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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대전환, 경북 '들녘특구'] (3)산업형 기업 모델 '구미 밀밸리 특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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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밀 생산과 제분시스템, 상품 개발까지
우리밀 빵지순례 가능한 지음밀애 빵마을 프로젝트도 추진

지난 14일
지난 14일 '구미 밀밸리 특구'에서 한 조합원이 밀 파종을 위한 종자 투입을 하고 있다. 경북농업기술원 제공

우리나라 연간 밀 소비량은 2023년 기준 1인당 35.7㎏에 달한다. 쌀 다음으로 소비량이 많은 제2의 주식이다. 하지만 자급률은 2024년 기준 2% 내외(총 재배면적 9.5천 ha)로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식량 안보를 위해 우리밀 자급률 확대가 절실하다. 가장 큰 걸림돌은 수입밀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더욱이 최근에는 밀 파종기(10~11월)에 잦은 비로 파종이 지연되면서 생산량도 급감하고 있다. 우리밀 재배농가의 소득을 보장할 수 있는 다양한 정책이 필요한 이유다.

이런 측면에서 경북도가 추진하는 농업대전환 들녘특구 중 하나인 '구미 밀밸리 특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경북 최초로 우리밀 전문 제분시스템을 도입한 우리밀 가공·유통 산업형 기업 모델로, 우리밀 자급률 확대를 위한 해결 실마리를 이 곳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박정웅 샘물영농조합법인 대표.

◆벼 단작에서 콩과 밀·양파 이모작으로 전환

경북 구미시 도개면 일대 150헥타르(ha)에 달하는 들녘은 샘물영농조합법인이 공동영농을 펼치고 있는 '밀밸리 특구'다.

이 법인의 대표 박정웅 씨는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귀농을 결심하고 30세 늦깎이로 한국농수산대학에 진학하면서 농사의 꿈을 키웠다. 그러던 중 일본 농업연수에서 벼농사 대신 돈이 되는 콩과 밀의 대규모 기계화 이모작 재배를 경험했다. 이를 전환점으로 2011년 벼농사만 짓던 이 들녘에서 콩농사를 짓겠다 결심하고 법인을 설립했다. 하지만 콩으로의 작목 전환은 쉽지 않았고 귀농 12년 만에 어렵사리 안착을 할 수 있었다. 밀 이모작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2023년 경북도의 들녘특구 사업에 선정되면서 콩은 물론 밀과 양파 이모작에도 도전하게 됐다. 산업형 농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공장형 밀전문 제분시스템도 도입했다.

특구에는 농가 150곳이 참여하고 있다. 참여농가 모두 영농에 참여하는 공동영농 유형이다. 밭갈이에서부터 파종 ,수확 등 대규모 기계화 농작업은 법인에서 책임지고, 물관리와 잡초관리 등 노동력이 필요한 농작업은 참여농가가 직접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법인은 운영위원 4명과 재배 및 농기계 등을 관리하는 영농관리 34명, 이모작 영농협업 6명으로 구성돼 있다.

정방재 조합원.
'구미 밀밸리 특구' 조합원들의 콩 수확 장면. 경북농업기술원 제공

◆농업생산액 2.5배, 농가소득 최대 5.8배 증대

지난해 법인의 농업생산액은 이모작을 통해 2.5배까지 늘었다. 특구 이전 120ha 농지에 벼농사만 지었을 때는 13억6천만원의 수익이 발생했지만 겨울작물로 밀(100ha)과 양파(20ha), 여름작물로 콩(150ha) 이모작을 하면서 34억1천만원으로 늘었다.

생산된 콩과 밀은 법인에서 자체 수매하고 있다. 이 중 콩은 대부분 CJ그룹과 계약재배를 통해 나물콩으로 납품한다. 밀은 일부는 정부수매로 출하하고 나머지는 자체 가공을 위한 원료곡으로 활용한다. 양파는 대부분 도매시장에 출하하고 일부는 계약재배틀 통해 유통하고 있다.

참여농가의 소득은 콩과 밀 이모작의 경우 3천800원의 소득을 배당받아 벼농사 때보다 1.7배 늘었다. 콩과 양파를 재배한 농가는 1만2천800원으로 최대 5.8배까지 높아졌다.

하지만 양파 이모작의 경우 고소득 작목이긴 하나 육묘 노력이 많이 소요되고 양파 가격에 따라 농가소득 변동 위험이 크다. 이에 따라 법인은 양파 재배 대신 밀 전용 재배로 전환하고 구미지역의 밀 재배단지와 연계, 재배면적을 600ha까지 점진적으로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중장기적으로는 경북 내 지역별 밀 재배단지와 연계해 특구 협력단지로 조성해나간다는 구상이다.

'구미 밀밸리 특구'가 조성한 우리밀 전문 제분공장. 경북농업기술원 제공

◆공장형 밀전문 제분시스템 도입으로 산업형 농기업으로 성장

그동안 우리밀은 소비자들에게 수입밀보다 품질이 낮다는 인식이 많았다. 색감은 탁하고 빵을 만들었을 때 식감도 거칠었다. 우리밀 전문 제분시스템이 구축돼 있지 않다 보니 멧돌 방식의 통밀 수준으로 제분해 밀가루 품질이 균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롤러 방식으로 바꾸면 수입밀과 같은 부드러운 백밀 수준으로 제분할 수 있다.

