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임상 30년을 돌아보면 흥미로운 변화가 하나 있다. '개와 고양이의 질병이 사람을 닮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동물병원의 주된 치료 대상은 물림사고나 교통사고 같은 외상, 설사와 폐렴 등이었다. 가벼운 피부 증상 정도로는 병원을 찾지 않다가, 증상이 심해지거나 이미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악화된 상태에서야 내원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신 원인 치료가 이루어지면 극적으로 회복되는 사례도 흔했다. "죽어가던 개를 살리는 수의사"라는 말을 자주 듣던 시기였다. 생명을 살리는 것 자체가 치료의 목표였고, 회복은 기적처럼 여겨졌다.
지금은 다르다. 반려동물 진료는 훨씬 섬세해졌다. 심장병과 신장 기능, 내분비 질환의 연관성까지 함께 고려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수술 역시 '못 걷던 다리를 걷게 하는 수준'을 넘어, 예방적 수술을 통해 더 오래, 더 잘 걷게 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재활치료는 하나의 독립된 진료 과목으로 자리 잡았고, 물리치료와 운동치료는 일상적인 처방이 되었다. 귓병이나 피부 가려움으로 병원을 찾는 보호자도 눈에 띄게 늘었다. 알레르기 검사, 배양 검사, 항생제 내성 검사 같은 과정도 이제는 낯설지 않다.
과거가 '생명을 살리고 기능을 회복하는 의학'이었다면, 오늘의 진료는 '조금 더 건강하게, 더 오래 살게 하려는 의학'이라 할 수 있다. CT, MRI, 심장초음파와 같은 의료 장비가 도입되면서 질병을 더 정확하게 진단하고 치료하는 첨단 동물의료 환경이 현실화되었다. 동물을 가족으로 여기는 마음이, 동물의 불편을 자신의 불편 이상으로 받아들이게 하며 동물의료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동물의료가 이처럼 첨단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보다 오히려 더 감당하기 어려워진 질병이 하나 있다. 바로 '대사증후군'이다.
대사증후군의 원인은 사람과 다르지 않다. 건강하지 않은 음식과 부족한 활동량이다. 문제는 많은 반려인들이 이를 단순한 과체중 정도로 여기고 있다는 점이다. 노령동물이 겪는 심장병, 신부전, 췌장염과 같은 만성 질환의 상당수가 대사증후군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실제 진료 현장에서는 "갑자기 심장이 나빠졌어요", "어느 날부터 신장이 급격히 망가졌어요"라는 말을 자주 듣지만, 그 이면에는 수년간 누적된 잘못된 식습관과 대사증후군이 자리하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할 때가 많다.
개의 평균 수명은 약 15년으로 알려져 있다. 본 병원에는 스무 살이 넘도록 건강하게 지내는 개들이 많다. 하지만 현실을 살펴보면 12, 13세에 생을 마감하는 개들의 비율이 훨씬 높다. 동물의료 환경이 개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평균 수명이 늘지 않는 이유다.
제 수명을 다 살지 못하고 떠나는 동물들 가운데 상당수가 심장병, 신부전, 췌장염 등으로 2, 3년 이상 힘든 질병기를 겪고 있으며, 그 출발점은 '대사증후군'에서 비롯되고 있다. 이에 수반되는 동물진료비 부담도 엄청나다. 이는 현대인이 겪는 만성 질환의 시작이 대사증후군과 맞닿아 있는 모습과도 매우 닮아있다.
사람의 40대는 개에게는 7, 8세에 해당한다. 이 시기 정상 체중보다 20% 이상 과체중이라면 대사증후군을 의심해야 한다. 이러한 상태가 2, 3년 지속되면 10세 전후부터 본격적인 병치레를 겪을 확률은 매우 높아진다. 흔히 "아직 괜찮겠지"라고 말하지만, 질병은 생각보다 훨씬 앞서 조용히 시작된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몸속에서는 이미 질병이 깊어지고 있는 것이 대사증후군의 실체다.
