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초의 '여중군자(女中君子)' 장계향(張桂香)이 344년 만에 소환됐다. 지난 11월 1일 경주에서 폐막된 제32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이팩) 정상회의에서다. 당시 외교통상합동각료회의 만찬주로 발효공방1991의 프리미엄 막걸리 '은하수 별 헤는 밤'이 선정되면서 장계향이 잠시나마 언급됐기 때문이다.
'은하수 별 헤는 밤'은 올해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주최한 우리술품평회에서 고도주 막걸리에서 대상을 받은 술. 장계향이 지은 '음식디미방'의 감향주(甘香酒)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서 삼양주로 빚은 술이다. 직접 띄운 입국과 장계향이 살았던 영양의 쌀로 두 번 덧술을 해서 만든다.
만드는 법은 '음식디미방'에 이렇게 기록돼 있다. "멥쌀 한 되를 가루 내어 구멍떡을 만들어 잘 익게 삶아 식히고, 삶던 물 한 사발에 누룩가루 한 되를 섞어 이 둘을 단지에 넣어 주모를 만든다. 찹쌀 한 말을 잘 씻어 주모를 만드는 날 물에 담갔다가 사흘 뒤에 익게 쪄서, 채 식지 않았을 때 주모와 함께 섞어 항아리에 담고 더운 방에 항아리의 겉을 많이 싸서 두었다가 익은 뒤에 쓴다. 쓴맛이 있게 하려면 항아리를 싸지 않고 서늘한 데 둔다."
하지만 지난 경주 에이펙에서 '여중군자'로서 장계향이 크게 부각되지 못한 것은 유감이다. '은하수 별 헤는 밤'이란 술을 계기로 일부에서만 언급된 것은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장계향이 누구인가.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조선의 큰 어머니'가 아닌가. 그의 삶 그 자체뿐만 아니라 그의 모든 것이 우리의 귀감이다. 전 세계에 내놓고 자랑해도 전혀 손색없는 훌륭한 여성이다.
장계향은 1598년 (선조 31년) 11월 24일 경북 안동 금계리에서 태어났다. 이날은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왜군을 크게 무찌른 승전일. 그리고 1680년(숙종 6년) 7월 7일 83세를 일기로 경북 영양 석보에서 타계했다. 셋째 아들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이 이조판서에 올라 조선조 외명부 봉작법에 따라 정부인(貞夫人) 교지가 내려짐에 따라 '정부인 안동장씨'로 널리 알려졌다.
무엇보다 장계향은 어린 시절부터 성인(聖人)이 되고자 했다는 점에서 놀랍다. 그가 쓴 어린 시절의 시 '성인음(聖人吟)'에 잘 드러난다. "성인 계시던 때에 태어나지 않아서(不生聖人時:불생성인시)/성인의 모습을 뵈올 수가 없지만(不見聖人面:불견성인면)/성인의 말씀은 들을 수가 있으니(聖人言可聞:성인언가문)/성인의 마음도 볼 수가 있구나(聖人心可見:성인심가견)" 9살 소녀의 시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뛰어나다.
장계향은 평생 성인을 지향하는 삶을 살았다. 그는 우선 '논어 헌문(憲問)'에 나오는 세 가지 군자의 길을 갔다.
첫째, '수기이경(修己以敬 : 자기 자신을 닦아서 경건해지는 것)'을 실천했다. 어린 시절부터 '시경', '예기', '논어', '중용', '대학', '소학' 등을 퇴계 이황의 심학(心學)을 이어받은 아버지 경당(敬堂) 장흥효(張興孝)로부터 배웠다. 그 과정에서 성인의 경지에 이르겠다는 뜻을 세우고 '지경(持敬:경을 생활 속에서 실천)'과 '수신(修身)'에 집중했다. '여중군자'의 길을 간 것이다.
둘째, '수기이안인(修己以安人 : 자기 자신을 닦아서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의 삶은 어떠했는가. 셋째 아들인 이현일을 비롯해 10남매를 출중하게 성장시키고 부군 석계(石溪) 이시명(李時明)을 일으켜 세운 현모양처였다.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를 섬김에도 한치의 소홀함이 없이 편안하게 모셨다. 심지어 20년을 데리고 있었던 노비들을 모두 놓아주기도 했다.
셋째, '수기이안백성(修己以安百姓 : 자기 자신을 닦아서 백성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을 그대로 실천한 위대한 여성이었다. 1670년 대흉년으로 100만명이 굶어 죽던 시절, 장계향은 집으로 찾아온 수백명의 빈민을 구휼했다. 결국 집안에 먹을 것이 없게 되자 가족들이 원망을 털어놨다. 이에 장계향은 이렇게 답변했다. "저토록 난감한 처지에 있는 저들을 어찌 외면하고 우리 식구 살자고 문을 닫고 돌아앉아서 목구멍에 죽을 넘길 수 있겠느냐. 저들이 살아남지 못하면 이 세상인들 어찌 무사하겠느냐." 당시 이런 현장을 지켜본 빈민들은 울면서 자신들을 노비로 받아달라고 했다고 한다.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조선의 큰 어머니'는 누구인가. 역사상 '전인적 여성상'을 갖춘 '여중군자'는 누구인가. 단연 장계향이다. 2025년 11월 24일, 그의 탄신 427주년이다. 최초의 한글조리서인 '음식디미방'으로 널리 알려진 것도 바람직하지만, '여중군자'로 제대로 부각되지 못한 점은 참으로 아쉽다.
조한규 미국 캐롤라인대학교 철학과 교수































댓글 많은 뉴스
TK신공항 2030년 개항 사실상 물건너갔다
李대통령 "12월 3일 국민주권의 날로…국민 노벨평화상 자격 충분" [전문]
장동혁 "계엄, 의회 폭거 맞서기 위한 것…당대표로서 책임 통감"
동력 급상실 '與 내란몰이'
李대통령 "국가권력 범죄, 나치전범 처리하듯 살아있는 한 처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