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이제 공연의 주변이 아니라 무대 위에서 자연스럽게 호흡하는 존재가 됐다. 융복합 예술의 현장에서는 기술이 무대의 질서를 새롭게 짜고 있다. 조명은 색으로 반응하고, 영상은 음악의 박동을 따라 움직이며, 관객은 단순히 듣기보다 시각과 청각이 결합된 감각 경험 속으로 들어간다.
최근 달서아트센터에서 열린 '기술 융복합 콘서트: 인피니티(Infinity)'는 이러한 변화를 선명하게 보여준 무대였다. 이 무대가 사용한 것은 AI가 아니라 디지털 영상기술이지만, 홀로그램 아트와 오케스트라가 결합하면서 음악은 단일 장르가 아닌 감각이 겹쳐지는 복합적 환경이 됐다.
그 무대에서 나는 슈타트필 오케스트라와 함께 마스네의 '타이즈의 명상곡'과 피아졸라 '상어(Escualo)'를 연주했다. 무대와 객석 사이엔 얇은 막이 드리워졌고, 그 위로 빛과 영상이 섬세하게 흐르며 음악의 결을 따랐다. 기술은 연주의 중심을 대신하지 않은 채 음악의 감정선을 한 겹 더 밝혀주는 '숨은 연주자'처럼 기능했다.
익숙한 곡이었지만 디지털 기술이 더해지자 전혀 다른 감각의 층위가 열리는 순간들이 있었다. 기술이 예술을 확장시키는 만큼 우리의 감각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조명·영상·음향의 변화는 몰입을 돕지만, 때로는 자극의 속도가 여운을 앞지르는 시대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예술은 이 흐름 속에서 어디에 중심을 둘 것인가.
달서아트센터의 무대는 그 답을 조용히 보여줬다. 기술이 앞서지 않고 음악의 호흡을 따르자 시각 효과는 예술을 방해하지 않고 오히려 감정을 확장시키는 동반자가 됐다. 그 순간 예술은 눈과 귀를 넘어 몸 전체로 체험되는 경험으로 넓어졌다.
이달 말 열리는 '대구국제컴퓨터음악제'는 이러한 흐름을 한 단계 더 확장한다. 내가 악장을 맡고 있는 다매체예술단 역시 AI 기반 실시간 반응형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연주자의 움직임을 감지해 전자음을 생성하고, 그 소리에 영상이 즉시 반응하는 장면은 AI가 예술의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직접 보여주는 실험이 된다. 혁신적이고 전위적이며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시도들이다. 그러나 이 변화 속에서도 질문은 남는다. 기술이 빠르게 확장되는 시대에 예술은 어떤 균형을 선택해야 할까.
AI는 예술의 언어를 넓히고 연주자의 역할 또한 바꾸고 있다. 이제 연주자는 단지 음을 내는 사람이 아니라 기술과 호흡하며 새로운 감각을 설계하는 창작자로 확장되는 중이다. 그러나 AI는 정확할 수 있어도 마음을 계산하지는 못한다. 알고리즘은 음정을 예측할 수 있지만, 떨리는 손끝에서 태어나는 온기를 대신 만들 수는 없다. 기술이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더라도, 그 안에서 인간적 감정과 호흡을 어떻게 지켜낼지는 여전히 예술가의 몫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그 미세한 떨림을 잃지 않기 위해 연주한다.
AI는 예술을 넓힐 수는 있어도 중심을 대신할 수는 없다. 기술은 무대를 확장하지만, 그 넓어진 무대에서 중심을 잃지 않는 일, 그것만큼은 결국 인간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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