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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권광택] 안동댐 취수, 공허한 약속이 된 '물 하이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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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의회 권광택 행정보건복지위원장. 경북도의회 제공
경상북도의회 권광택 행정보건복지위원장. 경북도의회 제공

시(市)민 없는 상생은 없다

최근 정부가 낙동강 취수원 다변화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대구·안동이 한때 밀어붙였던 '맑은 물 하이웨이' 사업이 다시 지역사회의 논란거리로 떠올랐다. 안동댐 하류에서 대구까지 도수관을 연결해 하루 수십만 톤의 물을 공급하겠다는 이 계획은 시작부터 거대한 기대를 안겼지만, 지금은 화려한 약속만 남긴 채 공허한 흔적이 되고 말았다.

이 사업은 본래 2022년 구미 해평취수원을 활용하기로 한 합의에서 출발했지만, 이후 방향을 바꿔 안동댐 취수로 추진됐다. 당시 대구시와 안동시가 내세운 명분은 '상생'이었으나, 결과적으로 정책적 오류였음이 드러났다. 홍준표 전 시장 사임 이후 대구는 동력을 잃었고, 안동시민에게 돌아온 것은 실질적 이익이 아닌 상실감뿐이었다.

무엇보다 안동댐 취수에는 풀리지 않은 위험이 적지 않다. 첫째는 수질 문제다. 안동댐 상류에는 폐광산과 영풍석포제련소가 자리하고 있다. 카드뮴·비소·납 등 중금속 유출 위험은 오래전부터 지역민을 불안하게 해왔다. 2022년 환경부 조사에서 카드뮴 농도는 기준치 이내였지만, 퇴적물은 '매우 나쁨' 수준이었다. 이는 지금은 괜찮아도 언제든 수질 악화로 이어질 수 있는 잠재적 위험을 보여준다. '깨끗한 물'이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불안이 결코 가볍지 않다.

둘째는 기후위기다. 가뭄이 길어지면 안동댐은 하천 유지유량조차 확보하지 못할 수 있다. 최근 10년간 안동댐 저수율은 40%대에서 70%대까지 널뛰었고, 2014년에는 22.7%까지 떨어진 적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구에 물을 보내려 한다면, 안동 농민과 하류 주민들이 먼저 희생을 치러야 한다. "우리 댐의 물이 빠져나가 삶이 위태로워진다"는 지역민의 우려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셋째는 경제성 문제다. 안동댐 활용안은 총사업비 1조5천억원대, 도수관로만 110㎞에 달한다. 반면 구미 해평취수원 활용안은 5천억원대, 관로 길이도 절반에 불과하다. 환경부 용역에서도 안동댐 활용안의 경제성 지표(B/C)는 0.57로 나와, 예비타당성조차 통과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명분도, 실익도 모두 빈약한 셈이다.

넷째는 지역 간 갈등이다. 도수관로가 지나는 고령·성주·상주·구미 등 8개 지자체 주민들은 농업용수 부족, 지하수 고갈, 생태계 훼손, 개발 제한을 우려한다. 과거 임하댐~자인댐 도수로 공사 때 끊임없이 민원이 제기된 사례를 떠올리면, 이번에도 갈등은 불 보듯 뻔하다. 특정 도시의 필요가 다른 지역민의 삶을 짓밟는 일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안동시민의 불안과 상실감이다. 김휘동 전 안동시장은 일찍이 안동댐 취수 시 ▷하천 유지수 감소 ▷문화유산 생태계 훼손 ▷개발 제한 강화 등을 경고한 바 있다. 그러나 대구시와의 협약에 담겼던 재정 지원, 관광 활성화, 교통망 확충 등은 단 한 줄도 지켜지지 않았다. '맑은 물 상생'이라는 구호만 요란했을 뿐, 안동시민에게 돌아온 실질적 혜택은 전무하다.

결국 '물 하이웨이' 사업은 상생을 내세웠지만, 안동시민에게 남은 것은 공허한 약속과 깊은 상실감뿐이다. 안동댐 취수 문제는 단순히 물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곧 안동시민의 생존권, 그리고 경북의 미래와 직결된 문제다.

이제는 행정의 일방적 추진이 아니라, 시민이 주인으로 참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다양한 의견을 모으고, 공감대를 형성하며, 피해와 이익을 투명하게 따지는 절차가 마련되어야 한다. '물 하이웨이'가 아니라, 시민의 삶을 지키는 '생명 하이웨이'가 되어야 한다. 화려한 약속이 아닌 시민과 함께하는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경상북도의회 행정보건복지위원회 권광택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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