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항로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벌크선(포장하지 않은 화물을 싣는 배)은 충분히 경제성이 있습니다. 이제는 포항 영일만항을 대한민국 북극항로의 실질적인 '두뇌'로 만들어야 할 골든타임입니다."
경북도 북극항로추진협의회 위원장을 맡은 김인현 교수(고려대 해상법 연구센터장)는 선장 출신의 세계적인 해상법 전문가다. 그는 최근 출범한 협의회의 수장으로서 포항 영일만항이 북극항로의 거점이 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을 제시했다.
김 위원장은 북극항로의 경제성을 냉정하게 분석했다. 그는 여름철 항로가 열리는 시기에 러시아 등에서 철광석이나 에너지 자원을 싣고 오는 벌크선의 경우, 현재 운임 구조로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이를 상시적인 물류망으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김 위원장은 "북극의 거친 환경을 견딜 수 있는 특수 선박(내빙선) 건조와 정밀한 해도 확보, 극지 운항 경험이 있는 전문 선원 양성이 시급하다"며 "무엇보다 내년에 해양수산부 주관으로 진행될 시험 운항을 통해 이를 구체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항만 시설보다 정보·연구 기능 유치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북극항로의 성패는 결국 '얼음 정보'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위성 정보를 분석해 배들에게 안전한 길을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시스템이 필수적이라는 설명이다.
이 지점에서 포항은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다. 김 위원장은 "포항에는 위성 정보 운영 역량을 가진 포스텍(POSTECH)이 있다"며 "국가 기관인 '북극해운정보센터'를 포항에 유치해 포스텍의 기술력과 연계한다면 전 세계 선박들이 포항을 의지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천 극지연구소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명확한 해법을 내놨다. 김 위원장은 "인천이 기초과학을 공부하는 '학교'라면, 포항은 실제 배를 띄우고 정보를 쏘아주는 '실전 상황실'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정의했다. 기초 연구는 인천이 하되, 이를 산업에 적용하고 실제 정보를 처리하는 운영 기관은 포항에 오는 것이 국가 전체 효율성 측면에서 타당하다는 논리다.
영일만항의 생존 전략은 '차별화'에 있다. 김 위원장은 초대형 컨테이너선 중심인 부산항과 경쟁하는 대신, 영일만항은 4천TEU급 중형 컨테이너선과 철광석·에너지를 전문으로 처리하는 '특화 항만'으로 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는 포항의 주력 산업과도 직결된다. 김 위원장은 "영일만항이 에너지 특화 항만이 되면, 포스코의 철강 생산에 필요한 철광석이나 에코프로 등 이차전지 기업의 원료를 북극항로를 통해 훨씬 저렴하게 직수입할 수 있다"며 "물류비 절감은 우리 기업의 가격 경쟁력 상승으로 이어져 항만과 산업이 함께 성장하는 시너지를 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항만 인프라만큼 중요한 것이 해상법, 해상보험, 선박금융 등 지식 서비스 산업이다. 김 위원장은 "한동대의 국제법, 포스텍의 데이터 기술, 영남대의 물류 노하우를 결합한 특별 교육 과정을 만들어 지역 내에서 전문 인력을 길러내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정지된 북방 물류의 물꼬를 트기 위해 '도시 간 교류'라는 플랜 B를 강조했다. 그는 "지방정부가 러시아 연해주나 북극권 도시들과 MOU를 체결하고 협력의 끈을 유지한다면, 전쟁 이후 물류가 재개될 때 포항이 가장 먼저 기회를 선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그리는 10년 뒤 영일만항은 단순한 지방 항만이 아니다. "원자재를 직접 수입해 산업단지에 공급하고, 전 세계 선박에 스마트 정보를 제공하는 항만, 부산항과 함께 대한민국 물류를 책임지는 '복수 거점 항만'의 한 축으로 당당히 인정받는 것"이라고 그는 밝혔다.
김 위원장은 현장과 이론을 겸비한 해상법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다. 목포해양대를 졸업하고 대형 선박의 선장으로 오대양을 누비다 법학자로 변신했다. 현재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자 해수부 장관 자문위원장 등을 맡으며 대한민국 해양 정책의 기틀을 닦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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