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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대의 건축인문기행]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이상주의 건축 현실의 벽을 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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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요트 돛을 형상화한
바다 요트 돛을 형상화한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는 21C를 대표하는 랜드마크 건축이다.

스페인의 수도로 바르셀로나를 떠올리듯, 호주의 수도를 시드니로 잘못 연상하는 경우도 흔하다. 그 착각의 그림자에는 '바르셀로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라는 위대한 건축의 상징성이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며, 하나의 건축이 도시 이미지와 정체성까지 대체하는 사례인 것이다. 바르셀로나가 건축가 가우디의 도시가 되었듯, 시드니는 오페라하우스 건축의 파급력이 절대적이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을 무슨 전시를 목적으로 방문하지 않듯,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는 어떤 오페라 감상을 목적으로 방문을 하지 않는 건축의 순례지인 것이다. 배를 타고서 바다와 같은 파라마타 넓은 강 위 오페라하우스를 바라보면 21C 백색의 사원인 듯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

◆도시의 운명을 바꾼 건축

1901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호주 연방은 수도를 어디에 둘 것인가를 두고 7년 동안 정치적 갈등을 겪는다. 결국 시드니와 멜버른 두 도시 사이의 완충지대 캔버라가 타협안으로 선택되었다. 수도를 빼앗긴 시드니가 오히려 국제적 금융 관광도시로 거듭나는 결정적 계기는 바로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의 탄생이었다. 문화적 기반이 취약했던 시드니를 예술 중심 도시로 재탄생시키기 위해 뉴사우스웨일스 주정부는 해변 경관 요충지 '베넬롱 포인트'에 세계적 기념비 건축을 세우려는 야심을 품는다.

하버 브릿지를 배경으로 베넬롱 포인트 매립지의
하버 브릿지를 배경으로 베넬롱 포인트 매립지의 '시드니오페라 하우스'는 바다 바람에 부풀어진 가벼운 건축이다.

1956년에 공고된 국제설계공모에는 세계 유수의 건축가들이 대거 참여, 32개국 233개 작품이 응모하였다. 대부분의 응모작들은 합리성을 중시한 근대주의적 계획안이었으나, 단 한 점의 설계안은 다른 차원의 상상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강렬한 조형적 표현의 설계안은 '아름답지만 실현 불가능한 이미지 건축'으로 분류되어 초기 탈락되었다. 당선작이 없어 탈락 안들을 다시 검토하는 과정에서 심사장에 늦게 도착한 '에로 사리넨'이 바닥에 제쳐둔 이 안을 발견한다. '이것은 20세기의 기념비가 될 건축형상'이라며 강력히 추천, 재논의 끝에 최종 당선작으로 채택되었다. 이 순간부터 38세 덴마크의 무명 건축가 요른 웃존(Jørn Utzon)은 전 생애를 바치는 시드니의 건축항해가 시작된다.

◆조형과 기술, 해결되지 않은 문제

오페라하우스 대공연장.
오페라하우스 대공연장.

거대한 조개껍질, 춤추는 파도, 바닷바람의 돛인 듯, 급진적 모양의 지붕형태는 20층 높이의 거대한 쉘 곡선 디자인이었다. 1959년 착공한 건축은 해안 매립지의 길이186m, 폭97m 하부 기단의 기초 공사 비용, 난해한 지붕구조 설계의 미해결로 공사는 멈추게 된다. 곡면지붕 해결을 위한 수년간 시간을 소비하면서 오렌지 껍질에서 얻은 원형 개념에서 그 돌파구를 찾는다. 모든 쉘을 동일한 구면으로 프리캐스트 콘크리트 패널로 제작 조립하는 새로운 기술이었다. 곡면 건축을 기하학적 질서로 환원시키는 해결은 구조 기술공학에 새로운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쉘 지붕은 5천여 개의 콘크리트 패널로 조립되고 105만 개의 흰색 세라믹 타일로 마감되었다. 바다 위로 반짝이는 이 흰 빛의 표면은 도시 경관을 상징하는 결정적 장면을 완성했지만, 비용과 시간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결국 예산 초과와 공사일정 지연으로 정부의 정치적 압력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해변 도시 경관의 요충지
해변 도시 경관의 요충지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스케치

