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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 자영업자]코로나 시기보다 더 힘들다…연말 특수 없고 한파에 콜 못 잡는 대리기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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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0분씩 콜 못 잡고 대기하는 대리기사들 수두룩
한파주의보 발효에 무인사진관에 들어가 시간을 보내기도
"낮에 안정적인 소일거리라도 있으면 그만둘 것"

지난 25일 크리스마스 저녁에 만난 대리운전 기사 김상엽(58·가명) 씨가 대리운전 애플리케이션을 켜고 콜을 잡는 모습. 임재환 기자
지난 25일 크리스마스 저녁에 만난 대리운전 기사 김상엽(58·가명) 씨가 대리운전 애플리케이션을 켜고 콜을 잡는 모습. 임재환 기자

"코로나 때보다 더 힘들어서 일거리만 있으면 대리운전 그만두려고요..."

자영업자에 머물던 불경기 여파가 대리운전 기사들의 밤거리로까지 번지고 있다. 송년회 등 연말 모임이 눈에 띄게 줄면서 대리기사들이 체감하는 호출량도 급감했다. 매일신문은 연말 대목이 실종된 현장을 따라 움직이는 대리기사 김상엽(58·가명) 씨의 하루를 밀착 취재했다.

◆ 얼어붙은 밤거리, 콜도 멈췄다

한파주의보가 내려진 25일 크리스마스 오후 7시쯤. 수성구 들안길에서 만난 상엽 씨는 집에서 가장 두툼한 패딩부터 방한바지, 발열조끼까지 껴입은 모습이었다. 강풍과 한파 예보를 확인하고 단단히 대비했지만, 체감온도는 영하 10도 가까이 떨어져 있었다.

상엽 씨가 켠 애플리케이션 화면에는 반경 1㎞ 내에 대리기사만 10명 가까이 몰려 있었다. 콜이 뜨면 목적지와 거리를 순식간에 판단해야 한다. 잠시라도 머뭇거리면 콜이 다른 기사에게 넘어가기 때문이다.

김상엽(58·가명) 씨가 대리운전 애플리케이션에 접속한 뒤 30분 만에 콜이 잡혔다. 임재환 기자
김상엽(58·가명) 씨가 대리운전 애플리케이션에 접속한 뒤 30분 만에 콜이 잡혔다. 임재환 기자

30분 넘게 기다린 끝에 서구 내당동으로 운행하는 첫 콜을 수락했다. 상엽 씨는 휴대전화를 귀에 갖다 대며 "차량까지 5분 정도 걸린다"고 손님에게 알렸다.

금방 도착한다고 덧붙여도 마음은 늘 불안하다. 소요 시간을 안내하고 예상 시간보다 늦어지면 손님이 콜을 취소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전동휠이나 킥보드는 이동 시간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다. 다만 상엽 씨는 동료가 장비를 타다 큰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뒤부터 두 발로만 움직인다. 그렇게 환갑을 앞둔 그는 골목과 샛길을 가리지 않고 달렸다. 어두운 길에서 연석에 걸려 넘어지는 일도 잦다.

20여분 운행 뒤 손에 쥔 돈은 수수료 20%를 제외하고 1만6천원. 여기서 지난해 경미한 사고 이력으로 붙은 보험료 1천400원가량을 빼면 주머니에 들어오는 건 더 줄어든다.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상엽 씨가 찾은 곳은 비교적 젊은층이 많은 달서구 광장코아 일대였다. 1차 술자리를 끝낸 취객들이 제법 나올 법한 시간이었지만 스마트폰 화면은 깜깜하기만 하다.

"얼마라도 벌려고 나왔는데 이렇게 시간만 낭비하고 있으면 속상해요. 평소에 2~3개밖에 안 피우던 담배를 대리운전할 때는 한 갑 가까이 핍니다."

하는 수 없이 또 다른 번화가인 '수성못'으로 움직였다. 운이 좋게 도착하자마자 북구 검단동으로 향하는 콜을 잡았다.

그러나 상엽 씨의 표정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 검단동처럼 주택가가 밀집한 곳은 상권이 없어 다음 콜을 기대하기 어렵고 다른 번화가로 이동하는 것도 쉽지 않아서다. 대리기사들을 실어 나르는 사설 셔틀차량은 한 번 탑승에 5천원이 들어 선뜻 내키지 않는다.

그나마 가까운 상권인 동구 봉무동 이시아폴리스에서 콜이 보였으나 고객이 있는 곳까지 4㎞ 이상 걸려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뛴다고 해도 1㎞ 이상 되는 거리를 갈 수는 없어요. 최대 800m 정도 되는 콜 위주로만 잡는 수밖에요."

◆ "하루에도 수십 번, 그만둘까 고민해요."

얼어붙은 날씨는 대리기사들에게도 얄궂다. 몸을 녹이기 위해 편의점이나 무인사진관을 찾는 것도 익숙해진 풍경이다. 동료 기사와 2인 1조로 움직이면 차 안에서 쉴 수라도 있지만 수입은 반 토막이 난다.

상엽 씨는 자정이 가까워질 무렵에는 경북대 북문과 교동 일대를 옮겨 다니며 상권을 살폈다. 술집 안 손님 수와 주차된 차량을 확인하는 것도 오랜 경험에서 나온 '노하우'다. 유동인구가 없다고 판단하면 콜 수요가 있을 법한 번화가로 서둘러 이동하고 있다.

그는 콜이 끊길수록 장거리 운전을 기다리게 된다고 말했다. 김천이나 포항, 창원으로 향하는 콜은 한 번에 8만~10만원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장거리 운전이 마냥 좋은 것도 아니다. 이틀 전 포항으로 향했던 상엽 씨는 대구로 돌아오는 콜을 잡지 못했다. 결국 포항에서 대리운전을 하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아침 첫 차로 돌아와야만 했다.

지난 25일 크리스마스 저녁에 만난 대리운전 기사 김상엽(58·가명) 씨가 대리운전 애플리케이션을 켜고 콜을 잡는 모습. 임재환 기자
지난 25일 크리스마스 저녁에 만난 대리운전 기사 김상엽(58·가명) 씨가 대리운전 애플리케이션을 켜고 콜을 잡는 모습. 임재환 기자

새벽 운전은 또 다른 부담이다. 졸음이 몰려와 눈을 부릅뜨고 운전해야 한다. 인사불성이 된 취객을 상대하는 일도 버겁다.

"한 번은 취객이 '왜 대답을 안 하냐'며 욕을 뱉었어요. 신천대로를 달리고 있다 보니 꾹 참다가 이후에 경찰을 불렀죠."

만취 고객이 잠에서 깨지 않으면 경비실을 찾아 차량 번호까지 알려주며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시간이 많이 소요돼 다음 콜을 잡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상엽 씨는 해를 거듭할수록 경기가 더 가라앉고 있다고 느낀다. "밤 11시면 들안길 일대에 불이 다 꺼져요. 최근에는 편의점 두 곳이 문을 닫을 정도였는데 얼마나 유동인구가 줄었는지 실감합니다."

연말 모임이 사라진 상황에서 새벽 콜을 기대하는 건 더욱 어렵다. 이날 오후 7시부터 자정까지 상엽 씨가 잡은 콜은 5건, 수입은 8만원 남짓이었다.

담배를 깊게 빨아들이던 상엽 씨는 '오늘도 공쳤다'는 말을 남기고 집으로 떠날 채비를 마쳤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도 줄고 수입은 늘 들쭉날쭉이에요. 주변에 있는 대리기사 10명 모두 낮에 소일거리라도 생기면 다 그만두고 싶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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