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천시가 조선 임진왜란 영천성 수복대첩, 일제강점기 산남의진, 6·25전쟁 영천대첩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서사를 토대로 호국·항일·구국 정신 계승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영천시는 제107주년 3·1절을 맞아 "역사는 과거에 머무는 기록이 아니라 오늘과 내일을 비추는 살아 있는 자산"이라며 "지역의 호국 역사를 교육·문화·관광 자원으로 확장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고 1일 밝혔다.
영천은 1천592년 임진왜란 당시 영천성과 지역 의병이 연합한 '창의정용군'을 결성, 육지전 최초로 성을 탈환한 영천성 수복대첩의 현장이다.
선조실록은 "한산대첩과 맞먹는 최고의 승전"으로 기록했고, 당시 선조를 호종했던 오성부원군 이항복은 "한산·명량·행주대첩과 나란히 할 승전"이라고 평가했다.
이후 영천은 1594년(선조 27년)과 1672년(현정 13년) 등 조선 중·후기에 무과시험이 치러지는 군사 활동의 요충지가 됐고, 무반 가문 성장과 지역사회 구조 변화로도 이어졌다. 영천시는 역사적 의의를 기리기 위해 2018년 조례를 제정해 매년 기념행사를 열고 있다.
근대사에서 영천은 항일의병 투쟁의 거점이었다. 1906년 고종 황제의 밀명을 받은 정환직과 정용기 부자가 지역에서 창설한 산남의진은 1천명이 넘는 영남권 최대 규모의 의병부대로 3년 반 이상 일제와 항전했다.
서울 진공을 목표로 한 전략은 이후 전국의병연합 작전의 선구적 모델이 됐고 지도부 순국 이후에도 산남의진 인물들은 만주 등지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통한 항일투쟁의 불씨를 확산시켰다. 이는 영천이 단순 지방도시를 넘어 항일 독립운동사의 중심이었음을 보여준다.
6·25전쟁에서 영천대첩은 국가 존망의 분수령이었다. 1950년 9월 낙동강 방어선의 핵심 요충지였던 영천이 함락되면 대구, 경주, 부산으로 이어지는 방어선 전체가 붕괴될 위기였으나 국군 제8사단을 주축으로 한 반격 끝에 탈환에 성공했다.
북진 반격의 첫발을 내딛게 한 분수령이자 인천상륙작전, 춘천대첩과 함께 6·25전쟁 3대 대첩으로 꼽히며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존속할 수 있었던 결정적 전투로 기록되고 있다.
영천시 관계자는 "영천의 호국 역사는 국가 위기 때마다 민·관·군이 하나로 결집해 대응해 온 특유의 유전자가 있음을 보여준다"며 "이런 정신을 계승해 지역 공동체 결속과 미래 세대 교육으로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댓글 많은 뉴스
'보수의 심장' 대구 서문시장 찾은 한동훈 "윤석열 노선 끊어내야"
이진숙 "한동훈, 대구에 설 자리 없어…'朴·尹·대한민국 잡아먹었다'더라"
'돈봉투 파문' 송영길, 3년 만에 다시 민주당 품으로
박영재 법원행정처장 사의 표명…與 '사법개혁' 강행에 반발
이 대통령, 3월 1∼4일 싱가포르·필리핀 국빈방문