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재 선생님이 데뷔 60주년을 맞아 <세일즈맨의 죽음>을 연습하실 당시인 2017년에 진행한 인터뷰입니다. 평생을 현역배우처럼 살아오신 선생님을 추모하는 기록의 의미로 선생님과 나눈 글을 게재 합니다.
올해 데뷔 60주년을 맞이한 배우 이순재(82).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에서 가부장적인 이미지로 시청자와 만났고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는 '야동순재'로 당시 72세의 나이에도 젊은 배우들을 제치고 포털사이트 1위에 올랐다. 모 신문사 인터뷰를 통해 <거침없이 하이킥> 녹화 현장에서 그를 만났을 때도 대본을 손에서 놓지 않았었다. 볼펜으로 밑줄을 쳐가며 분장실에서 연습하는 모습은 꽤 강렬하게 느껴졌었다. 팔순에 접어 든 후에도 그는 여전히 젊은 '할배'들과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에 출연하면서 '할배'들 예능시대를 열었고, 시청자들은 남녀노소 '직진 순재'에 열광했다. 서울대학교 연극반 출신인 그는 방송, TV, 영화를 종횡무진 하면서도 연극을 아꼈다.
지난해에는 아서 밀러의 <시련>에서 고위직 행정관이자 법률가로 자신의 권위를 지키고자 '마녀'로 고발된 이들에게 무자비 하게 사형을 선고하는 '댄 포스' 역을 맡아 열연했다. 올해는 손숙 선생과 호흡을 맞춘 <사랑별곡>과 서울대 연극반 출신들의 '관악극회'에서 올린 <법대로 합시다> 등 연극과 TV를 오가며 인생 8막2장의 데뷔 60주년을 보내고 있다. 이순재 선생이 1978년도에 공연한 <세일즈맨의 죽음>이 데뷔 60주년 기념공연으로 아르코대극장에 올라간다. 시청자들에게 영원한 '국민할배'로 연극무대에서는 여전히 '꽃보다 청춘'으로 종점 없는 인생 8막2장 위해 달리는 이순재 선생을 대학로에서 만났다. 이날 대구에서 서울로 가는 열차가 만석이라 약속 시간 15분을 넘기고서야 도착 할 수 있었다. 그는 테이블 한편에서 한 장면에 등장한 주인공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커피한잔을 시키고 물었다) 배우로서 환갑(還甲)입니다. 60갑자(甲子) 배우로 시작한 간지(干支)의 해가 다시 돌아왔으니 앞으로 더 청춘이실 것 같습니다. (감기에 걸린 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시선을 한 번 더 바라봤다)
"나이 먹은 사람의 건강은 예측하기 힘들지만, 아직은 컨디션이 괜찮아요. 잘만 유지하면 좀 더 할 수 있지 않겠나 싶어요. (그는 한 마디를 던지면 강의 수준으로 말을 이어가는 달변가다)"
▶지금까지 연극, 방송, 영화를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 하셨죠. 배우로서 60주년을 맞은 지금이 최고의 전성기이신 것 같은데.
"아니야, 우리 젊었을 때 괜찮았어요.( 그가 큰소리로 웃었다.) 물론 전설을 써내려가고 이런 건 아니었지만, 언론 통폐합전 TBC에서 우리나라 방송 사상 최초로 전속계약을 했었어요. 그때 저를 포함해서 9명이 계약을 했었죠. 그게 시작이었어". (그는 배우 '나옥주' 선생을 이야기 하며 연극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배우라는 것을 강조했다)
▶ 요즘 '최순실 정국'과 더불어 문화계는 '예술 검열 문제'로도 뜨겁습니다. 자율성이 보장되는 문화예술, 좁혀서 앞으로 연극을 이끌어가는 세대들이 블랙리스트와 예술적 소신발언 등 이런데서 상처를 받지 말아야할텐데요. 민자당 소속 14대 국회의원으로 의정 활동을 하신 경험으로 보면,현 정국에서 문화예술계가 어떻게 풀어가야겠습니까? (그는 물 한잔을 마시고서야 말을 이었다. 마치 당시의 국회의원 시절을 회상하는 것 같았다)
"이건 만국적인 형태예요. 단순히 대통령과 최순실의 관계에서 끝날 것이 아니고 우리 전체의 문제죠. 이번 사태를 계기로 삼아서 한 번 더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어요. 뭔가 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자기점검을 해야죠. 우리 문화계도 마찬가지에요. 문화예술정책이라는 게 나름대로 변화도 오고 시스템도 좋아지고 했지만, 결국 원칙이 무너지는데서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최근의 여러 상황을 보면 묘하게 자리싸움을 하는 것 같아요. 자리싸움이 순수하고 동일한 목적으로서 하는 게 아니라 일부 이념적 조건이 가미가 되어서 분파작용을 하는 것 같단 말이죠. 시대착오예요. 지금 우리가 서로 이념경쟁하게 생겼어요? 기본적인 조건이 동일한 바탕에서 어떻게 더 잘할 것이냐는 선의의 경쟁이 되어야죠. 우리 동료가 장관이 되고 의원이 됐는데 서로 헐뜯고만 있어요."
