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스포츠엔 '저니맨'이란 단어가 있다. 여행을 다니듯 팀을 자주 옮겨 다니는 선수를 말한다. 매번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해 팀을 옮길 수밖에 없는 처지의 선수라고 단정 짓기는 힘들다. 더 많은 지역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고자 하는 이도 있어서다. 이런 부류의 선수는 대체로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한 뒤 드는 안주하려는 마음을 두려워한다.
유학에도 저니맨이 있다. 가끔 대학교수의 학력사항에 여러 학교가 나열되고 그 중 한 곳에만 졸업이라고 표기된 경우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만약 나열된 대학교의 국가가 다르다면 이 교수는 과거에 다양한 국가와 문화적 체험을 중시했을 것이라고 넉넉히 추론해 볼 수 있다. 만약 한 국가 안에서만 대학교를 옮겨 다녔다면 전공 분야 내 명성 있는 교수를 찾아다니며 사사하고자 했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마치 한국 수험생이 학원을 옮겨 다니듯 미국에선 편입을 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 음대로 유학 입시를 준비하던 한 학생이 있었다. 본인의 음악적 취향과 교육적 성향을 고려해 미국 캘리포니아의 명문 음대에 지원했다. 4년 간 1억원이라는 장학금과 함께 합격증을 받았다.
그런데 막상 입학 후 그 학생은 적응하지 못했다. 1년 뒤 뉴욕 맨해튼의 사립대로 편입을 하게 됐다. 편입 과정에서 그 학생과 많은 대화를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전적대 명성이 미국에서만 통하는 것 같아서였다. 고등학교 동창과의 대화 도중 자꾸 자신감이 떨어진다는 학생의 심리 상태는 만족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나 예일대 합격 했어" "나 줄리어드 다녀"와 같은 문장은 학생은 물론 학부모에게도 긍지를 심어주는 말이다. 하지만 편입 후 마냥 행복할 것만 같았던 이 학생은 큰 후회를 했다. 바꾼 학교의 교육 수준이 전적대에 비해 현저히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이 학생은 결국 1년 동안 고민하다 "다시 전적대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상담을 요청해왔다. "스스로 결정하라"고 조언했지만 그 이후엔 소식을 듣지 못했다.
학교의 명성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그만큼 노력했다는 인정 욕구도 충족되고 학위는 평생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훈장이기 때문이다. 대학교 타이틀은 수험생 대다수가 공부하는 목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우선 순위는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다. 학위를 따는 것과 취업 혹은 사업을 해서 일정 수준 이상 돈을 버는 것, 가정을 꾸리는 것 모두 사실은 행복을 위해서다. 만약 특정 타이틀보다 자신의 분야에서 배움에 초점을 맞춘 사람이라면 명성 자체보단 자신에 맞는 교육을 제공하는 대학교를 선택하는 게 맞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본인 스스로 만족하면 될 일이니까 말이다.
결국 유학을 준비하면서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자신의 욕구를 더 투명하게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자존감을 키울 필요가 있다. 특히 주변 사람의 말에 휘둘리지 않도록 단단해야 한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수험생이나 학부모가 있다면 목표 대학 설정 이전에 "나는 어떤 성향의 사람인가"를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는 인생을 여행 중인 저니맨이니까.
김나연 HMA유학원 대표

* 가스인라이팅(Gas Enlighting)은 매일신문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칼럼 공간입니다. '가스라이팅'은 1930년대 가스등을 사용하던 시절 파생된 용어입니다. 가스등을 조금씩 어둡게 해 누군가를 통제하는 걸 의미하는데요 '가스인라이팅'은 그 반대로 등불을 더 밝게 비춰주자는 뜻입니다. 젊은이들의 시각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자주 선보이도록 하겠습니다.
댓글 많은 뉴스
金총리, 李냉부해 출연에 "대통령 1인다역 필연적…시비 안타까워"
배현진 "'이재명 피자'→'피의자'로 잘못 읽어…내로남불에 소름"
나경원 "경기지사 불출마", 김병주 "정치 무뢰배, 빠루로 흰 못뽑아내듯…"저격
'이재명 피자' 맛본 李대통령 부부…"이게 왜 맛있지?" "독자상품으로 만들어야"
내가 영포티인지 아닌지 판별하는 법 [가스인라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