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20세기 초 유럽·아시아·라틴아메리카 등 세계 곳곳에서 몰려든 수많은 이민자들이 미국에서 새로운 삶과 기회를 얻었다. 백인, 흑인, 아시아인, 히스패닉 등 출신과 문화가 다른 집단이 한데 어우러져 거대한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용광로(鎔鑛爐)'라 불렸다. '서로 다른 것들을 녹여 단일한 미국인으로 만든다'는 용광로 이론까지 나왔다. 국적·인종·문화의 다양성은 미국이 혁신과 창조성의 아이콘이 되고 경제·과학·문화·스포츠 등 거의 모든 분야와 영역에서 세계 최강이 되는 동력이 됐다. 다양성과 포용성이 만든 '아메리칸 드림'은 미국의 상징과도 같았다.
사실 미국은 이민자들의 나라다. 그 시작은 17세기 초 영국 등 유럽 국가의 이민자들이 대서양 연안을 중심으로 식민지를 건설하면서다. 카터, 부시 등 역대 대통령들과 워런 버핏, '석유왕' 록펠러 등도 대서양을 건너온 이민자 후손이다. 이후 다양한 출신이 하나의 시민권과 가치 아래 융합(融合)돼 살아가면서 흑인 첫 메이저리그 선수인 재키 로빈슨, 아시아계 NBA 선수 등 스포츠 스타, 흑인 대통령, 라틴계 대통령 후보까지 나왔다. 최근 논란이 된 H-1B(전문직) 비자를 받고 미국으로 건너와 성공한 인물도 일론 머스크를 비롯해 구글·마이크로소프트(MS) CEO 등 차고 넘친다.
뜨거웠던 그 '용광로' 미국에 이상 기류가 감지(感知)된다. 트럼프 대통령 집권 후 이민의 문은 전례 없이 좁아지고, 불법체류자 단속 등으로 유색 인종의 설 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비자 역시 발급받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이다. 얼마 전 조지아주 한국인 단속 및 구금 사태가 대표적인 예다. 트럼프는 머스크 등이 미국으로 올 수 있었던 취업 비자 H-1B 비자 수수료를 최근 1천400달러에서 10만달러로 100배나 올렸다. 당장 미국 내 기업들의 인재 유치 및 유지에 비상이 걸렸다. 미국의 글로벌 경쟁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트럼프의 슬로건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에서의 '미국'엔 백인만 있는 게 아니다. 지금의 미국을 만든 다양한 인종과 이민자, 취업자들도 함께 있다. 이를 부정하면 미국의 정체성도 무너진다. 용광로가 식은 미국은 어떤 모습일까. 더 잘사는 나라가 될까? 아님 몰락의 시작일까?
hoper@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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