▶배우는 잘못하면 한 가지 이미지로 그 캐릭터가 고정되기 쉽죠. 선생님은 수백여 편의 작품을 하면서 내면과 외면을 지우고 항상 새롭게 창조된 역할과 캐릭터를 해오셨어요. 특별히 역할을 창조하는 '가면 쓰기'의 기술과 방법이랄까요.
(배우의 역할론과 인물 만들기에 대한 얘기로 대화를 옮기자 그는 말의 속도가 빨라졌다)
"절대로 쉬운 게 아니죠. 그건 여러 가지 경험에서 나와요. 배우가 표현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화술, 행동, 표정 이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거든요. 그 중에서도 화술이 중요한데, 화술은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용어의 재현이에요. 그게 쉬운 게 아니에요. 예전에 우리는 사전을 펴 놓고 한 달 동안 화술을 연습했어요. 근데 요즘은 이걸 건너뛰더라고요. 얼마 전에 오현경 씨가 나온 <언더스터디>도 봤지만, 그래서 우리 또래들은 화술이 정확해요. 그게 몸에 밴 사람들이고 그걸 원칙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거든요. 또 우리는 연극, 영화, TV의 특성을 다 경험하면서 어떤 상황이나 매체마다 적응하는 노력을 평생 해왔어요. 동선은 조건에 따라서 연출과 합의하면 나오고, 하다 보면 자기 표정도 나오게 돼요. 결국 연기는 다지고 다져서 기술화시키는 것이죠. 그냥 외워서 하는 대사는 누구든 다 할 수 있어요."
▶말씀을 들어보면 '화술'에 중요성을 강조하시는데요. 대사를 표현하고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두는 포인트는 연출이나 배우마다 다 다를 수 있습니다. 호흡, 끊기, 장, 단음 사이, 종결어미를 강조해요. 선생님께서 화술과 말하기에서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부분은.
"작품 중심으로 가는 거예요. <세일즈맨의 죽음>을 예로 들자면, 우리나라 작가들이 이 이상의 작품을 창작할 수는 있어요. 그런데 이걸 가지고 다시 만져서 이 이상을 만들 수는 없어요. 원작을 가지고 작업한 것들을 보면 본인들은 독창적이고 재해석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는데 제가 볼 때는 원작을 훼손하는 경우도 있어요. 물론 역할이나 작품에 따라 표현이 다를 수 있지만 엉뚱하게 자기 해석을 넣어서 이상한 방향으로 끌고 가기도 해요. 그건 아니에요. 거든 우린 이거 중심으로 가는 거야 표현도 마찬가지야 물론 역할이나 ㅈ가품에 따라서 표현이 다를 수 있지 한 문장 안에서도 감정은 몇 가지 상태로 변화할 수 있어요. 일상적으로도 그렇게 살잖아요. 그런데 왜 대사는 한 가지 톤으로만 하는지 모르겠어요. 연극은 영상과 달리 언어전달이 강해야 하기 때문에 연습을 통해서 몸에 배게 해야죠. 역할을 얼마나 깊이 분석하고 표현해내느냐에 달린 것이고, 거기에 배우로서의 고민이 있는 거예요."
▶(그는 특히 배우의 기초를 강조했다) 연극을 매년 하시는 것 같다. 작년에 <시련>도 하셨고 올해는 <사랑별곡>, <법대로 합시다> 그리고 하반기에 60주년 기념공연인 <세일즈맨의 죽음>도 준비하고 계시고요. 방송에 비하면 연습과 공연까지 한 작품을 소화하는데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데도 연극에 대한 애정이 크시다.
