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악사중주는 언제나 와인을 떠올리게 한다. 제1바이올린은 와인의 이름과 같고, 제2바이올린은 코르크마개, 비올라는 와인 그 자체, 첼로는 깊이를 품은 병과 같다. 어느 하나만 달라져도 향과 맛이 바뀌듯, 네 개의 현이 내는 음악은 네 사람이 품은 온도와 결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진다. 곧 무대에서 나는 제1바이올린으로 연주하며, 각자의 길에서 성실하게 음악을 쌓아온 동료들과 다시 한 번 네 줄의 호흡을 맞춘다.
이 장르는 가장 인간적이면서도 가장 정교한 협업이다. 각자의 목소리를 분명히 내야 하지만, 동시에 서로의 공간을 침범하지 않도록 예민하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어느 한 명이 앞서서도 안 되고, 누구도 뒤에 숨을 수 없다. 활을 들어 올리는 순간의 호흡이나 비브라토의 깊이만으로 오늘의 마음이 읽히고, 그 감정이 음악 안에서 그대로 움직인다. 무대 밖에서의 성향이 음악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지만, 그 차이가 오히려 하나의 흐름으로 모아지는 과정이야말로 사중주가 지닌 매력이다.
리허설에서는 다양한 표정이 오간다. 의견이 잠시 엇갈려 공기가 팽팽해지기도 하고, 어떤 프레이즈를 다시 맞추다 보면 서로를 향한 웃음이 터지기도 한다. 템포를 살짝 밀어보는 장난, 음 하나를 더 머물러 표현하는 순간..이것은 모두 사중주가 가진 인간적인 질감이다. 이런 움직임들은 네 사람이 쌓아온 시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신호들이다.
함께 음악을 쌓아온 시간만큼 각자 다른 향을 지니지만, 병 하나에 담길 때 비로소 하나의 색을 이루는 와인처럼 우리의 사중주도 그렇게 완성된다.
흔히 제1바이올린이 리더라 말하지만 실제로는 어느 한 사람이 중심을 독점하지 않는다. 때로는 첼로의 호흡이 전체의 방향을 바꾸고, 비올라의 깊이가 사중주의 결을 정리하며, 제2바이올린의 음색과 템포 조절이 전체 구조를 단단하게 묶어준다. 네 사람이 번갈아 중심이 되었다가 자연스럽게 물러서며 음악은 스스로의 균형을 찾아간다. 이 보이지 않는 리더십의 흐름이 사중주를 가장 정직한 음악으로 만든다.
리허설이 길어지면 '감정의 결'이 보이기 시작한다. 말로 설명되지 않는 이 결을 읽고 맞추어 가는 과정에서 네 사람의 호흡은 점점 같은 속도로 오르내린다. 어느 순간, 네 개의 악기가 각각의 소리를 내고 있음에도 하나의 생명처럼 움직이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 순간이야말로 현악사중주의 진실한 아름다움이다.
사람들이 사중주를 실내악의 정수라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화성과 구조의 완벽함 때문만이 아니라, 음악을 완성하기 위해 사람이 사람을 섬세하게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적인 모든 것-고집, 배려, 충돌, 화해-가 그 안에 자연스럽게 묻어나며, 이 모두 음악의 일부가 된다.
차이콥스키의 현악사중주 1번 2악장 '안단테 칸타빌레'에는 이러한 사중주의 숨결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네 줄이 서로를 감싸며 한 호흡으로 이어지는 그 서정적인 선율은 우리가 매번 사중주에서 찾고자 하는 조화와 온기를 가장 솔직하게 보여준다. 곧 무대에서 우리가 만들어낼 한 잔의 음악 역시 그날의 공기와 마음에 따라 또 다른 향을 품게 되리라 믿으며, 나는 오늘도 활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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