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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우의 읽거나 읽히거나] 책의 무게, 커피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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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관련 이미지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커피 관련 이미지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제목만 읽고 책은 안 사고 안 읽으면서 비싼 원두커피에 돈을 펑펑 쓰는 세태를 비판하려나 보다, 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초등학생도 흥미 갖지 않을 그런 얘기는 지루하고 식상할 테니까 말이다.

매년 한 차례, 해설이 있는 시네마콘서트를 기획해서 무대에 올린다. 혼자 동분서주 좌충우돌하면서 올해 11번째 공연까지 무사히 끝냈다. 이 공연에 관한 한 나의 자부심은 유료관객으로 전 좌석을 매진시켜버린다는 데 있다. 누구도 예외 없이, 심지어 데스크와 안내를 맡은 사람도 표를 사게 하는 악덕 기획자이지만(물론 노동의 정당한 대가는 지불한다.) 그래서 공연에 온 사람 모두가 내빈이고 VIP이다.

각종 지원사업으로 이뤄지는 전석 초대공연, 천원, 1만 원 공연이 허다한 세상에 4만 원짜리 표를 기꺼이 구매하다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가능하면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으려고 최대한 많은 선물을 준비하는 건, 이 때문이다. 예컨대 펜션과 게스트하우스 숙박권, 다이어리와 식사권, 책과 커피 등등. 일일이 후원과 지원을 부탁하고 더러는 직접 찾아가 요청하여 성사시킨 이 선물들은, 예매 관객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이자 그들이 누릴 권리라고 생각했다. 11년째 같은 형식을 반복하다 보니 흥미로운 점이 발견되었다. 책과 커피에 대한 가치 인식이다. 물론 나의 일방적 생각일 수도 있다는 점은 미리 밝혀둔다.

경제학에서는 가치를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로 나누고 교환가치는 희소성에 따라 가격이 매겨진다고 가르친다. 다만 아무리 값비싼 다이아몬드라도 사막에선 물보다 소용없기에 가치 기준이 환경에 따라 유동적이기도 하다. 에둘러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당신이라면 책 한 권과 커피 드립백 1박스 중 어느 것을 선택하겠는가? 사람마다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선물을 받은 이들의 미세한 반응을 오랫동안 지켜본 결과 커피를 선호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단순 계산으로만 보면 책은 평균 1만 8천 원 선이고 커피 드립백은 9천~1만 원 선이다. 책 읽는 걸 즐기지 않는 이도 있을 테고, 카페인을 멀리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책보다 커피였다.

책의 가치가 떨어진 탓일까, 책의 무게가 커피의 풍미를 이기기 힘든 시대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가히 독서클럽 전성시대다. SNS에는 책 전문 리뷰어가 하늘의 별처럼 많고, 그들의 계정은 온통 책으로 도배되어 있다. 장사가 되니 안 되니 칭얼대도 여전히 1인 출판사와 독립서점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실정이다. 반면에 책이 안 팔리고 책을 안 읽는다고 개탄하는 뉴스도 전가의 보도처럼 변함없다.

영화평론가 백정우
영화평론가 백정우

한때 책이 선물 목록 부동의 1위를 차지하던 시절도 있었다. 책을 받으면 기뻐했고, 귀하게 읽으면서 선물해 준 이를 기억했다. 모든 게 풍족하고 흔하고 가벼워진 시대, 이제 책은 사막에 놓인 다이아몬드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는 (사막 같은) 세상이 책보다 진한 카페인 한 모금을 더 절실히 필요로 하는 건 아닐까. 게다가 서평단을 비롯해 다양한 경로로 책이 무상 공급되는 시대가 만든 기이한 현상도 한몫했을 것이다.

공연을 끝낸 후 노 쇼로 인해 남은 선물을 집으로 들고 왔다. 책 두 권과 커피 한 박스. 책은 듬직하고 커피는 향기롭다. 나는 책의 무게도 커피의 가치도 모두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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