◆정치와 건축의 충돌

공사 기간 중 주정부 의회가 교체되며 새 정부는 예산 삭감과 전면적인 설계 조정을 요구,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그러나 설계자는 건축의 본질을 훼손하는 요구라며 변경을 거부한다. 예술적 신념과 정치적 현실주의는 조정 불가능한 충돌로 치달으며 결국, 1966년 신임 장관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실용적 건축이며 예술가들의 허황된 꿈이 아니다!" 며 설계 비 지급을 중단하며 건축가 해임을 결정했다. 웃존은 프로젝트에서 배제된 채 호주를 추방당하듯 떠나며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설계자의 퇴장으로 세계 최고 상징 건축은 원 설계자 없이 완성되는 전대미문의 역사가 시작, 현지 설계자에게 내부를 전면 재설계를 명한다. 훗날 공연장 음향과 동선의 비효율 등 기능적 논란들은 이 시기 설계 수정의 결과로 해석된다. '외관의 혁신성'과 상반되는 '내부의 불완전'이라는 양극의 평가를 떠안게 되었다.

◆건축의 시간, 그 이후의 평가

착공 후 14년 만인 1973년에 완공된 건축의 총 공사비는 초기 예산의 14배를 넘었다. 영국 여왕이 참석한 개관식에는 추방된 건축가 웃존은 초대받지 못했다. 그의 이름조차도 언급되지 않은 기념비적 건축의 개관식은 국제사회에서 큰 비난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개관 후의 평가는 극단적으로 갈렸다. 외부 조형과 도시적 상징성은 압도적 찬사를 받았지만, 내부 공연장 기능은 '아름다운 외피에 갇힌 불완전한 장치'라는 혹평을 받았다. 후일 개보수 프로젝트에 웃존이 초대되며 초기의 건축철학 일부가 복원되고 건축가의 기념관 '웃존의 방'이 개설되었다.

건축의 시간은 웃존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는 '2003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하며 현대 건축의 거장이 되었고, 오페라하우스 건축은 '200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그러나 자신의 완성된 작품은 만나 보지도 못한 채, 이듬해 2008년 90세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도시를 바꾼 건축, 문명을 기록한 건축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태어난 요른 웃존(Jørn Utzon, 1918년– 2008년)은 요트 선박 설계자였던 아버지의 영향 아래에 성장하여 파도, 해안선, 바위, 구름 자연의 건축적 형상들을 바탕으로 한다. 오페라하우스의 곡면 조형은 단순한 미적 상상력이 아니라 자연과 기술의 결합 체계였으며, '건축이 어떻게 기술의 한계를 확장 시키는가'를 증명한 20세기 건축 최고의 사례로 남는다.

이곳은 연간 2,000회 이상의 공연이 열리는 문화시설 뿐 만이 아니라, 도시의 풍경을 재편하고 국가 정체성을 새로 쓰게 했고, 지구의 한 세기를 대표하는 상징건축이 되었다. 성공과 실패, 예술과 정치, 조형과 기술이 충돌하고 화해하는 극적 서사로 완성된 역사적 함의를 담고 있다. 오늘에도 건축의 이상주의와 경제적 현실의 충돌, 건축가의 위상 역할을 되새겨 보게 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1977년 발사된 보이저 1호에는 외계로 보내는 지구문명의 메시지 '골든 레코드'가 실려 있다. 지구의 대표 건축으로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공사 사진이 실려서 48년째 무한 우주로 날아가고 있다. 외계 문명이 발견하게 된다면 21C 지구의 대표 건축을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하다.

전 대구경북건축가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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