"제가 여기서 시작하고 여기서 자랐기 때문이죠. 여기가 바탕이에요. 이걸 안했으면 배우로서 잘 성장하고 성공하지 못했을 거예요. 연극으로 철저히 바탕을 다지지 않은 배우들은 TV에서 많이 퇴장했어요. 스타급들인 수백 명의 남녀주인공이 지나가버렸잖아요. 어느 날 용도폐기된 것이고, 본인 스스로가 한계를 느껴서 관둔 사람도 있고, 옛날에는 먹고살기 힘들어서 관둔 사람도 있고, 사회적으로 대접이 나쁘니까 포기하거나 어쨌든 수백 명이 지나갔어요. 저는 어쨌든 연극에 대한 의무 같은 걸 느껴요. 솔직한 얘기로는 다른 매체 활동이 없으면 연극을 할 수가 없죠. 전혀 수지타산이 안 맞으니까… 저는 지금도 연극을 할 때는 액수에 대한 얘기를 안 해요, 몸에 배어서. 얼마 주면 받는 거고 안 주면 할 수 없지 뭐 안 그래?"
▶연극으로는 1978년도에 공연하신 '세일즈맨의 죽음'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하셨죠. 데뷔 60주년 공연으로 이 작품을 선택하셨습니다.
"이 작품은 참 명장면이 많습니다 연극은 특히 동양적이고 한국적이에요 부부간의 관계 모자관계 이런데서 '아서밀러'가 상당히 동양철학에 관심 이었던 것 같아. 모르겠지만 우리 사회 얘기하고 똑같잖아. 가족의 구성이나 관계가 말이야. 읽을수록 상당히 절실하게 온다고.. 관객들이 이 작품을 좋아 하는 것도 그런 면에서 정확하게 전달이 될 수 있는 조건이란 말이야. 그런데 이 작품에 대해 관객들이 선호하는 이유도 우리 삶과 밀착되어 있으니까 이해도가 높은 것 같아. 그렇지만 작품을 여러 번 해도 실험적인 마인드가 있어요. 그건 배우들의 표현력이 중요하고 연출력이 필요한 지점이야. 배우로 이런 게 경계를 넘나든단 말이야 하나의 고민이 되는 거고 연극을 할 수 밖에 없는 매력이지. 또한 이번 작품을 어떻게 구체화시켜서 변화를 전달할 것인가가 문제인데, 그런 부분에서 이번 공연에서도 꽤 매력 있고 괜찮은 작품이야."
▶데뷔 60년 동안 세 차례나 <세일즈맨의 죽음>에 참여하게 되신 건데.
( 그는 테이블 앞에 놓인 대본을 펼치며 말을 이어갔다) "네. '윌리 로먼'이에요. 처음 배역을 맡았던 44살 때는, 그때만 해도 이해 못 하는 부분이 많았어요. 당시는 우리나라 경제개발이 목표였기 때문에 도시공해에 관한 개념이 우리한테는 없었어요. 못살 때니까. 세일즈맨의 죽음 배경하고 삶이 어색한 거지. 가스를 쓰지 않고 연탄을 땔 때였고, 아파트 풍경도 쉽게 그려지지 않았고. 그래서 그런 부분을 다 잘라버렸어. 2시간 공연으로 만들었었는데 지금은 다르죠. 예전에 그냥 이해 안 되고 스쳐 갔던 배경이나 장면들이 이제는 이해가 되잖아. 1949년도 작품임에도 이미 콘크리트화 되어가는 도시에 대해 경고를 하고 있어요. 상징성과 사회적 비판이 상당히 강하게 들어있고, 주인공의 심정과 상황을 딱 매치시켜서 절묘하게 내뱉는 대사가 한둘이 아닌 작품이죠. 지금 공연해도 명작입니다."
▶이번 무대에서는 이순재 선생님이 그려내는 '윌리 로먼'이 어떻게 달라진 모습으로 다가올지요.
"뭐, 특별하게 나오겠어요.(웃음) 조금 더 정밀하게 표현해보자 하는 거예요. 특히 이번에 손숙씨가 같이 참여해주셔서 너무 고마워요. 손숙 씨는 그냥 그 인물 그대로에요. 그래서 큰 힘을 받고 있고 둘이 호흡을 맞추면 충분히 괜찮을 것 같아요. 또 제가 강의하는 대학교 제자들이 함께하게 됐어요."