구미 밀밸리 특구는 지난해 10월 경북에서는 처음으로 우리밀 전문 제분공장을 준공했다. 튀르키예 이마스(imas)사의 롤러분쇄 제분시스템을 도입해 시간당 2~2.5톤(t) 규모( 최대 연간 2만t)의 밀가루 생산 능력을 갖췄다. 밀가루 제분은 내년까지 시범 가동을 통해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2027년 이후부터는 연간 1만4천t의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경북지역 안에서 연간 소비하는 밀가루 총량(9만7천t)의 14%를 자급할 수 있는 수량이다.

이를 통해 특구는 우리밀 생산과 가공, 판매를 원스톱으로 연계한 통합브랜드 '구미밀가리'도 출시했다. 프랑스식 밀가루 구분 방법을 도입한 제품이다. 우리나라 밀가루는 단백질 함량에 따라 박력분, 중력분, 강력분으로 구분하지만, 프랑스식은 회분율(밀가루에 포함된 껍질의 비율)과 단백질 및 미네랄 함량에 따라 T45, T55, T65 등으로 세분화해 분류한다.

구미밀가리는 T45(제면용), T50(제과용), T55(식빵용), T65(다목적용 통밀가루)로 소비자가 선호하는 품종(황금알, 새금강, 백강)을 조합해 개발한 것이 특징이다. 판매는 구미밀가리 홈페이지(gumimilgari.com)와 지역 농협 하나로마트 및 로컬푸드 직매장 등에서 하고 있다.

'구미 밀밸리 특구'의 우리밀 전문 제분공장에서 생산한 브랜드 '구미밀가리'. 경북농업기술원 제공
'구미밀가리'로 만든 제과제빵 제품. 경북농업기술원 제공

◆지음(知音)밀愛(애) 빵마을 조성

특구는 구미시를 '우리밀 빵지순례(전국 유명한 빵집을 찾아다니는 것) 도시'로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도 추진하고 있다. '지음밀애 빵마을'이 그것이다. 특구에서 생산된 우리밀로 구미지역 베이커리 업체들이 제과제빵 제품을 개발하고 이를 인근 명소(신라불교초전지 등)와 연계한 관광 순례 프로그램으로 선보이는 방식이다. 현재 출시된 우리밀 제품은 구미샌드, 콩앙금빵 등으로 이를 개발한 업체 12곳의 평균 매출액은 20%나 늘었다. 업체들은 향후 모든 제품을 우리밀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특구는 또 우리밀 홍보관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제과제빵 아카데미도 운영할 예정이다. 아울러 소비자들이 베이커리 명장들과 우리밀로 제과제빵 제품을 직접 만들어볼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다.

이 밖에도 현재 구미지역 식당 6곳은 특구에서 생산된 우리밀로 칼국수와 만두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고, 5곳의 제조업체는 우리밀로 떡볶이, 마카롱 등을 생산해 로컬푸드매장과 학교 급식 등에 납품하고 있다.

박정웅 샘물영농조합법인 대표.

〈박정웅 샘물영농조합법인 대표 인터뷰〉

구미 밀밸리 특구에서 공동영농을 책임지고 있는 샘물영농조합법인의 박정웅 대표는 "현재 우리밀 원료곡 생산을 통한 수익에 제분을 통한 가공 수익까지 2중 소득을 창출하고 있다"며 "지난해 10월 우리밀 제분공장 설립 이후 올 8월 현재까지 우리밀가루 생산량은 208t(수입 3억여원) 정도이고 우리밀부침가루와 튀김가루도 새로 개발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토로한다. 아직까지 우리밀의 활용도가 그리 높지 않고 가격도 외국밀 보다 높게 형성돼 외국밀을 우리밀로 대체하고자 하는 이들이 주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적으로 우리밀 사용 장려 및 지원, 상품 개발 및 상품화 지원 등이 좀 더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게 박 대표의 주문이다.

그는 "앞으로 우리밀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제품 개발과 상품화에 힘쓸 것"이라며 "무엇보다 품질을 프리미엄급으로 향상시켜 구미밀가리를 소비자들에게 사랑받는 대한민국 대표 우리밀 브랜드로 키워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정방재 조합원.

〈정방재 조합원 인터뷰〉

특구 조합원인 정방재 농부는 "공동영농을 해보니 재배상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할 수 있고 생산과 소비를 연대함으로써 우리밀의 활용도를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아쉬운 점은 소비자들에게 우리밀을 알리고 판매율도 높이기 위한 판촉행사, 소셜네트워크 등을 활용한 홍보활동 등이 확대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들녘특구에서 생산된 농산물들이 많이 알려져 제 값을 받고 판매될 수 있음 좋겠다"며 "그래야 젊은층들이 농업에서 비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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