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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론새평-오정일] 사법부 개혁을 부인하기 어렵다고 봄이 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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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일 경북대 교수회 의장

오정일 경북대 교수회 의장
오정일 경북대 교수회 의장

조희대 대법원장 퇴진을 두고 여야가 맞서고 있다. 여당은 조 대법원장 퇴진을 사법부 개혁이라 하지만, 야당은 사법부 탄압으로 본다. 사실 조 대법원장 퇴진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사법부 위기는 국민이 법원을 신뢰하지 않는데서 시작됐다. 재판의 공정성을 의심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법관의 신중하고 절제된 처신과 언행이 없다면, 재판 독립은 공허한 구호에 그칠 것이다." 조 대법원장이 한 말이다.

'행정고시' 합격자는 5급 사무관으로 시작해서 20년이 지나야 3급 부이사관이 된다. 판사는 임용과 동시에 3급 대우를 받는다. 판사 1호봉이 일반공무원 3급 1호봉과 비슷하다. 판사 1호봉은 교원 22호봉보다 높다. 22년 차 교사가 1년 차 판사보다 급여가 낮다. 처음부터 판사의 급여가 높지는 않았다. 1981년 '법관 보수 규정'을 개정하면서 급여가 크게 올랐다. 전두환 정부가 사법부에 준 특혜라 할 수 있다. 이 특혜를 없애는 것이 사법부 개혁의 시작이다.

'전관예우'도 문제다. 판사는 사표를 내면 언제든지 변호사 개업을 할 수 있다. 고위직 판사 경력은 고액 사건 수임(受任)으로 이어진다. 현직 판사가 전직 판사의 사건을 배려할지 모른다는 의심이 생기면, 법원에 대한 신뢰는 무너진다. 법원이 아무리 '전관예우'를 부정해도 소용없다. 어제까지 판사석에 앉아 있던 사람이 오늘 변호사석에 서 있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

우리나라는 법원행정처가 하급심(下級審) 판결문을 선별적으로 공개한다. 개인정보 보호와 무죄추정 원칙 때문이고 하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요즘은 얼마든지 익명으로 처리할 수 있다. 오히려 부실한 판결을 감추고, 판례를 독점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모습은 어디서 본 듯하다. 데자뷰.

중세 가톨릭교회도 라틴어 성경을 독점함으로써 권위를 유지했다. 그러나 그 권위는 영어 성경이 보급되면서 무너졌다. 판결문 공개는 판사 평가를 가능하게 한다. 판사의 실력은 판결문에 드러난다. 다른 판결문을 '복사해서 붙인' 판사가 누구인지도 알 수 있다.

매년 대법원에 3~4만 건의 사건이 접수된다. 사건이 너무 많다. 그런데도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에 반대한다. 이해가 안 간다. 대법관이 늘면 권위가 약해진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것은 착각이다. 권력은 줄겠지만, 권위는 약해지지 않는다. 이런 태도는 의사들과 닮았다. 의사들도 일이 너무 많다고 하면서 의대 증원에는 반대한다.

우리나라는 판사, 검사, 변호사만 대법관이 될 수 있다. 이른바 '법조삼륜(法曹三輪)'은 한 뿌리다. 여당이 대법관 자격을 완화하려고 하자, 사법부가 반대했다. 자기 밥그릇을 지키는 점에서 판사들도 장삼이사(張三李四)와 다르지 않다.

재판을 받는 국민은 판사의 태도에 실망한다. 한마디로, 덧정없다. 내가 아는 사람의 이혼 소송은 3년이 걸렸다. 그사이 판사가 세 번 바뀌었다. 재판은 매번 원점으로 돌아갔다. 몇 달에 한 번 열리는 재판은 30분 만에 끝났다. 인공지능이라면 10초에 끝낼 재판을 법원은 3년이나 끌었다. 판사는 인공지능보다 '가성비'가 떨어진다. "법관에게는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을 통해 기본권을 보장하라는 막중한 책무가 부여돼 있다." 이 역시 조 대법원장의 말이다.

국민이 판결에 승복하는 이유는 판사가 전지전능해서가 아니다. 불만이 있더라도 판결에 따르기로 묵시적으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합의에는 전제(前提)가 있다. 판사가 공정하고 성실해야 한다는 것. 그 전제가 무너지면 국민이 판결에 승복할 이유도 사라진다. 지금도 판사를 인공지능으로 대체하자는 말이 나온다. 농담이 아니다. 사법부에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사법부가 스스로 변해야 한다. 고등법원 부장판사 이상의 전관 개업은 금지해야 한다. 대법관을 늘리되, 법조 밖 인물에게도 문을 열어야 한다. 하급심 판결문은 예외 없이 공개해야 한다. 우리 국민은 까다롭다. 다른 사람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아무나 존경하지 않는다. 그런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위인은 이순신과 안중근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멸사봉공(滅私奉公)이다. 자기를 희생하지 않으면 신뢰도 존경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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