▶방송이나 연극 연습이 끝난 후에도 일주일에 4회 이상은 학생들 연습장으로 가신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조건은 그거밖에 없어요. 한 학기를 끌고 나갈 만큼 이론적 바탕이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결국 제 경험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전수하는 방법밖에 없죠. 10년 전에 세종대에서부터 그렇게 해오긴 했어요. 제 수업이 일주일에 4시간인데, 그런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서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매일 저녁, 제가 연출을 해서 주말에 공연을 시켜요."
▶그렇게 매일 하시는 게 쉽지 않으실 텐데, 그런데 그게 정말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듣기로는 아침에 일어나시면 생활습관 처럼 암기하시는 게 있다고 하셨는데.
"아직 치매가 안 왔으니까 해보는 건데(웃음) 사실 가끔가다 '이러다가 중간에 막히면 문제가 되지 않겠는가'하는 기우가 없지 않아 있어요. 그러니까 연습을 많이 해서 입에 아주 붙어 버리게 해야 된단 말이에요. 중간에 뭐가 잠깐 삐끗하면 사고 나요. 결국 연습하는 수밖에 없고, 질문한대로 스스로 자기 암기력을 테스트하는 방식은 있어요. 무슨 통계나 리스트가 있으면 한번 외워 보는 거죠. 예를 들어 최근에 도널드 트럼프가 45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됐죠? 그럼 45명의 이름을 외워 봐요. 그러면서 미국사도 다시 생각해보고, 아직 내 기억력이 이만큼 남아있구나 하는 자기 확신도 서고. TV는 하루 전에 대본이 와서 그 다음날 녹화, 아니면 한 시간 전에 맞춰보고 두 시간 녹화하고 그럴 때도 있거든요. 순발력이 떨어지면 못해요. 결국 적응하지 못하고 연극으로 복귀한 사람도 몇 있었는데, 정말 치열하게 하는 거예요."
▶(마치 한 노장의 배우의 인생 강의 듣는 것 같았다. 2시부터 세일즈맨의 죽음 연습이라 마지막으로 몇 마디를 물었다.) 60년을 배우로 달려오신 감회은.
"참 세월 빠르다. 그런 거죠. 세월 가는 것을 세워 보지도 않았어요. 하다 보니까 여기까지 오게 된 겁니다. 우린 세월에 대한 의식이 없어요. 보통 드라마도 하나 맡으면 6개월이 넘어가요. 그렇게 살다보면 1년이 금방 가죠. 그러다보니 벌써 나이는 80이 되고 이 일을 시작한지도 햇수로 60년이 되었고. 전 그런 거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어요. 그런 건 의미는 없으니까. 배우로 한결같이 달려 온 겁니다."
▶앞으로도 무대에서 영원한 현역, 배우로서의 퇴장은 없으실 것 같습니다.
"(웃음) 특별한 계획은 없어. <세일즈맨의 죽음>이 끝나자마자 영화를 한 편 찍어야 하고 그 이후에 2~3월부터 TV 드라마 촬영을 시작하고. 내년을 얘기중인 연극도 한 두 편정도 있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커피숍 정원으로 나왔다. 유난히 찬바람이 불었고 이순재 선생은 추운지 몸을 움츠리고 계셨다. 마지막으로 야외에서 사진 몇 장을 더 촬영하는 동안 두 사람은 시선을 고정하고 지면으로 들어가지 않는 얘기를 나눴다. 그가 점심으로 '우동'이나 한 그릇 하자며 일행들을 안내했다. 우동이 다 비워질 동안 데뷔 60년의 인생 8막2장의 이야기를 3막 정도 밖에 듣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다. 그는 ' 조심히 들 가' 하며 연습실로 향했다. 한 손으로 대본을 움켜진 채 걸어가는 뒷모습이 '신인배우' 같았다.
선생님과의 생전 인터뷰는 시스콤 <거침없이 하이킥>을 하실 때 녹화장 분장실에서 한차례 진행을 했었고, 이어 60주년 무대를 준비하실 무렵에 나눴다. 드라마와 무대에서 영원한 배우일 것 같은 이순재 선생님은 생전에 소탈하셨고, 연극을 아꼈다. 강의하시는 제자들을 진심으로 대하셨고, 대한민국 배우들에게 존경받으셨다. 관객과 시청자들은 그런 이순재 선생님을 영원한 국민할배로 생각했고 구순을 넘어서도 배우로 성실함을 실천하시는 분이셨다.
"영원한 현역이고 싶으셨던, 배우로서 퇴장은 없다던 선생님이 지난 11월 25일 새벽에 별세하셨다"
"하늘에서도 대본을 보고 계실,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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