세계소동물수의사협회(WSAVA)는 이러한 문제를 보다 직관적으로 예측할 수 있도록 BCS(Body Condition Score, 체형 점수) 지표를 제시하고 있다. 1부터 9까지의 점수로, 4~5는 이상 체중, 6~7은 과체중, 8~9는 비만이다. 정상 체형은 갈비뼈가 손으로 잘 만져지고, 위에서 보았을 때 허리가 들어가 있으며, 옆에서 보았을 때 배가 살짝 올라가 있는 상태다. 반대로 갈비뼈가 만져지지 않고 허리선이 사라졌다면 이미 비만에 가까운 단계다.
고양이도 마찬가지다. 고양이는 특히 복부 지방 패드(Primordial pouch)가 잘 발달해 있어 배가 처지는 모습을 정상으로 오해하기 쉽다. 개와 마찬가지로 고양이 또한 BCS 6 이상이면 과체중으로 평가한다.
세계소동물수의사협회(WSAVA)는 여기에 더해 MCS(Muscle Condition Score), 즉 근육 상태 평가도 함께 확인할 것을 권고한다. 등과 다리 근육을 촉진해 근육 소실 정도가 정상, 경미한 근소실, 중등도 근소실, 심한 근소실의 네 단계로 나누고 있다.
예를 들어 7세령의 반려견이 BCS 6 이상이면서 MCS에서 중등도 이상의 근소실이 관찰된다면, 이미 건강은 생각 이상으로 심각해졌을 확률이 높다. 근소실이 동반되는 체중 증가는 단순한 체형의 변화가 아니라 질병의 신호로 받아 들여야 한다. 심장병, 신부전, 담낭점액종, 췌장염, 쿠싱병 등의 만성 질환이 발생하였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하며, 곧바로 수의사에게 검진을 받으시기 권고드린다.
근소실이 대사증후군을 가속화하고, 심장병과 신부전 같은 만성 질환의 진행을 가속화 시킨다는 사실은 여러 의학 연구를 통해 반복적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는 체중만으로 건강을 판단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과체중과 근소실은. 만성 염증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관절염과 디스크 질환을 악화시키고, 피부병과 가려움, 심장병과 고혈압, 신부전, 결석, 담낭점액종을 속발시키기도 한다. 호흡이 가빠지며 운동 능력은 떨어지고, 그 결과 근소실이 더 심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과체중이 비만으로 쉽게 이어지는 이유다. 비만한 동물들의 기대 수명은 평균 1.5~2년 단축된다는 연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과체중은 '섭취한 열량이 소비한 열량을 지속적으로 초과한 상태'에서 비롯된다. 현재의 식습관이 과영양을 유발하고 있는지 스스로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BCS 평가, 최근 3~6개월의 체중 변화, 사료와 간식의 종류와 양, 사람 음식 제공 여부를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개체에 따라서는 혈액검사를 통해 갑상선 기능 저하증이나 쿠싱증후군 같은 내분비 질환을 감별하기도 한다. 건강한 활동성을 보이는데도 체중 증가가 지속된다면 과영양증으로 판단하고, 단호하게 간식을 끊고 필요하다면 사료 급여량도 조절해야 한다. '진단이 치료의 반'이라는 말은 반려동물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병이 사람을 닮아간다는 것은 결국 우리의 생활 방식이 반려동물에게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늦게 자고, 많이 먹고, 덜 움직이면 반려동물 역시 사람 못지않은 대사증후군을 겪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는 반려동물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심장병, 신부전, 췌장염이라는 이름으로 돌아온다.
이제 "잘 먹으니 건강하다"는 말은 더 이상 반려동물에게 적합하지 않다. 오늘의 풍요가 내일의 질병이 되지 않도록 보호자가 한층 더 고민 할 때다. 반려동물에 대한 사랑은 너그러움이 아니라, 절제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드리고 싶다.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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