆 공터에 산사태 발생 당시 이재민들이 묵었던 임시거주시설이 마련돼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2023년 예천 산사태 피해로 마을 주민 2명이 실종돼 현재까지도 찾지 못하고 있는 감천면 벌방리 마을을 찾은 지난 13일 마을 옆 공터에 산사태 발생 당시 이재민들이 묵었던 임시거주시설이 마련돼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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