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여름, 스페인 카나리아제도에서는 단 하루 만에 4천 헥타르가 불에 탔다. 불길을 피해 대피한 사람들은 "평생 본 적 없는 속도였다"고 공포에 질려 입을 모았다. 또 미국 애리조나의 한 도시는 기온이 50도에 육박하자 도로나 가로수의 플라스틱이 녹아내렸고, 일본에서는 '해수면 온난화로 바다에서 장미향이 난다'는 황당한 농담이 실제 탐사기사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상하고 극단적인 풍경들이 더 이상 뉴스 속 기현상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스크롤하며 지나치는 일상의 한 부분이 된 셈이다.
조효제 성공회대 명예교수의 신간 '불타는 지구에서 다르게 살 용기'는 바로 이 현실에서 우리는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지난 10여 년간 기후·생태 문제를 연구해 왔고, 그 결론을 이번 책에 담았다. 그는 앞서 출간한 '탄소 사회의 종말', '침묵의 범죄 에코사이드'를 통해 기후·생태 문제의 구조를 분석해왔다. 이번 책은 그 3부작의 결론에 해당하며, 지금 우리가 겪는 각종 현상이 단발적 사건이 아니라 서로 얽혀 있는 복합적 변화라는 점을 강조한다.
저자는 오늘의 기후 위기가 '환경 보호'의 영역을 넘어 생활 안전과 생존의 문제가 됐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폭우가 집중되면 가장 먼저 취약한 주거지역부터 위험에 처하고, 전력 수요가 치솟는 날이면 도시 전체가 불안정해진다. 책은 이러한 연결을 통해 기후 문제를 '정치적 논쟁거리'가 아니라 생활 기반을 지키기 위한 사고의 전환으로 바라본다.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거창하지 않지만 오래 머문다. 변화는 언제나 거대한 결심보다 작은 질문 하나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지구의 온도보다 더 빨리 뜨거워지는 것은 인간의 무감각"이라고 지적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 무감각을 흔들어 깨우는 일, 그리고 그 작은 움직임들이 모여 삶의 방향을 조금씩 바꾼다는 믿음이다.
가령, 프랑스의 일부 마을에서는 폭염 대비를 위해 '나무 그늘 지도를 만든 동네 프로젝트'가 주민들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확산됐다. 학교 앞에 그늘이 부족한 곳은 우선적으로 식재를 하고, 도심의 '열섬지점'을 표시해 산책로를 조정하는 방식이다. 미국 콜로라도에서는 가뭄으로 강바닥이 드러나자 주민들이 모여 강물의 과거 높이를 표시한 산책길 안내판을 만들었다. 과학적 데이터라기보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에 대한 기억을 남기기 위한 작업이었다. 우리의 선택이 당장 세상을 바꾸지는 못할지 모른다. 책은 이런 소규모 실천들을 소개하며 큰 변화를 말하기 전에 우리가 무엇을 질문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저자는 오늘의 복잡한 위기를 '문명 전환'이라는 거대한 말보다 우리가 앞으로 어떤 일상과 도시, 공동체를 만들며 살아갈지를 고민하는 과정으로 본다. 예컨대, 지역사회가 더 안전해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기후 재난이 잦아지는 시대에 도시 구조는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한 개인의 선택이 미래 세대에 어떤 영향을 남기는지 등 책은 '환경'이라는 단어보다 더 넓은 관점을 제시한다.
저자는 기후·도시·복지·돌봄 같은 문제들을 일상의 언어로 풀어내며, 독자가 자신의 생활 반경 안에서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만든다. 거창한 혁명이 아니라 생활의 기준을 조금씩 조정하는 '현실적인 전환'을 가능성으로 제시한다.
'불타는 지구에서 다르게 살 용기'는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독자에게 차분히 앞으로의 삶을 생각할 여지를 건넨다. 기후에 관심이 많지 않더라도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의 변화를 이해하고 싶은 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책이다. 404쪽, 2만4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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