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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현장-김지수] 숨겨지지 않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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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 사회부 기자

김지수 사회부 기자
김지수 사회부 기자

"54만 달서구 주민 상당수는 성서 소각장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릅니다."

지난 10일 대구 달서구 이곡동에서 열린 '성서소각장 2·3호기 사용 연장에 대한 정책 토론회'에서는 성서소각장에 대한 주민들의 무지와 이를 야기한 대구시를 향한 성토가 쏟아졌다. 지역 주민들로 구성된 토론회 참석자 대다수는 대구시가 2·3호기 대보수 및 사용 연장 방침을 정하고도 이를 주민들에게 알리지 않았으며, 방침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주민 의견은 배제됐다고 입을 모아 비판했다.

소각시설의 위험성에 대한 지적도 뒤따랐다. 토론회 발제자로 나선 지역 전문가는 쓰레기 소각 시 배출되는 각종 유해 물질의 위험성을 언급했다. 그는 소각시설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유해 물질이 기준치를 넘어서지 않더라도 건강에 유해하다고 지적했다. 환경부가 정한 배출 기준은 건강 기준이 아니며, 이 기준을 지켰다고 해서 주민에게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 할 수 없다는 게 골자였다. 더욱이 기존 대기질 자체가 좋지 않은 데다, 봄철 미세먼지가 급증할 때면 유해 정도가 더욱 올라간다고도 했다.

이어지는 토론회에서 나온 말들은 예상과 달리 사용 연장 방침을 철회하라는 게 주된 내용이 아니었다. 오히려 주민들은 소각시설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그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었다. 이들이 한마음으로 비판하는 지점은 정책 결정과정에서 주민 의견이 배제됐다는 점이었다. 주민에게 유해한 시설을 계속해서 사용하겠다는 결정이 있기까지 아무런 합의나 설득, 논의 과정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한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는 대구시가 과거 1호기 증설을 결정하면서 2·3호기는 사용하지 않겠다고 해 놓고 결정을 번복한 점도 언급했다. 사회 기피 시설에 대한 정책 추진 및 결정 과정에는 공론화 위원회나 시민 참여단 등을 통한 의견 수렴 절차가 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대구시는 지난해 7월 성서소각장 2·3호기 사용을 연장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현재 관련 용역을 진행 중이다. 방침이 정해진 지 1년이 훌쩍 넘었지만 그동안 주민들은 대구시로부터 어떤 설명도 들을 수 없었다. 시는 용역을 토대로 한 구체적인 대보수 방향과 내용이 있어야 주민 설명회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이미 방침은 결정된 뒤다. 주민들은 일방적인 결정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토론회와 연구회를 열고, 각종 답사 등을 통해 대책을 강구할 수밖에 없었다.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숨긴' 정책이 돼 버린다면 뒤이어 일어날 후폭풍은 거셀 것이다. 정책 토론회에 참석한 이들은 '소각장' '사회 기피 시설' 등 부정적 표현 대신 정책 입안자들이 '자원 회수 시설'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는 데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주민들에게 허심탄회하게 공개하고 설명, 설득하기보다는 부정적 측면을 최소화하고 감추려는 듯한 대구시의 태도에 반발하고 있었다.

대구시는 지난 6월부터 '성서 자원 회수 시설 2·3호기 대보수 타당성 조사 및 기본계획 수립 용역'을 진행 중이다. 내년 3월 용역이 마무리되기 전 오는 11월쯤 용역 중간보고회 성격의 주민 설명회를 거치겠다고 밝혔다. 설명회에서는 2·3호기 대보수와 연장 사용의 타당성 설명에 급급하기보다는 그간의 정책 결정 과정에 있어 시민 참여가 제한적이었던 점에 대한 해명도 필요해 보인다. 일부 주민들은 소각장의 필요성을 알기에 위험을 감수할 수 있다고 했다. 투명한 정보와 행정은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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