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바람이 시리다. 현실도 그 못지않게 냉정하고 차갑다. '낭만은 사치'란 말이 낯설지 않다. 낭만은 감정에 휘둘리는 것일 수 있다. 고리타분한 옛 얘기로 치부하기도 한다. 낭만이 사라져가는 세상이다. 그만큼 낭만은 귀하다. 그래서 낭만이란 말에 더 마음이 동하는지도 모른다.
스포츠, 특히 프로 스포츠는 돈에 좌우된다. 낭만을 찾으려면 비싼 값을 치러야 한다. 낭만이 곧 낭비일 수 있다. 그럼에도 여기서 낭만을 찾는 이들이 적잖다. 냉혹한 현실을 넘어 꿈과 희망을 주고, 위로하는 기능도 있어서다. 프로 스포츠에서 낭만을 지키는 이들이 더 가슴에 남는 이유다.
프로야구는 국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성적이 가장 중요하긴 하다. 하지만 낭만을 빼고 돈에만 기대선 오래, 깊이 사랑받지 못한다. 성적에다 '큰 부상을 딛고 섰다' '옛 동료가 뭉쳤다' 등 울림 있는 서사가 더해질 때 감동이 더 커진다. 팬들은 가슴이 뜨거워지고 위로를 받는다.
삼성 라이온즈는 프로야구 전통의 강호다. 대구경북이 연고지. 지역색이 짙은데도 전국구 인기를 누린다. 그런 삼성이 최근 화제를 뿌렸다. 베테랑 거포 최형우를 자유계약 선수(FA) 시장에서 잡았다. 2년 26억원에다 원 소속팀 KIA 타이거즈에 건넬 보상금을 더하면 모두 41억원을 들였다.
9년 만의 친정 복귀다. 최형우는 2002년 삼성 유니폼을 입고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삼성이 2011~2014년 4년 연속 통합 우승(정규 시즌 1위와 한국시리즈 우승)하는 데 앞장선 '삼성 왕조'의 일원. 2016시즌 후 FA 계약을 맺고 KIA로 건너갔다가 이제 다시 푸른 유니폼을 입는다.
애초 쉽지 않은 계약처럼 보였다. KIA가 제시한 연봉 총액이 삼성보다 많다는 얘기도 적잖았다. 다만 KIA는 계약 기간 1+1년을 고수했고, 삼성은 2년을 보장했다는 말이 보태졌다. 다음 주면 최형우의 나이도 마흔셋. 이번이 선수로서 맺는 마지막 계약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보장 기간에 더 마음이 간 걸 수도 있다.
삼성이 통 크게 나와 최형우의 마음을 움직인 셈. 물론 실력이 고려됐다. 올 시즌에도 기량(타율 0.307, 24홈런, 86타점)은 녹슬지 않았다. 다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여기에 낭만 한 숟가락을 보탰다. 노장에게 2년을 보장했다. 구자욱 등 삼성 선수들도 '큰형님' 최형우의 복귀를 간절히 바랐다.
이종열 삼성 단장은 진심을 건넸다. 우승이 내년 목표이고, 그래서 최형우가 필요하다고 얘기했다. 삼성을 잊지 않았던 최형우가 움직였다. 계약 세부 사항이 마무리되기 전에 마음을 굳혔다는 얘기가 들린다. 그렇게 이들의 야구는 '단순한' 공놀이를 넘어 가슴을 울리는 스포츠가 됐다.
이 단장은 최형우가 젊은 타선의 중심을 잡아줄 거라 기대한다. 그는 "우리 팬들은 기존에 있던 선수들에 대한 향수가 크시다. 또 그런 걸 좋아하시는 것 같다. 정(情)이 많다는 걸 느낀다"며 "어렵게 데려왔는데 이렇게 좋아하고 환영해 주시니 실무자 입장에서 정말 좋다. 힘이 난다"고 했다.
최근 29세인 '낭만 러너' 심진석 씨도 화제다. 건설 현장 노동자인데 무거운 안전화를 신고 출·퇴근길을 달리며 훈련했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마라톤 풀코스를 2시간 30분대에 뛴다. 티 없이 밝은 표정이 더 가슴을 울린다. 사람들은 그에게 성원을 보내며 자신을 다잡는다. 다들 '낭만 치사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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