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스님이 혼란스러운 마음을 호소하자, 스승은 흐린 물이 담긴 병을 건네며 책상 위에 그대로 두라고 했다. 몇 시간 뒤, 흙탕물은 가라앉아 맑아졌다.
맑아짐은 고요함에서 온다는 단순한 진리, 오늘 우리에게 더욱 절실한 교훈이다. 어느 사회든 언젠가 아이들이 이전 세대와 전혀 다르게 자라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 한국은 지금 그 지점에 서 있다. 변화는 조용히 오지 않았다. 손전화(휴대폰), 알고리즘, 그리고 어린 마음을 끊임없이 붙잡아 두려는 '주의력 경제'가 그 변화를 밀어붙였다. 1999년 처음 한국에 왔던 순간을 떠올리면 그 대비는 더욱 뚜렷하다.
그 무렵 해리 포터의 두 번째 모험이 막 출간되었고, J.K. 롤링은 한 세대 전체에게 '이야기의 힘'을 다시 상기시키고 있었다. 당시의 서점 바닥에는 소설 속 세계에 빠진 아이들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야기들은 이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달된다. 며칠, 몇 주에 걸쳐 집중과 고요함을 요구하던 서사는 이제 30초도 안 되는 짧고 난해한 영상 조각으로 쪼개졌다. 아이들은 한 시간에 수십 개의 단편을 소비하고, 끝까지 보기도 전에 다음으로 넘어가며 깊이도 성찰도 남기지 않는다.
『불안한 세대』에서 조너선 하이트는 인스타그램에 중독된 딸을 잃었던 한 어머니의 사례를 소개한다. 제한을 두자 우울과 자해로 악화된 비극이었다. 게임이 처음에는 긍정적이었던 아들이, 장시간 플레이 후 분노·짜증·우울로 급변했던 한 아버지의 이야기 역시 나온다.
이쯤에서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아이들은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로 '재배선'되고 있는가? 활기찬 소음으로 가득해야 할 청소년기는 불안하고 예민한 고립감으로 대체되고 있다. 한국의 여러 연구진은 이 변화를 수치로 기록해 왔다. 4만1천명이 넘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한 연구는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2~4시간, 4~6시간, 6~8시간, 8시간 이상으로 나누어 분석했는데, 하루 4시간을 넘는 집단에서 우울, 자살 충동, 약물 사용 위험이 뚜렷하게 증가했다. 그중 우울과 자살 충동의 동반 비율이 가장 높았다.
2017년에서 2020년 사이, 하루 2시간 이상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청소년 비율은 약 64%에서 86% 가까이로 급등했다. 단순한 사용 시간 증가가 아니라 문화적 전환이었다. 페이스북이 시들해지자, 2012년 인수된 인스타그램이 시각 중심 문화를 앞세워 청소년층을 석권했다. 이어 2017년 글로벌 출시 후 2018년 뮤지컬리와 합병된 틱톡이 등장했다. K-팝 팬덤과 10초 유머에 힘입어 한국 청소년 사이에 폭발적으로 확산됐다.
2020년 코로나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교실은 온라인으로 넘어갔고, 우정도 화면 너머에서만 유지되었으며, 스마트폰은 친구이자 교과서가 되었다. 책 읽기는 느리고 촌스러운 활동처럼 보였고, 엄지손가락 한 번만 움직이면 끝없이 이어지는 피드와는 경쟁조차 되지 않았다.
이 변화는 우연이 아니었다. 페이스북 초기, 회사는 행동심리학자와 설득기술 전문가를 고용했다. 의존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강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목표는 도박과 동일한 보상 회로, 예측 불가능한 '좋아요', 댓글, 알림의 순간적 쾌감, 을 설계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는 전 세계적 '주의력 경제'의 중심이 되었고, 아이들까지도 방금 누렸던 만족을 채 끝내기도 전에 다음 미세한 보상을 갈망하도록 조건화했다.
이 디지털 침식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아동기 붕괴다. 책에서 멀어지고, 상상력이 자라던 공간에서 고요한 단절로 변해가는 아이들이 너무 많다.
이 모순은 한국 교실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스마트폰 중독 우려가 커지는 와중에도 교육 정책은 디지털화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태블릿과 스마트보드가 필기구와 종이를 대체했고, 온라인 플랫폼이 공책을 밀어냈다. 그러나 이런 기술 투입 비용이면 더 많은 교사, 더 작은 학급, 아이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의 관심을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
우리는 인간적 연결을 와이파이로 바꾸고, 교육계를 장비와 소프트웨어로 수익을 내는 이들의 '꿈'에 넘겨주었다. 교실과 침실, 그리고 아이들의 마음을 디지털 세계에 열어준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세계, 그중에는 해로운 것들까지, 에게 그들의 마음으로 들어오는 문을 활짝 열어준 셈이다.
그러나 스님의 병은 여전히 책상 위에 놓여 있다. 고요해야만 맑아진다. 지금의 세상은 알림 하나마다 물을 다시 흐리게 만들고 있다. 두꺼운 책과 조용한 독서 공간에서 몰입하던 한국의 아이들은 이제 끝없는 클릭과 스와이프 속에 잠겨 있다.
앤서니 헤가티 범죄심리학자.DSRM 리스크 & 위기관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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